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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 가장 긴 한국, 생산성 왜 형편없나 했더니…

마지못해 일하는 직원 94%…22개국 중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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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7호 김진성⁄ 2010.04.26 15:52:57

국내 중견 그룹의 총무과에서 4년째 근무하는 김 모 대리(31)는 일 년 중 야근을 하지 않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회사 일에 치여 살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에 비해 김 대리가 보여주는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니, 본인이나 윗사람 모두에게 답답할 뿐이다. 일껏 준비한 보고서를 부장에게 올렸지만 “이 정도밖에 못 해?”라는 질책을 들은 김 대리. 답답한 마음에 정 대리와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더니 30분째 감감무소식이다. 잡담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김 대리나 “들어오기만 해라” 하며 벼르는 부장이나 속이 끓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직장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고, 성과 없이 마음고생만 하는 현장이다. 지난 4월 1일 MBC ‘후 플러스’는 ‘대한민국은 쉬고 싶다’ 편을 방영했다. 과로 때문에 폐의 4분의 1을 잘라내야 했던 직장인 이야기 등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이렇게 몸을 상하면서까지 한국인은 오랜 시간을 일하는데 생산성은 분야에 따라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과로 때문에 죽을 정도로 일 오래 하는 한국인, 그러나 직장 만족도 낮고, ‘마지못해’ 일하는 경우 많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근무시간은 226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2000시간을 넘는다. 2위 폴란드의 1953시간보다 300여 시간, 날짜로는 30일 이상(하루 8시간 근무 기준)을 더 일하는 셈이다. 해외의 한 언론은 한국의 근로 현실에 대해 ‘대통령 개인 휴가가 4일밖에 안 되는 나라’이고 ‘한국인은 일 중독 세계 챔피언’이라면서도 ‘생산성은 높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살인적인 수준으로 오래 일하는데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 지난달 19일 국제적 컨설팅 업체인 타워스 왓슨의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한국 직장인 중 ‘출근하면 다른 생각 않고 업무에 몰입해 일한다’고 응답한 경우는 단 6%라고 밝혔다. 한국인 응답자의 절반 가량은 ‘마지못해 회사에 다닌다’고 대답했다. 타워스 왓슨은 한국을 포함해 미국·영국·중국·일본 등 전 세계 22개국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업무 몰입도를 조사했다. 한국인 응답자는 1000여 명으로, 3분의 1은 직원 숫자 1000~5000명 기업에 근무하며, 또 다른 3분의 1은 1만 명 이상 기업에서 근무 중이었다. 연령은 90%가 25~44세였으며, 70%는 같은 직장에서 3~15년 일한 사람들이었다. ‘업무에 몰입해 일한다’는 응답은 한국에서 6%였지만, 조사 대상 22개국 평균은 21%였다.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업무에 몰입하지 않는 편’ 또는 ‘마지못해 일한다’는 대답은 세계 평균이 38%였지만, 한국에선 절반(48%)이나 됐다. 타워스 왓슨은 ‘몰입’을 기업의 성공에 기여하고자 하는 직원들의 의지 및 역량으로 정의했다. 즉, 자신이 근무하는 기업의 성공을 위해 직원이 자발적으로 어느 정도로 시간·지력(brainpower)·에너지를 투입하는가를 의미한다. 몰입도 높은 기업은 영업이익 19% 오르지만 낮은 기업은 영업이익·주당순이익 뚝뚝 떨어져 타워스 왓슨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을 성장시키는 여러 요소 중 인적자원의 성과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직원의 업무 몰입도가 높아야 한다. 몰입 공백(기업이 원하는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 수준과, 직원들이 실제로 투입하는 노력 수준의 차이)이 줄어들어야 기업의 성과가 개선되는데, 한국은 몰입 공백이 대문처럼 벌어져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타워스 왓슨이 40대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원 몰입도가 가장 높은 기업들은 연평균 영업이익이 19%, 주당 순이익이 28% 상승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직원 몰입도가 가장 낮은 기업들은 연간 영업이익이 33%, 주당 순이익이 11% 감소했다. 또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업무 몰입도가 높은 직원일수록 자신을 ‘회사에서 중요한 존재’로 인식했다. 몰입도가 높은 직원은 거의 전원(98%) 자신이 기업의 제품·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78%는 기업의 매출 증대에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몰입도가 낮은 직원은 같은 질문에 대해 각각 38% 및 26%만이 그렇다고 대답하여 자신감도 없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직장의 몰입도가 낮을까? 