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식⁄ 2026.01.15 15:42:19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 기업인 TSMC가 지나친 시장 과점으로 인한 공급능력 한계와 대만-중국 갈등으로 주춤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대규모 AI칩 수주 계약을 체결했으며, 애플과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AMD, 퀄컴, 구글 등과도 협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2나노 공정’을 무기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2026년에는 어떤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GAA 수율 안정화로 반전 계기 잡아
올해도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은 AI 붐과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기준 이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는 점유율 71%를 차지하고 있는 대만 반도체기업 TSMC다. 2위 사업자인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23년 3분기 12.4%에서 2025년 3분기 6.8%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실적은 2025년 말 기준 여전히 연간 적자를 기록 중이지만, 지난해 손실 폭이 크게 줄어들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25년 상반기 중반 2조원대 적자를 기록했지만, 4분기에는 1조원 미만으로 적자 규모가 감소했는데, 이는 팹 이용률 향상과 일회성 비용 감소 덕분으로 분석됐다.
이런 성과에 대해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GAA(Gate-All-Around) 기술을 빠르게 안정화시킨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GAA는 반도체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로, 전류가 흐르는 반도체 채널을 게이트가 모든 면(4면)에서 감싸는 방식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이다. 이를 활용하면 기존 핀펫(FinFET) 대비 성능과 전력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어, AI, 자율주행 등을 위한 3nm(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고성능·저전력 반도체 개발에 필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원래 삼성 파운드리는 지난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GAA 기술을 적용한 3nm 파운드리 공정 양산을 시작했지만, GAA 구조의 복잡성으로 인해 수율 문제를 겪었다. 그러다 지난 2025년 말 2nm(SF2) 수율이 55~60%로 안정화되며 본격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이 공정을 이용해 자사 시스템LSI 사업부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Exynos) 2600’과 테슬라 AI 칩 AI5, AI6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테슬라·애플 빅딜 성사… AMD, 퀄컴도 대기열
2025년 7월 28일 체결한 테슬라와의 대형 계약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턴어라운드를 이끌었다. 테슬라 공급계약 규모는 165억달러(당시 기준 한화 약 22조7648억원)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단일 고객 기준 최대급 계약이다. 계약 당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신공장은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 생산을 전담할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심지어 머스크는 테일러 공장 내부에 전용 작업 공간까지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칩 제조 과정을 감독하기 위해 현장에 상주할 수도 있게 된 것인데, 이는 삼성과 테슬라의 관계가 기존의 고객-공급업체 관계를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테슬라의 오스틴 본사는 삼성의 테일러 공장에서 불과 48km 거리에 있고, 머스크의 자택도 근처에 있다. 머스크는 “이 공장의 실제 생산 규모는 몇 배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이 공장에서 생산될 AI6 칩이 자율주행 자동차는 물론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수퍼컴퓨터 ‘도조’ 등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총 투자 규모가 50조원 이상에 달하는 삼성의 테일러 신공장은 현재 가동을 앞두고 있다. 오는 3월 장비 반입을 시작으로 2nm 양산을 시작하며, 초기 생산 물량은 웨이퍼 2만장에서 5만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 애플과 아이폰용 이미지센서 납품 계약 체결에 성공한 것도 고무적이다. 미국 오스틴 소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될 이 차세대 칩에는 ‘3단 적층 하이브리드 본딩’이라는 새로운 칩 제조 기술이 적용된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은 칩 사이즈 축소, 전력 절감, 신호 품질 향상 등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로 알려졌다.
AMD와는 서버용 CPU ‘EPYC 베니스(Venice)’와 소비자용 CPU ‘라이젠 올림픽 릿지(Ryzen Olympic Ridge)’ 생산 계약이 거의 확정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멀티 프로젝트 웨이퍼(MPW) 기술을 활용하여 AMD에 칩 프로토타입 시제품 생산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인데, 이 기술은 동일한 웨이퍼에 여러 설계 프로젝트를 통합할 수 있어 초기 개발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양사는 2026년 초 최종 협력 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퀄컴과도 5년 만의 협력 재개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삼성전자가 생산한 마지막 퀄컴 칩은 2022년 출시된 ‘스냅드래곤 8 Gen 1’ 프로세서였는데, 이 제품은 발열과 전력 효율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 당시 삼성 파운드리는 퀄컴의 수율 및 효율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퀄컴은 이후 칩 생산을 TSMC에 맡겼다. 하지만 최근 열린 CES 2026에서 퀄컴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Cristiano Amon)은 “‘스냅드래곤 8 엘리트 Gen 5’를 삼성이 생산한다”고 밝혀 계약 체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TSMC 대안’으로 떠오르다
이처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잇달아 삼성전자에 칩 생산을 요청하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TSMC의 생산 능력이 한계에 달해 일종의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지난해 4분기부터 2nm 공정 양산을 시작했는데, 애플, AMD, 미디어텍, 구글 등 주요 고객사들의 물량 확보 경쟁이 가열되면서 사실상 생산능력이 한계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대만 바오산의 Fab 20과 가오슝의 Fab 22를 2nm 공정 생산을 위한 첫 번째 공장으로 가동하고 있는데, 두 공장의 올해 2nm 생산 능력은 이미 모두 예약이 완료됐다는 것. 특히 초기 생산 능력의 절반 이상은 애플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의 생산 물량은 퀄컴, 미디어텍, AMD, 엔비디아, 구글 등이 나눠갖게 된다.
이렇다보니 빅테크 고객사들은 안정적 칩 수급을 위해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하게 됐고, 2nm 공정 양산과 공급이 가능한 기업은 삼성전자 파운드리밖에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수주 요청이 몰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테슬라의 경우 납품 물량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TSMC의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이에 대한 불만으로 머스크가 삼성전자를 대안으로 선택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대만의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중요한 호재로 지목된다. 양안 갈등이 고조될수록 빅테크 기업들은 리스크 분산을 위해 TSMC 이외의 안정적 공급망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2026년은 대만 탈출의 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머스크는 지난 2024년부터 ‘OOC·OOT(Out of China, Out of Taiwan)’라는 방침을 내세우며 테슬라의 공급업체들에게 중국과 대만 이외 지역에서 생산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공식적으로 이런 방침의 존재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이 방침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 지난해 삼성전자와의 AI6 칩 공급 대형계약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런 요인들에 힘입어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올해 큰 폭으로 성장한다 해도 TSMC와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2nm 웨이퍼 생산용량 기준으로 봐도 TSMC가 올해 8~10만장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삼성전자는 2.1~5만장 규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테슬라와의 대형 계약으로 턴어라운드 토대를 만들었고,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고객사로 합류하는 등 호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TSMC가 파운드리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도 “삼성전자가 대형 계약과 미국 팹 가동으로 반등 모멘텀을 잡고 있어서, 수율만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 2026년은 특별한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화경제 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