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5.10.23 14:32:48
시중은행들이 인공지능(AI)을 단순한 고객 서비스 보조 수단이 아닌, 전사적인 업무 혁신(AX)과 리스크 관리의 핵심 동력으로 삼으며 ‘AI 네이티브 뱅크’로의 대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은행권은 2024년을 기점으로 AI 활용 전략의 무게 중심을 ‘기술 검증(PoC)’에서 ‘전사적 내재화와 서비스 상용화’로 이동시킨 상황이다.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을 필두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디지털 전문은행까지, 국내 금융사들은 ‘고객 경험 혁신’, ‘내부 생산성 극대화’, ‘리스크 관리 지능화’라는 세 가지 핵심 목표를 향해 AI 기술을 전방위적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는 AI 뱅커의 전국 확산, 설명가능한 AI(XAI)의 핵심 업무 도입, 그리고 보안 이슈를 극복하기 위한 생성형 AI의 자체 구축 및 제한적 도입이 두드러진 해였다. 올해는 이 기반 위에 ‘내부 업무 효율성 강화’와 ‘초개인화 서비스’ 및 ‘금융 취약계층 포용’이라는 사회적 책임까지 아우르며 5대 핵심 AI 전략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AI 뱅커와 무인 점포의 진화…‘무인’을 넘어선 ‘유인’ 채널 혁신
금융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며 최근 5년간 1000여 개가 넘는 오프라인 점포가 통폐합되는 현실 속에서, 남겨진 영업점들은 AI 기술을 통해 그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다. AI 뱅커의 역할은 단순 업무 보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AI가 더 이상 단순 안내원이 아닌, 셀프뱅킹(Self-Banking) 서비스를 강화하고 고객 경험을 고도화하는 핵심 주체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NH농협은행은 전국 1103개 모든 영업점에 AI 행원을 배치하며, 주로 투자상품 판매를 위한 상품 설명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겼다. 이는 광범위한 점포망을 AI 기술로 표준화하고 보강하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은 ‘우리WON뱅킹’ 내 AI 상담 서비스를 대출 상담까지 확대하며 AI의 역할을 단순 정보 제공에서 실질적인 금융 컨설팅으로 확장했다. 신한은행은 AI 뱅커가 탑재된 150여 대의 ‘디지털 데스크’를 영업점에 배치한 것에 더해, 아예 AI 뱅커로 운영되는 무인점포 ‘AI 브랜치’를 오픈했다. AI 브랜치는 계좌 입출금, 증명서 발급 등 64개 창구 업무를 제공하며, 정맥 인증, 신분증 스캐너 등 고객이 스스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지원하는 첨단 무인 채널의 모델을 제시했다.
상담 및 고객 경험 지능화
지난해는 대화형 AI의 성능과 활용 영역이 급격히 확장된 시기였다. 올해는 은행 챗봇 서비스들이 생성형 AI와 향상된 NLP(자연어 처리 기술)를 기반으로 고객 친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리브 넥스트’의 AI 금융비서 베타 서비스를 개시하며 고객 친화적인 상담 역량 강화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2025년에는 고객 상담 직원의 업무를 돕는 ‘생성형 AI 상담 챗봇’ 운영을 통해 인간과 AI 협업 모델을 제시하며 고객 경험 가치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신한은행은 상담 중 감정 인식 분석을 통해 금융사고 상황이 의심되거나 대화가 어려울 경우 상담사를 연결하는 등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한 기술적 장치를 마련했다. 나아가 신한은행은 고객이 오프라인에서 이용 가능한 ‘AI 창구’에 GPT 연계 Q&A 서비스를 탑재하며, 대면-비대면 서비스의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AI를 활용해 외국인 및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AI 상담을 시행하며, 특정 고객군에 특화된 금융 파트너로 진화시키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대화형 AI 서비스’(AI 검색, AI 금융 계산기)를 출시하며 디지털 전문은행의 강점을 강화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자연어로 이자율, 환율 계산 등 복잡한 금융 계산을 쉽게 제공하며, 일상적 금융 업무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카카오뱅크는 주 1회 이상 언어 모델을 재학습시켜 AI 상담 챗봇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등 서비스 품질 유지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AI 로보어드바이저로 초개인화 자산 관리 도입
AI 기술은 개인화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며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프라이빗 뱅킹(PB) 자산 관리 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전문적인 투자 지식이 없는 고객도 AI를 통해 사적인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퇴직연금 고객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핀테크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AI 기반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RA) 일임형 서비스’를 출시했다. 고객의 투자 성향과 시장 상황에 맞춰 AI가 자동으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며 투자 편의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우리은행은 AI와 전문가의 역량을 결합한 종합 포트폴리오 서비스 ‘우리WON 포트폴리오’를 선보였으며, 특히 ‘하이브리드 포트폴리오’에는 자체 개발 알고리즘과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한 투자 및 시장 진단 기능을 탑재하여 정교한 자산 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회사는 해당 서비스 출시 2개월 만에 펀드 판매액 100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리스크 및 신용 평가 지능화, ‘블랙박스’를 벗는 머신러닝과 XAI
