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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과거로부터 온 고요한 질문

타카하시 켄타로, 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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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천수림(사진 비평)⁄ 2025.04.03 10:23:24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진행 중인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전시장 전경. 사진=천수림

‘현재를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진행 중인 전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는 이 질문을 던진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 의제인 ‘행동’과 연계해, 기록의 사회적 가치와 실천적 기제를 조망한 전시로 권은비, 김아영, 나현, 문상훈, 윤지원, 이무기프로젝트, 임흥순, 타카하시 켄타로 작가가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국내외 갈등과 분쟁, 참사 등 ‘현재를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라는 복합적인 과제 속에서 재현과 보존을 넘어 사회적 기억을 복원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내는 동시대 미술과 기억 기관인 아카이브의 사회적 역할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든다.

전시 제목인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475)의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경구에 착안한 것이다. 작가의 개인 작업 외에도 한국 근현대사와 억압된 공동체의 역사를 동시대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작품과 연관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의 기록, 제주4·3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제주4·3평화재단과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소장기록 등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중 나현의 아카이브 수집과 인물을 추적하는 무형의 아카이브를 선보인 타카하시 켄타로의 작업이 눈에 띈다.

타카하시 켄타로, ‘곁에 머문 부재’

타카하시 켄타로, ‘곁에 머문 부재(そばにある不在)’. 아카이벌 피그번트 프린트, 21-138.4×30.5-138.4cm(×19점). 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일본 사진작가 타카하시 켄타로는 이번 전시에서 ‘곁에 머문 부재(そばにある不在)’(2025)를 선보인다. 현재 오키나와에 거주 중인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첫 증언자의 삶을 추적했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엔 요미탄 바다에 위안부 생존자의 흑백 사진을 들고 있는 작가의 손이 담긴 사진이 있다. 청색 매니큐어를 칠한 손은 작가의 손이다. 위안부 단체를 돕고 있는 재일조선인 김현옥과의 인연을 매개로 한 인연은 작가의 손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작가는 예술적 실천 안에서 일어난 사실과 참상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이 사건을 겪고 시간이 흐른 후 어떤 삶을 영위해 왔는지 포착하고 전달한다.

이 시리즈는 증언자가 살았던 장소와 풍경을 직접 마주거나 그를 돕고 기록했던 인물들을 찾아간다. 이 기록의 행위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을 소환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다. 잊힌 과거의 사건의 궤적은 허름한 집안의 소소한 풍경이거나 무심히 핀 꽃을 담았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진행 중인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전시장 전경. 사진=천수림

이 작업 안에서 작가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프레임 안에 넣는 과정을 통해서 담고자 하는 대상화하거나 타자화 하기보다는 같이 동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특히 자신의 손을 노출시키는 적극적인 행위는 상처받은 이들과 현재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촉각성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누군가의 손을 잡듯이. 이렇듯 작가는 이번 ‘곁에 머문 부재’ 연작처럼 과거의 인물이 기억하는 장소와 시간을 쫓아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자 사진집으로 출판된 ‘어 레드 햇(A Red Hat)’은 2017년 ‘테러음모방지법’이 제정된 일본에서 일상의 풍경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평화보존법’ 위반으로 체포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집 ‘A Red Hat’은 전쟁 당시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의 미술학도였던 히시야 료이치(98세)와 마츠모토 고로(99세)의 현재 삶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2017년 6월부터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 거주하는 히시타니 료이치, 그리고 홋카이도 오토후케초에 거주하는 마츠모토 고로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렌즈에 담았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손자 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의 일상은 매우 평온해 보인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진행 중인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전시장 전경. 사진=천수림

사진집의 소재가 된 ‘생활도화사건(生活図画事件)’은 1941년 아사히카와 사범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1941년 9월 20일 새벽, 아사히카와 사범학교 미술부 학생이었던 히시타니 료이치(당시 19세)와 마츠모토 고로(당시 20세)는 기숙사에서 잠에서 깨기 직전에 특별 고등경찰에 의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다. 두 사람은 모두 학창시절 같은 학교에서 미술부에 소속돼 교사를 꿈꾸고 있었다.

당시 미술부에서는 구마다 만사고(熊田満三吾) 선생(도쿄미술학교 졸업, 현 도쿄예술대학)의 지도 아래,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교과서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사회의 실상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미술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갑자기 반국가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것으로 범죄의 증거로 간주됐다. 1942년 12월 26일까지 아사히카와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생활도화사건이라고 불린다.

작가는 특별 고등경찰에 체포된 ‘인생 드로잉 사건(Life Drawing Case)’을 계속 조사하고 있는 미야타 히로시(82세)의 모습도 담았다. 출소 후 1943년 2월 11일, 히시타니 료이치는 여동생의 빨간 모자를 쓰고 자화상을 그렸다. 이 책은 다카하시의 사진 뿐 아니라 그들이 아카이브에 보관하고 있던 ‘과거’의 사진 및 기타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 작가는 이렇듯 사회적인 사건과 개인의 기억에 쌓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 균열 안에는 과거의 고통을 회복해 가는 사람의 일상을 추적해간다.

