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12.10 21:31:54
국제갤러리는 12월 9일부터 2026년 2월 15일까지 K1과 K2에서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를 개최한다.
장파는 회화와 글을 통해 ‘그림’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된 개념을 비판하며, 여성적 그로테스크와 역사적으로 타자화된 감각들을 시각적으로 탐구해왔다. 그는 남성 중심의 시각 언어에 의문을 제기하고, 여성주의적 주체성을 회화적 어법으로 확장하며, 여성의 신체 및 감각을 주체적 형상으로 재구성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전시 제목과 동명인 회화 연작 〈Gore Deco〉를 비롯해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약 45점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통적 여성 이미지를 재맥락화하고, 유머와 비틀기를 활용하여 기존의 시선을 전복하고자 한다.
장파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번 전시는 ‘고어’라는 감각과 ‘데코’라는 장식성, 미술사에서는 어떻게 보면 표피적이고 근본적이지 않으며 비본질적으로 여겨지는 장식성을 전면으로 내세워서 여성성이라는 감각을 정면으로 꺼내서 구성하는 전시로 기획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제 전시를 관람해 보시면 되겠습니다”라고 설명했다.
《Gore Deco》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신체와 정체성이 폭력적 구조에 놓이게 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동시에 ‘장식’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위계적 함의에 주목한다. ‘Gore’는 여성, 퀴어, 소수자 등 중심부에서 배제된 주체들의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Deco’는 종종 하찮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온 장식성과 그에 얽힌 미적•사회적 질서를 상징한다. 전시는 서로 생경한 두 감각을 병치함으로써, 신체와 장식, 숭고와 혐오, 위계와 향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균열을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회화적 전통 자체를 해체하고 부정하고 냉소하는 것에 머물게 하는 대신, 기존 질서의 편협함을 감각적으로 수용하고 회화적 표현의 확장된 경계와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목도하도록 이끈다.
‘Gore’와 ‘Deco’, 두 요소의 만남은 K1과 K2의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K1 1층 안쪽에 자리한 전시장에서는 상징성을 띤 삼각형과 십자가 형태의 캔버스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십자가에 대해 작가는 “십자가는 예수의 상징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데요. 제 작품에서는 상처 혹은 몸의 감각으로서 기호와 상징 쳬계를 뒤집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여성이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그 기호를 다시 재배치하는 의미로 설정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성삼위일체와 원근법의 역사 이래 인간의 이성을 상징해온 삼각형은 거꾸로 걸려 있으며, 영적 영역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내장 이미지로 장식된 채 ‘여성화’되어 있다. 마치 내장이 걸린 교회에 들어선 듯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은 기존 질서를 개념적으로 해체할 뿐만 아니라, 고대 건축 양식의 프리즈(frieze)를 연상시키는 실크스크린 기법의 벽화를 통해 과거 여성 재현의 이미지사(史)를 바라보는 작가의 비판적 관점을 응축한다. 장파는 여성의 몸과 정체성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회적 폭력 구조에 포획되는 예시들을 수집해 이를 장식적인 틀 안에 열거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회화 곳곳에서도 발견되는데, 마치 내장의 표면에 아로새겨진 것처럼 보인다. 이는 타투라는 장식적 요소를 통해 회화의 재료인 물감을 한순간 육화하고 회화 감상의 전통적 관행을 교란시키려는 작가의 전략인 셈이다.
K1 2층 전시장에서 장파는 해골 도상의 그로테스크함이 다채로운 색감, 그리고 장식성과 충돌하며 자아내는 기이함을 바탕으로, 하위 범주로 자리매김해 온 장식의 역할을 재정의한다. 그는 캔버스 중앙의 해골 형상보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감의 배경을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회화에서 전통적으로 통용되어온 형상과 배경의 위계를 무력화한다.
또한 회화면에 장식물, 금속 하드웨어, 머리카락, 거즈, 스티커 같은 비전통적이며 비천한(abject) 재료들을 장식적 요소로 과감히 도입해, 개념화된 색채의 이상을 방해하고 개념과 물질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다. 이러한 작가의 방식은 억압된 육체의 상흔을 장식으로 치환하고, 육체적 감수성을 회복시키며, 고통의 재현을 향유의 경험으로 전환한다.
K2 전시장에서 장파는 여성의 신체가 다루어지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역사 속 여성 재현의 이미지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발견한 동시대의 여성혐오 이미지,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구 등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캔버스에 전사한 후 파편화된 신체, 내장, 눈과 입술 같은 ‘구멍’의 이미지와 병치한다. 이처럼 회화적 순수성과 장식성 사이의 혼종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작가의 전략은 냉소적 유희를 불러일으키며, 시각적 위계와 질서를 일시적으로 붕괴시켜 비판적 층위를 형성한다.
작가는 “제 작업에서 눈이나 입, 구멍 같은 것들이 이번 전시뿐만 아니라 이전 작업에서도 반복적으로 보이는데요. 눈과 어떤 모든 구멍, 눈과 항문, 질구멍 등을 동일한 선상에서 마구 뒤섞인 상태로 보여줌으로써 어떤 위계의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뒤섞는 방식으로 제가 형상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몸’은 단순히 고통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그 흔적을 발판 삼아 감각적 전복을 수행하는 주체로 재구성된다. 회화 속의 상처는 응시를 요구하고, 분절된 육체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되며, 고통은 정념적 진지함에 포획되기보다 조롱과 유희의 형식으로 비틀린다. 이러한 웃음은 단순한 위안 혹은 해학이 아니라 제도화된 미적 감수성과 윤리적 판단을 교란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Gore Deco》는 하위주체들의 감각과 새로운 시각적 전략을 통해 회화에 내재된 전통적 위계가 놓친 시선을 복원하고 동시대 회화 언어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이는 소외된 신체 경험과 장식의 감각을 매개로 회화가 지닌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장파가 미술사와 이미지사를 참조하고 여성 신체를 둘러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은 때로는 즉흥적이며 사르카즘이 섞인 유머를 동반한 저항으로 보일 수 있지만, 종국에 이는 작가가 회화를 향해 품고 있는 뚜렷한 응시와 진지한 태도를 드러내는 장으로 기능한다.
장파 작가는...
장파(1981)는 2006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와 미학과를 졸업하고, 2017년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석사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인천아트플랫폼(2020), 두산갤러리 뉴욕(2017), 소마미술관(2016), OCI미술관(2011) 등이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202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24), 송은(2023), 아르코미술관(2023), 서울시립미술관(2015)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이 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