갈수록 교묘해지는 금융 사기와 내부 통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AI는 보안 및 리스크 관리 영역에서도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은행들은 기존 머신러닝 기반 AI 기술의 실질적인 성능 향상과 내재화에 집중함으로써 금융의 근간인 리스크 관리와 신용평가 영역에서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먼저, 금융사고 예방 시스템, 즉 FDS(이상거래탐지시스템)에 AI를 적용하는 것은 기본 전략이 되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AI 기반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과 이상징후 검사시스템(FDS) 고도화를 통해 실시간 이상 거래 패턴을 탐지하고 선제적인 예방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AI 스미싱 문자 확인’ 서비스로 스미싱 문자를 분석, 고객에게 위험도를 알려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AI기술을 활용한 ‘전세지킴이’서비스를 출시해, 임차인이 부동산의 주소와 보증금만 입력하면 △보증금 안전도 △임대인 위험정보 등을 종합 분석해주는 전세 진단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신용평가 영역에서도 AI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축적된 기술 신용평가(TCB) 정보를 활용한 ‘기술력 기반 기업 평가 머신러닝 모형’을 개발하여 기존 재무 중심 평가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업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Sh수협은행은 AI 신용리스크 모형인 ‘Creditracker’를 국내 최초로 상용화하여 기업 리스크 진단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도입했다. 케이뱅크는 비금융데이터와 신용정보(CB)를 결합하여 고도화한 대안 신용평가 모형(ACSS)을 도입해 금융 이력이 부족한 고객에게까지 금융 혜택을 확대하며 포용 금융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처럼 금융의 신뢰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AI 결과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설명 가능 인공지능(XAI, eXplainable AI)’ 도입도 중요하게 부각됐다. 카카오뱅크는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과 FDS에 머신러닝을 적용하는 동시에, 2024년에는 속도를 10배 향상한 XAI 모델을 FDS에 적용했다. 이는 AI가 이상 탐지 결과를 도출한 근거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제공하여 탐지 결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검증을 가능하게 한다. NH농협은행은 AI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에 XAI를 활용해 추천 이유를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를 꾀하고 있다.
내부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AI RPA’ 전략
AI 기술은 고객 서비스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 혁신을 위한 ‘유능한 동료’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다수 은행이 생성형 AI 플랫폼을 구축하고 내부 업무에 적용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먼저 AI는 직원들이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AI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나아가 신한은행은 직원이 잠재 고객을 발굴하고 맞춤형 상품을 제안하도록 돕는 노코드 AI 플랫폼 ‘AI Studio’를 전 영업점에 확대 도입하며, 영업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AI 인공 지능 기술을 활용한 고객 서비스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자체 텍스트 분석 처리 기술인 KB-STA, KB-AI OCR을 고도화하여 법인/개인 고객 확인 제도(CDD)에 활용하는 등 금융 문서 처리의 자동화를 이끌었으며, 이 기술은 금융위원회로부터 부수 업무로도 인정받았다.
생성형 AI 도입도 활발하다. 하나은행은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인 H-GPT를 직원용 ‘지식챗봇’에 전면 적용하여 업무 규정, FAQ 등을 빠르게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게 했다. NH농협은행은 자체 생성형 AI 플랫폼을 통해 내부 규정 검색, 리테일 영업지원, 기업금융 맞춤 추천 등 현장 활용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AI 업무 비서 플랫폼 ‘AI ONE’을 구성해 40여 개 업무 비서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했으며, KB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KB-GPT 등 생성형 AI를 내부 직원의 업무 효율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임직원 업무용 ‘AI 지식상담 시스템’에 생성형 최신 AI 기술인 ‘에이전틱 레그’와 ‘리즈닝’을 융합해 고도화하며,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AI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AI가 기업 운영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자, 기업들은 관련 인프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2월 AI 인프라, AI 디비전, AI 프로덕트를 연결할 ‘AI 에코시스템’ 전략 아래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개소했다. 이는 AI 기술의 안정적인 개발과 확산의 기반이 된다. 케이뱅크는 업스테이지와 협력하여 솔라 LLM(Solar LLM)을 기반으로 금융 특화 LLM을 구성했으며, 신한은행 역시 오픈소스 생성형 AI 모델을 기반으로 자체 모델을 구축하는 등 금융 특화 거대 언어 모델(LLM)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B금융그룹은 올해 5월, 전 금융권 최초로 ‘에이전틱 AI(Agentic AI)’ 기반의 ‘KB GenAI 포털’을 오픈하여 그룹 공동의 AI 활용 환경을 마련하고, 현업 직원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AI 혁신 경쟁에 나서고 있다.
2024년과 2025년 한국 은행권의 AI 활용 현황은 기술 도입을 넘어 전략적 내재화의 단계에 진입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XAI의 도입을 통해 AI 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 부터, AI 서비스 개발의 장벽을 낮추는 인프라 확장, 나아가 이상 거래를 판별해 신뢰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밖에도, 외국인 및 고령층을 위한 특화 AI 상담을 시행하며 금융 취약계층을 포용하는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며 그 이용 반경 역시 확대하고 있다.
AI는 단순한 경영 효율화 수단이 아니라, ‘고객 신뢰’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금융업의 근본 가치를 실현하는 핵심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AI 기반 ‘AI 네이티브 뱅크’로의 대전환은 이 5가지 축을 중심으로 점차 가속화될 전망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