나현, ‘아무것도 아닐거야’

나현, ‘아무것도 아닐 거야’. 혼합 매체, 가변설치. 2007~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이번 전시에 소개된 나현의 ‘아무것도 아닐거야’(2007~2025)는 서울시립미술관 커미션 작업으로 진행됐다. 회화, 드로잉, 영상,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대형 아카이브 작업 ‘아무것도 아닐거야’ 작품명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산호가 담긴 유리공예품을 보고 주인공 윈스턴이 한 대사에서 발췌한 것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민족’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다. 민족과 민족주의가 전체주의적 통제수단으로 기능했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아카이브와 같은 제도가 ‘절대적 진실’의 권위를 갖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작가는 1950년대 한국전쟁시 참전했던 프랑스 군인 중 실종자 일곱 명에 대한 도큐먼트인 ‘실종’, ‘나현보고서-민족에 관하여’, ‘로렐라이의 노래’, 1912년 독일제국의회의 혼혈혼 논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바벨탑’ 등을 통해 식민주의, 우생학, 민족주의, 인종,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를 다뤄왔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진행 중인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전시장 전경. 사진=천수림

이번 대형 설치 작업에도 멕시코 쿠바의 용설란 이미지, 19세기 소수민족의 사진을 대형으로 확대한 사진에 직접 그림을 그려넣은 작품, 외래종과 토착종 등 식물에 빗댄 귀화식물 아카이브,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나치당, 제2차세계대전까지 이어지는 순혈주의, 사모아섬, 상하이 유대인 거주지, 소련의 부리야트족 여성 등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념이나, 배제된 소수민족들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방대한 사진 이미지에 붓질을 더한다거나 마치 여권처럼 찍는 스탬프(작가가 직접 만든)는 무소불위의 공권력에 대해 전면으로 도전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된 국기 강하식 작품은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 5시에 퍼포먼스를 진행함으로써 과거의 독재적 유산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국기강하식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민간에서 시행한 군사독재시절의 잔재다. 강하식은 군대나 공공기관에서 업무시간을 마칠 무렵에 게양된 국기를 내릴 때 경례를 하는 것을 말한다. 강하식은 민간에서도 시행된 것으로 매일 저녁 애국가가 울리면 행인이나 운전자도 걸음을 멈추고 경례를 해야 했다.

나현, ‘아무것도 아닐 거야’. 혼합 매체, 가변설치. 2007~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나현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폭력을 정당화해온 신작 ‘아무것도 아닐거야’의 일환으로 이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잠수’ 작품엔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헬멧을 써볼 수 있다. 헬멧을 직접 써보면 1970년대 독재시기에 들었던 독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소리를 듣다보면 마치 물속에 들어간 듯한 침잠의 느낌을 받는데 작가는 이 촉감을 ‘세뇌당하는’ 방식으로 보았다. 주로 현지조사와 수집을 통해 작업을 완성해가는 작가의 아키비스트적 태도는 편집자로서의 주체적 역할을 다한다.

흥미롭게도 이번 전시에서 1980년 비상계엄선포와 관련한 서류도 볼 수 있다. 당시 비상계엄선포 용지에 사인하던 이름을 확인할 수 있고, 2024년 12월 3일 계엄용지도 볼 수 있다. 전시 제목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여전히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작가 소개>

켄타로 타카하시의 아버지는 종종 교세라/야시카의 포인트 앤 슛 카메라로 가족을 촬영했다. 켄타로는 어릴 적부터 필름 사진의 세계에 입문했다. 켄타로는 개인적인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동시에 내러티브 탐구에 뿌리를 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풍경의 균열 지점에 서 있는 타인이 지닌 상처와 기억의 곁에 머문다. 고요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치 아픔에 부드럽게 손을 얹듯 작업하고 있다. 2020년 제36회 히가시카와 어워드 올해의 특별 사진가상(일본)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빨간 모자(Author of A RED HAT)’가 있다.

나현은 다양한 문화권과 국가들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동일하게 반복되는 본질적 인간 활동으로 보고 현재의 다양한 갈등 구조의 시작은 역사의 객관적 진실에 가려진 인간 활동과 함께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민족, 이주, 전쟁, 실종, 환경 등에 관한 아카이브 수집과 분석, 구조적 재배치를 통해 회화, 사진, 영상, 인터뷰 매체 등을 이용한 드로잉을 생산하면서 기존의 역사에 틈을 벌려 동시대를 더욱 다양하게 읽어내려는 조형 프로젝트를 구축해 오고 있다.

글: 천수림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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