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2.14 17:19:38
어렵기만 했던 선사고대의 역사와 유물들이 스토리텔링 위주의 재밌는 콘텐츠로 관람객에게 찾아온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새롭게 단장한 선사고대관을 2월 15일(토)부터 공개한다. 이번에 문을 여는 선사고대관, 구석기실~고구려실은 2023년부터 2025년에 걸쳐 진행한 선사고대관 개편 사업의 성과물이다.
이현숙 디자인전문경력관은 이번 재편의 핵심은 층위 즉 땅속의 순서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개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먼저 연출 기법의 고도화가 눈에 띈다. 기존 선사고대관 전시는 고고학적 물질문화를 객관적으로 구성, 기술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개편 전시는 환경에 적응하는 인류의 시도, 당시 도구를 사용했던 맥락과 기능, 새로운 도구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상 등을 복합적으로 전달하려 하였다.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유적의 현장 정보를 강화하고 그림, 영상 자료를 활용하여 전시품의 이해를 도왔다. 여기에 선사 영역 전시실은 시대별 주요 특징도 영상으로 만들어, 당시 인류의 삶이 어떠했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실의 구성도 흥미롭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공간은 선사고대관 도입부이다. 우리 역사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중앙의 대형 벽면에 도입 영상을 마련하였다. 이 영상에서는 지구 탄생부터 고인류의 등장, 불과 도구의 사용, 협동 사냥과 생존에 이르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선사고대관 다음은 즐거운 고민에 빠질 수 있는 지점이다. 류정한 학예연구관은 기존의 시대순 강제 동선과 다르게, 관람객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선사 영역 전시(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와 고대 영역 전시(고조선˙부여˙삼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선택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선사 영역 전시는 구석기실부터 시작한다. 구석기시대는 수십만 년 전부터 일만 년 전까지에 해당하는 긴 기간이며, 빙하기와 간빙기가 번갈아 찾아오던 때이다. 그런데, 주된 전시품은 돌을 깨어 만든 뗀석기이다 보니 당시 삶이 어떠했는지 상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 개편에서는 다양한 영상 자료를 활용하여 전시품 구성의 한계를 극복했다. 시기별 뗀석기를 만드는 재현 영상이나, 당시 생활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설명이 진열장 구석기시대 유물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신석기실에서는 빙하기가 끝나고 따뜻해진 환경에서 적응하며 다양해지는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빙하가 녹으며 바닷물이 차오르고, 해양˙식물 자원을 더욱 쉽게 얻으면서 이동 생활 대신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또, 도구 중에서 혁신이라 평가받는 불에 구운 토기를 고안해 냈고, 뗀석기보다 더욱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간석기도 사용했다. 이처럼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신석기 움집의 삼차원 재현 연출, 동삼동 패총 투사 영상, 가덕도 무덤 연출 등이 마련됐다.
청동기실에서는 최초의 금속인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마을과 집단이 커지는 사회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거대한 규모의 고인돌이나 껴묻거리가 풍성한 돌널무덤 등에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의 존재도 그려볼 수 있다. 청동기의 제작 및 농경문 청동기 관련 영상, 숲과 동물을 표현한 삼차원 재현 연출, 부여 송국리 무덤 진열장 등이 청동기시대 사회 모습이 어떠했을지 잘 보여준다.
고대 영역 전시는 고조선·부여·삼한실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는 청동기시대 사회 변화를 바탕으로 국가가 출현하며 나라별 문화가 더욱 다양해지는 역동성이 돋보이는 때이다. 특히,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강조하여 비파형 동검 문화부터 세형 동검 문화에 이르는 정교하고 세밀한 청동 전시품이 집중 전시되었다. 고조선 멸망 전후 등장한 여러 나라에 해당하는 부여, 옥저, 동예와 낙랑 문화를 소개하고, 삼한(마한·진한·변한)이 고대 국가로 발전하여 가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게 구성하였다. 아울러 철기의 제작과 창원 다호리 통나무 목관의 설치 과정에 대한 영상도 마련했다.
개편 전시는 고구려실에서 마무리된다. 이번 개편 전시의 특징 중 하나인 고구려실은 기존 면적보다 1.7배 확대하고, 새 발굴 자료를 대폭 전시해 흐름과 구성을 보강했다. 우리 고대사에서 갖는 위상에 비하면 기존 고구려실은 다소 아쉬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앞선 전시실들을 효과적으로 설계, 배치하면서 면적을 확보하고 전략적으로 고구려실을 확대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구려 자료를 적극 정리, 활용하고 서울대학교박물관 등 외부 기관 소장품도 전시해 신규 전시품을 대폭 늘렸다.
고구려실에는 처음 전시되어 눈길을 끄는 유물들이 많다. 이 중 고구려 장수의 비늘갑옷은 고구려 남진의 요새였던 경기도 연천 무등리 2보루에서 출토된 것으로 경각 어깨부와 경체부, 목 가리개까지 제대로 갖춰진 상태로 남아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또한, 핵심 전시품이라 할 수 있는 무덤 벽화 모사도는 특화 전시 공간에서 선보이며 디지털 실감 영상관과의 연계성을 높였다. 특히 천장은 상설전에서 거의 전시된 적이 없고 벽면 사신이 워낙 존재감이 컸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천장도를 현장 공개하게 되었다. 천장도의 삼각형과 사각형이 교차해 있는 모습은 고구려 고분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2024년 1월 처음 선보인 광개토대왕릉비 탁본(디지털 복원본)을 상설 전시할 수 있는 전용 공간도 마련해 5세기 초 강성했던 고구려의 위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번 재개편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지향하는 ‘모두를 위한 박물관’ 구현을 위하여 세심하게 여러 관람객의 특징을 고려하며 전시실을 개편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 구성의 뼈대에 해당하는 설명글을 체계적으로 구성하였고, 어린이와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풀어서 표현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 편의도 곳곳에 배치했다. 각 전시실의 핵심 설명글은 점자와 음성 안내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고, 시대별 주요 전시품을 촉각 전시품으로 재현 제작하여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하였다.
이번 전시 개편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어린이들의 시각에서 전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배움 공간’을 상설 전시 최초로 도입하였다는 점이다. 선사 영역에 2곳, 고대 영역에 2곳 마련하였다. 전시실의 주요 전시품인 뗀석기, 농경문 청동기, 철제 도구의 활용, 고구려 무덤 벽화 등 다양한 역사 문화유산을 흥미롭게 체험하며 배울 수 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모두를 넘어 시대와 가치를 이어주는 융합의 박물관으로 우뚝 서기 위하여, 선사고대관 개편 과정에서 박물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담으려 노력하였다.”라며, “선사고대관을 관람하며 관람객들이 역사를 머나먼 과거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흔적도 인류의 역사가 된다는 점을 되새겨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