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28일 열리는 서울옥션 제187회 미술품 경매에는 특별한 섹션이 마련됐다. 바로 ‘백락시선(伯樂視線)’이라 이름 붙인 고미술파트의 기획 구성이다. 한 분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이 컬렉션은 경매 도록에서 고화를 중심으로 총 13점을 묶어놓았으나, 앞서 근대동양화와 말미에 추사 김정희의 간찰까지 포함하면 약 20점 남짓에 해당한다.
백락시선(伯樂視線), 백락의 시선
타이틀 백락시선에서 백락(伯樂)은 명마가 주나라 말 감정가로 유명한 백락을 만나 세상에 알려졌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백락일고(伯樂一顧)’에서 따왔다. 이는 주로 인재를 선별함에 있어 인용되곤 한다. 즉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이를 만나 그 진가가 세상에 알려지듯, 백락시선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의미한다.
이번 섹션의 주인공은 수십 년 전 취미로 발을 들인 민화 그리기를 시작으로, 우리 고미술에까지 관심이 닿아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한다. 출품작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소장가는 겸재 정선의 손자인 손암 정황의 ‘산수도’와 같은 고화뿐 아니라 근대동양화, 궁중장식화와 민화,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글씨까지, 회화의 다양한 분야뿐 아니라 서예까지 섭렵했다.
그 시절 작품들은 주로 학고재화랑과 대구의 송아당화랑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고서화 전문 화랑으로 시작한 학고재는 옛 것을 익혀 새것을 만든다는 의미인 학고창신(學古創新)의 정신에서 따온 이름처럼 이제는 대표적인 화랑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또한 1980년 맥향화랑 이후 대구 지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화랑인 송아당은 초기에 고서화를 중심으로 전시하다가 90년대부터는 현대미술로 저변을 넓혔다. 이후 35년간 존속 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소장가의 품으로 모인 작품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조선후기 서화가인 학산 윤제홍의 ‘기려도’는 계미년, 즉 1823년 봄비 내리는 운치 있는 밤, 취중에 그렸다는 작가의 서명이 묵서로 남아 있다. 술 기운을 드러내듯 과감한 필획의 굵기와 속도감 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필선이 눈에 띈다. 윤제홍은 붓 대신 손끝과 손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지두화(指頭畵)로도 유명하다.
버드나무 아래 말 타는 인물을 그린 그림은 ‘낙서선생일품백련배관(駱西先生逸品百鍊拜觀)’이라는 근대동양화가 의재 허백련의 배관이 있어, 조선후기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아들 연옹 윤덕희의 필력일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처럼 고서화에는 후대 서화가나 감식가들이 남긴 작품에 대한 평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가 종종 전하는데 이를 배관이라 부른다. 사전적 정의로 편지나 작품, 소중한 물건 등을 공경하는 뜻을 가지고 본다는 의미다.
또 다른 작자미상 ‘화조도’에는 ‘금강산인시서화지인(金剛山人詩書畵之印)’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어 구한말 서화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금강산인 김진우가 소장했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서화에는 작가의 도장 외에 이를 소장했던 인물들의 소장인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나온 세월이 긴 만큼 고서화는 이렇게 한 수작(秀作) 안에서 그 안에 담긴 내용뿐 아니라 부차적인 요소들, 즉 작가 혹은 제3자의 묵서명, 화제, 제시, 낙관, 배관, 보존 상태 등을 통해 작품이 지닌 다양한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들이 모두 한 수장가의 애장품들이라면 그 소장가의 취향과 안목까지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셈이 된다.
혜안(慧眼), 지혜를 보는 눈
최근 이와 같은 고미술 컬렉션이 경매 외에도 전시 형태로 만나볼 수 있어 주목된다. 이는 또 한 세대가 저물며 나온 작품들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대단한 수작들이다. 포스코미술관은 ‘오백 년 만에 돌아온 조선서화’라는 타이틀로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의 서화 50여 점을 전시 중이다. 바로 우리에게 ‘유현재(幽玄齋)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일본인 이리에 다케오가 수집한 작품들이다.
그는 교토에서 고미술상 이조당(李朝堂)을 운영하며 다양한 시서화를 모았으며, 1996년에는 자신의 서화관을 드러낸 소장품 도록을 발간하기도 했다. 또한 2009년과 이듬해에는 일부 작품이 학고재화랑에서 전시되기도 했으며, 희소성 높은 조선전기 회화들이 많아 주목됐다.
인사동에 새롭게 문을 연 더프리마아트센터에서는 근현대회화 블루칩 작가 전시와 더불어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고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바로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드러난다는 ‘소중현대(小中顯大)’를 타이틀로 한 소운 컬렉션전이다. 소운은 작년 타계한 대우그룹 창립 멤버이자 한국 문화예술에 이바지한 이우복 회장의 호로, 그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소품의 도자기들을 선보이며 기념하는 전시다.
이처럼 경매와 전시를 통해 다양한 수장가들의 애장품을 만나다 보면 저마다 수많은 소장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작품들을 소중히 모은 이의 취향이자 안목이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그것이 길잡이만큼이나 중요한 안목, 혜안이 따라오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