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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헌법 경찰’ 6천명이 위헌범 잡아채는 독일 … 높은분일수록 헌법 맘껏 어기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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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2025.04.09 15:52:19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상임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한국의 헌법 사정을 보면 참으로 딱하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헌법재판소(헌재)가 그나마 헌법 수호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일부 일으켜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헌법의 명령’은 아직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 않으면 위헌이다’고 헌재가 판결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덕수, 최상목 두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 판결을 한동안 무시하고도 무사했다. 이 판결을 “따라선 안 된다”며 외치고, 단식투쟁하고 한 정당 관계자들, 즉 공개적으로 위헌을 추천하고 응원한 정치인들은 아직도 방송 마이크 앞에서 떵떵거린다. 참으로 너덜너덜한 헌법 사정이다.

독일 극우가 가장 무서워한다는 헌법수호청

부러운 건 독일이다. 독일 연방정부에는 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 BfV)이, 그리고 16개 연방 주에는 헌법수호청(Landesämter für Verfassungsschutz)이 있단다.

연방헌법수호청 직원 숫자가 4000~4500명, 주별 헌법수호청에 1600~3200명 정도의 직원(경찰)이 있다니 독일 전국적으로 최소 6000명이 넘는 헌법 수호 공무원(경찰관)이 암약 중이란다. 이들의 임무는 딱 하나다. 헌법을 어기는 자들, 어기려는 자들을 잡아들이는 일이다.

독일 연방 헌법수호청 청사 앞의 헌법경찰관. (사진=독일 연방 헌법수호청)
독일 연방 헌법수호청의 로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그래서 최근 지지율을 높여가고 있는 독일의 극우 정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헌법수호청 요원들이라고 독일 박사 출신의 최동석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한국에도 독일 헌법수호청 같은 기관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있었다면, 서울서부지법 폭동, “헌재를 가루로 만들자”고 마이크에 외치는 목사-정치인-유튜버가 가능했을까?

독일에 헌법수호청이 생긴 건(1950년 창설) 물론 히틀러와 나치당을 겪어서다. 히틀러와 나치 때문에 독일 민족 전체가 절멸의 위기 직전까지 갔었으므로, 다시는 이런 끔찍한 비극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공무원 6000명 이상을 고용해 ‘헌법 어길 자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것이다.

히틀러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해

한국인들이 히틀러에 대해 흔히 오해하는 게 “히틀러는 독일 민족주의자였다”는 생각이다. 다음 문장을 읽고도 과연 그런 생각이 드는지 묻고 싶다.

(나치가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공공연하게 내보일 수 없었던) 독일 민족에 대한 일반적 증오(주: 1923년 히틀러의 말 참조. “독일 민족의 3분의 1은 영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분의 1은 겁쟁이,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반역자로 구성되어 있다” (한길사 발간 한나 아렌트 저 ‘전체주의의 기원 2’ 101쪽)

히틀러는 아리안 인종주의(독일 민족주의가 아니라 아리안 인종주의다)를 주장했고, 독일 민족 중에서도 3분의 2는 겁쟁이 또는 반역자이므로 이 3분의 2를 직접 죽이려 했다는 게, 독일인이자 유대인이었던 아렌트의 분석이다.

히틀러의 생각에 따르면 독일 민족 중 3분의 1만 살려두면 된다. 그렇다면 그 3분의 1에 들어가 있는 사람, 예컨대 비밀경찰(게쉬타포)에겐 안전이 보장될까? 상식적으론 그렇지만 히틀러에겐 그렇지 않았다.

나치 돌격대(SA)의 복식. SA 창설 4년 뒤에는 나치 친위대(SS), 해골부대가 엘리트 조직으로 속속 창설됐다. 

나치당 산하 엘리트 조직으로 돌격대(SA, 1922년 창설), 나치 친위대(SS, 1926년 창설), 해골부대 등이 차례로 창설된다. 그리고 이들 중 가장 ‘끗발 좋은’ 조직은 수시로 바뀌었다. 돌격대가 최고였는데 친위대가 새로 창설되면서 위로 올라가고, 그러면 돌격대원 중 일부는 어느 날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한나 아렌트는 “통제하는 자를 통제하기 위해 새로운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라고 썼다.

이 시에는 한 줄이 빠져 있다

널리 알려진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유대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마침내,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렌트가 전해준 사실을 알고 이 시를 읽어야 더 무섭다. 그리고 아렌트라면 아마 한 줄을 더했을 것도 같다.

그들이 다른 비밀경찰을 죽일 때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우수 비밀경찰이었으므로

독일 비밀경찰의 수장이었던 하인리히 힘러. 비밀경찰 안에서 여러 조직이 순차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중 어느 조직이 최고인지는 힘러와 히틀러에 의해 수시로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과녁을 바꿔가면서 나치는 사람들을 죽였다. 아리안 인종의 순혈을 지키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누구라도, 즉 어제까지는 당 핵심이었더라도 오늘 얼마든지 제거해서 수거할 수 있는 게 바로 히틀러 전체주의였다는 증언이다.

아렌트 책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전쟁 말기에 나치는 패배할 경우 독일 민족이 파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아직 온전한 조직을 이용하여 가능한 한 독일을 완전하게 파괴하려 했다” (위 책 82쪽)

독일 민족을 전쟁으로 내몰기 위해 “지면 다 죽는다”고 총통께서 예언하셨으므로, 전쟁에서 질 것 같으면 독일 민족이 다 죽어야 맞다.

즉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사람들을 홀리려면, 예언하고 실행하는 게 최고다. ‘저 사람은 4월 4일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면 그날에 맞춰 그 사람을 직접 죽이면 백발백중 신통방통한 최고의 예언가로 존경받을 수 있다.

독일 민족의 3분의 2를 제거하려 했고,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 민족 전체를 말살시키려 했던 히틀러 나치의 공포를 경험한 전후 독일인들은 “헌법을 지키는 것만이 살길”임을 뼛속 깊이 절감했고, 1950년 헌법수호청 창설 뒤 계속 비밀 수사 요원들을 암약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백만 명이 죽어야 헌법은 지켜지나

이런 독일과 비교하면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의 팔자는 참으로 기구하고도 비루하다. 군부독재의 군홧발에 짓밟히더니, 이제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 관료와 판-검사들에 의해 수시로 짓밟히고 찢기고 있다.

"헌재를 가루로 만들자"고 마음껏 외쳐도 잡혀가지 않는 게 대한민국이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저 높은 분은 저렇게 헌법을 안 지켜도 안전한 걸 보니 세기는 정말 센 모양이야”라고 존경심까지 품게 되는 게 요즘 한국의 풍경인 듯 싶다.

 

수백만 명이 죽고 나서야 독일인들은 정신을 차렸고 이른바 ‘헌법 애국주의’ 또는 ‘입헌 민주주의’에 매진하게 됐다. 대한민국은 아직 수백만 명이 죽지 않아서 이렇게 헌법을 짓밟고 있는 것인가?

관련태그
전한길  헌법경찰  헌법수호청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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