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묻고 싶었다. 최정훈과 고길동이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에 눈물 흘렸다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본인은 울컥하지 않았는지.
청년에서 어른이 된 최정훈은 어른에서 또 다른 어른으로 넘어가는 고길동을 바라본다. 그리곤 동화(同化)된다. 누구나 어른은 되고, 그런 어른 누구나 고길동이 될 수 있다. 참 잘 짠 메시지다. ‘백세주’ 브랜드 필름은 조용히 빛난다.
이를 기획한 국순당 마케팅팀 김정화 과장에게 그간 꾹꾹 담아뒀던 궁금증을 쏟아냈다.
- 지난해 ‘백세주’를 리브랜딩하며 브랜드 필름을 선보였다. 밴드 ‘잔나비’ 최정훈과 만화 ‘아기공룡 둘리’ 고길동의 조합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반응이 좋다. 궁금한 건, 왜 고길동이었나. 백세주 브랜드 필름에 고길동을 끌어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백세주 리브랜딩을 거치면서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감도 높은 어른 술로 새롭게 다가가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청춘’, ‘취향’, ‘어른’ 등의 키워드가 나왔고, ‘감도 높은 어른의 술’로 포지셔닝하고자 했다. ‘어른이 된 청춘을 위해 다시 태어나다, 더 깔끔하고 섬세해진 백세주’를 전달하기 위한 아이데이션(아이디어 생산 활동) 중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던 ‘고길동밈(meme)’이 등장했다. 고길동이 이해되거나 안쓰럽게 느껴지면 어른이 됐다는 내용이다. 어릴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쌓였을 때 그제야 백세주가 맛있음을 알게 된다는 사실과 연결하면서 고길동을 등장시키게 됐다. 또 의외의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오는 반가움이나 재미도 있고, 익숙한 캐릭터여서 낯섦도 반감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최정훈과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면 여타 브랜드 필름이나 광고와 차별점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고길동의 드러나지 않은 서사를 조명하면서 신선함을 줄 수 있었다. 잘 드러난 설정은 아니지만, 고길동은 LP도 수집하고 술도 모으고 화초도 가꾸는 인물이다.”
- 브랜드 필름 속 고길동은 힘들고 지친 아버지의 모습이다. 너무 무거운 주제 아니었나.
“흐름만 보면 다소 무거워 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 공감과 위로가 더 강하게 남은 것 같다. 팍팍한 일상을 보낸 후 가까운 사람과 백세주 한 잔 하면서 털어내고 또다시 내일을 살아가는 고길동의 하루에서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과 부모님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소셜미디어(SNS)가 멀게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가깝게는 지인들이 잘 벌고 잘 사는 것만 보여주니까 어쩔 수 없이 비교되는 게 많잖나. 그와 반대로 각자 자리에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여서 무겁게 느끼기보다 공감을 받은 것 같다.”
- 지금의 40~50대는 둘리와 고길동에 대한 향수가 있다.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 감성이다. 브랜드 필름은 백세주의 주 소비층인 이들을 공략하려는 의도였을까?
“이번 리브랜딩의 목표 중 하나는 백세주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백세주를 알리는 일이었다. 꼭 40~50대가 아니어도 둘리와 고길동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고길동의 이야기에 공감할 만한 면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 본인이 생각하는 어렸을 적 고길동은 어떤 모습이었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아저씨’였을까?
“나 역시 고길동은 고약한 아저씨로 생각했다. 만화니까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화를 내는 아저씨는 악역처럼 느껴졌으니까.”
- 본인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 지금 바로 떠올렸을 때, 어떤 상황과 오브제가 생각나나.
“신도시 외곽에서 살아서 도시와 시골의 삶을 다 경험하며 지냈다. 봄이면 할머니 따라 냉이를 캤고, 뒷산에 있는 산딸기를 따기도 했다. 여름엔 작은 계곡에서 가재 잡고 놀았다. 학교에선 피구를 참 많이 했다. 누구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배구공이건 불꽃 마크가 그려져 있었고, 여기저기서 불꽃슛을 날렸다.”
- 최정훈의 반응이 궁금하다. 브랜드 필름 속 연기가 나쁘지 않은데, 그가 보는 고길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혹시 이에 관해 얘기한 게 있나?
“음악도 결국 감정 표현이지 않나. 공연하는 것만 봐도 음악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연기와도 이어지는 것 같다. 촬영 현장에선 NG도 많이 내지 않아 연기 데뷔해도 되겠다는 이야길 스태프들과 하기도 했다. 최정훈은 실제로 ‘아기공룡 둘리’를 좋아한다. 팬들 사이에선 유명한 얘기다. 그 역시 고길동을 미워했는데,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 고길동의 입장이 보였다고 한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인생 선배 같은 느낌도 들어서 친근하고 반가웠다고 했다.”
- 백세주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우선, 리브랜딩 동기부터 듣고 싶다.
“브랜드 환기가 필요했다. 백세주를 모르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고, 내가 마실 술이라기보다 윗세대 술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브랜드 정체성부터 디자인, 맛 등이 대대적으로 변해야 눈길을 끌고 공감받을 것으로 판단했다. 대다수 브랜드가 리브랜딩이나 리뉴얼 작업을 하면 약간의 변화를 주는 정도로 끝낸다. 매대에서 익숙한 제품을 바로 골라야 하기 때문인데, 백세주는 새로운 챕터(chapter)를 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 본인 앞에 20~30대와 40~50대 두 그룹이 있다. 백세주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
“먼저, 20~30대에겐 ‘백세주는 가볍게 마셔도 분위기를 남깁니다. 조용한 음악, 어둑한 공간에서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싶을 때 마시면 좋습니다. 이름은 알지만 잘 몰랐던 백세주의 매력을 한 번 느껴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40~50대에겐 ‘익숙함 속에 깃든 변화, 살아온 방식을 조금씩 바꿔 갈 때 우리의 삶도 산뜻해집니다. 일상에 변주가 필요한 날, 새로워진 백세주로 산뜻함을 더해 보세요’라고 말하면 좋겠다.”
- 혹시 다음 브랜드 필름을 기대해도 될까? 이번 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라든지. 그렇다면 달리 염두에 둔 스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브랜드 필름이 공감받을 수 있었던 건, 다른 브랜드 필름이나 광고와 달리 백세주를 매개체로 대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제품의 속성을 강하게 알리는 광고도 필요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울림을 주는 캠페인은 지속하고 싶다.”
- 결국, 고길동의 모습은 우리와 같다. 아빠일 수 있고 엄마일 수도 있다. 백세주 차원에서 그들에게 응원 될 만한 한마디를 건넨다면.
“술 빚는 것도 인생과 비슷하다. 직접 빚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녹록지 않은 일이다. 고된 노동에 정성을 다해도 술이 맛있게 익는다는 보장은 없다. 익어가는 과정에서 ‘이게 맞나?’ 의심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된다. 물론, 그렇다 해도 느닷없이 생기는 일은 막을 수 없다. 이렇게도 빚어보고 저렇게도 빚다 보면 나만의 향기로운 술을 찾게 된다. 그러니 지금 잘 안 풀리고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자책하지 말고 지금까지 온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응원이 필요할 땐 백세주 한 잔 하면서 스스로에, 소중한 존재들에게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서로 말해주자. 백세주도 수백 번, 수천 번의 시도 끝에 탄생했다.”
김정화 과장에게 묻고 싶었던 건 덮어뒀다. 듣고 싶었던 걸 다 들으니 중요하지 않았다. 응원이 필요한 나와 소중한 주변인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자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이 어딨을까.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