타워스 왓슨은 몰입도의 저하는 리더십의 부재, 특히 중간관리자의 리더십을 직원들이 못 믿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밝혔다. ‘리더십이 바뀌지 않으면 몰입도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진의 리더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직원 비율은 37%로, 영국의 45%보다 크게 낮았다. ‘기업이 맞닥뜨린 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경영진이 진심으로 직원들의 복지 수준에 관심이 있다’는 문항에 대한 한국인의 응답은 각각 34%, 32%, 27%에 불과해 몰입도가 높은 나라보다 10~13% 정도 차이가 났다. 위기관리, 인재 양성, 복지 수준 같은 중요한 기준에서 한국 직원의 신뢰도가 낮다는 반증이다. 경영진·중간관리자가 리더십 있고 부하 아껴야 몰입도 높아지는데, 직장 상사에 대한 신뢰는 “평균 이하” 이번 조사에서 타워스 왓슨은 임원급에 대한 리더십 조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중간관리자급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한국 직원들의 응답을 보면, 직속상관에 대한 신뢰도가 특히 낮았다. 직속상관이 ‘나의 효과적인 경력 개발을 돕는다’ ‘공정하게 성과관리를 수행한다’ ‘조직 외부의 학습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세 문항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한 한국인은 모두 40% 미만이었다. 중간관리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공정한 성과관리 ▲부하 직원 육성 등에 대한 직원의 만족도가 상당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요구하는 덕목도 조사됐다. 한국 직원들은 경영진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재 육성 ▲조직 비전 제시 및 실현 ▲기업의 가치 실현 ▲직원 복지에 대한 보살핌 ▲직원들과의 친밀함 등을 뽑았다. 군림하는 리더가 아닌, 육성하고 보살피는 리더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타워스 왓슨 측은 분석했다. 타워스 왓슨 한국의 박광서 사장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직원 몰입도는 고객만족, 매출 증대, 비용 절감, 수익성 및 혁신 등 기업 성과의 주요 요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조사는 직원들의 몰입도 향상을 위한 경영진 및 중간관리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또한 리더십에 대해 “기업의 리더들이 회사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역할은 습득했다 하더라도, 직원들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직원들을 고무시키고 직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직원 몰입도 향상을 위해서는 리더 및 경영진이 의사소통과 투명성 및 혁신 부문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회사 일과 개인 생활·발전이 균형 이룰 수 있도록 직장 환경 만들어 달라” 강하게 요구 2008년 금융위기가 온 세계를 덮치면서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들은 대부분 고용시장의 경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 직장인 중 84%가 ‘12개월 내 구직 기회에 큰 변화가 없거나 큰 감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세계 평균 응답이 79%인 것에 비하면, 한국 직장인들이 고용시장의 심각성을 다른 나라 직장인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직장에서 오래 일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한국인 직원의 비율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50세 이전에 퇴직할 것으로 본다’는 설문에 한국 직장인의 21%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세계 평균은 13%에 불과했다. 오래 일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직장에 대한 충성도·몰입도를 떨어뜨리고, 퇴직 프로그램에 대한 보다 큰 관심과 요구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다. 한국인 응답자들은 ▲기업의 중장기 성장 전망 ▲단기적 보상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지만, 이 밖에도 ▲업무량 ▲사무실 위치 ▲유급휴가일수 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라고 밝혔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흐름이 계속된다는 증거다. 일에 몰두하려면 첫째로 직장 내 리더십이 좋아야 하지만, 두 번째로 ‘나 개인의 경력 개발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대답한 점도 인력 운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사장은 “직원들은 일과 개인 생활을 균형 있게 하면서 회사 성공에 이바지하기를 원한다”며 “직원들이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향상시킬 준비가 돼 있다는 점에서, 직장이 이를 도와준다면 더욱 좋은 직장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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