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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다니엘 아샴, 롯데뮤지엄에 ‘3024년 폐허가 된 서울’ 소환한 이유

‘서울 3024’전서 시공간·역사 경계 초월한 작품들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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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76호 김금영⁄ 2024.07.19 13:53:36

다니엘 아샴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당신이 현재 일상에서 펼쳐보고 있는 잡지책, 쓰고 있는 모자, 음악을 듣는 라디오가 매우 진귀한 유물로 가치를 인정받으며 거대한 박물관에 전시된다면? 이 상상력이 현실로 실현된 자리가 있다.

롯데뮤지엄이 뉴욕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다니엘 아샴 작가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평소 시간성, 역사성, 공간성의 경계를 초월하는 작업을 전개해온 작가의 이번 개인전 제목은 ‘서울 3024’다. 2024년 현재로부터 1000년 후 미래 서울이 배경이다. 3024년 서울,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 시점에서 2024년 우리의 일상은 고고학 자료가 된다. SF 장르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장이기도 하다.

'서울 3024'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실제로 작품명이기도 한 ‘발굴 현장’은 핸드폰, 신발, 카메라 등 현대적인 물건들이 오래된 유물의 모습으로 발굴된 형태를 하고 있다. 또 이 현대의 유물을 직접 그려보거나 조사서를 작성하면서 발굴 현장에 관람객 또한 참여할 수 있게끔 꾸렸다.

즉 롯데뮤지엄에서 먼 미래 시점 과거가 된 2024년을 발굴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는 것. 1000년 후 미래의 서울을 2024년 롯데뮤지엄으로 소환한 작가는 이처럼 시간,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한 전시장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되는 이질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현재 일상에서 펼쳐보는 잡지책, 쓰는 모자, 음악을 듣는 라디오가 발굴된 유물의 형태로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이 작업을 ‘상상의 고고학’이라 칭한다. 이는 어린 시절 마이애미에서 허리케인을 겪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롯데뮤지엄 구혜진 큐레이터는 “허리케인으로 한순간에 모든 일상이 사라지고 폐허가 된 도시는 작가에게 자연의 압도감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 문명의 덧없음을 느끼게 했다”며 “이때의 트라우마적 경험은 작가의 초기작업에 주로 나타났다. 자연과 인공, 시간의 경계가 사라진 형태의 조각과 회화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2010년 작업을 위해 찾은 남태평양 이스터 섬에서의 경험도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세밀하게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유물 발굴 현장에서 과거의 유물을 통해 현시점의 역사를 추적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것.

관람객 또한 현대의 유물을 직접 그려보거나 조사서를 작성하면서 발굴 현장에 참여할 수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상상의 고고학 개념의 본격 시작도 이때부터였다”며 “상상의 고고학에선 오늘날의 일상적 오브제를 과거로 치환함으로써 진실과 허구가 뒤섞이고, 혼란을 야기한다. 이는 다양한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예술의 목적성과도 접목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을 석고나 화산재 등 광물 소재로 주조하고 인위적으로 부식시켜 마치 유물 현장에서 발굴한 듯한 모습으로 탈바꿈 시킨다. 총 9개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도 여러 시대와 시간, 문화, 장르가 혼용된 작품세계를 살필 수 있다.

헬멧을 쓴 아테나 여신, 북한산에서 발견되다

1000년 후 서울을 주제로 한 대형 회화 2점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1000년 후 서울을 주제로 한 대형 회화 2점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끈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을 쓴 아테나 여신’과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신격화된 로마 조각상’이다. 달빛의 섬광 아래 서울의 북한산을 배경으로 헬멧을 쓴 거대한 아테나 여신, 로마 조각상이 이질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미래의 서울, 북한산에서 서양 고대 조각 유물을 발견한다는 허구적 서사를 담았다.

이 작품은 카프리치오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회화 양식을 차용했다. 대자연의 경관을 배경으로 화면 전경에 서 있는 인간의 뒷모습은 이 기묘한 풍경을 한층 더 경건하게 만든다.

한 화면에 고전 고작상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나란히 배치된 '분절된 아이돌'. 사진=김금영 기자

차분한 색감 또한 눈길을 끄는데, 색맹인 작가는 색채 작업 시 톤을 주의 깊게 고려한다고 한다. 그는 “초기작을 보면 색감이 배제된 작품도 많이 보인다. 당시 내가 보는 세상과 타인이 보는 세상의 색이 동일하지 않다는 걸 알고 2013~2014년 작업 땐 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며 “현재는 각각 색상에 12가지 넘버링을 해 이를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3024년 폐허가 된 서울이었을까. 작가는 “20년 동안 활동을 이어오면서 50년,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세계가 점점 비슷해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예술가로서 상징을 만들어내고, 비언어적인 방식과 비주얼적 키로 아이디어를 전환해보고 싶었다. 전시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 여기엔 종말론적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 왜 폐허가 된 미래였는지 그 의도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궁극적으로 관객을 도발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를 대변하는 대중문화 아이콘 포켓몬도 이번 전시에선 유물로 발굴된다. 사진=김금영 기자

‘분절된 아이돌’도 시간을 넘나든다. 한 화면에 고전 고작상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나란히 배치된 모습이 흥미를 자아낸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를 나타내는 고전 조각상의 평온한 얼굴과 현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다채로운 표정이 대비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푸른색 방해석의 침식된 아를의 비너스’와 ‘숭고한 계곡, 스투바이탈’도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각적 서사를 보여준다. 아를의 비너스를 원작으로 한 푸른색 방해석의 침식된 아를의 비너스는 고전적인 조각상을 부분적으로 파손시켜 침식된 형태로 제시하며 시간의 흐름과 물리적인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다니엘 아샴은 한 전시장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되는 이질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폭 5m에 달하는 숭고한 계곡, 스투바이탈은 거대한 스투바이탈 계곡 아래 발굴된 유물들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주는데 거대한 고전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는 첨단 로봇 등 서로 시간, 역사, 문화, 장소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관이 인상적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대중문화 아이콘 포켓몬도 이번 전시에선 유물로 발굴된다. ‘포켓몬 동굴’에서는 거대한 동굴 안에 퇴색되고 부식된 모습의 포켓몬 캐릭터들이 눈에 띈다. 동굴은 작가의 작업에서 시간이 집합되고 재정렬되는 원초적 공간이자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관문으로 드러난다.

'서울 3024'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이 밖에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해석한 고대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 ‘미래 유물’ 오브제 시리즈 등 작가의 20여 년 동안 점철된 세계관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더불어 작가의 건축적 작품을 비롯한 초기작들과 제작한 영화, 티파니앤코, 디올, 포르쉐 등 세계적 브랜드와 가구, 패션, 건축과의 협업을 통해 시각예술 영역의 확장까지 보여준다. 작가는 “지난해 커리어 20주년을 맞아 파리, 뉴욕에서 대형 전시를 열었는데 그 전시에 포함됐던 작품을 비롯해 초기작, 신작 등 내 예술세계의 진화를 이번 전시에 담았다”고 말했다.

다니엘 아샴은 현재 우리의 일상을 고고학으로 치환하며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사진=김금영 기자

롯데뮤지엄 측은 “작가가 창조한 세계 상상의 고고학은 오늘날 일상의 물건들이 미래에 유물로 발굴된 형태로 제시하며, 자신이 어느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지 모호하게 만든다”며 “허구와 현실이 뒤엉킨 이질적인 공간에서 관람객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시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말한다. “당신이 도착하는 매순간이 미래다. 당신은 이미 그곳에 도착했다.” 전시는 롯데뮤지엄에서 10월 13일까지.

다니엘 아샴의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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