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겸 감독 방은진이 한국의 영화음악을 모은 앨범을 발표했다. 11월 1일 발매된 ‘방은진 우리 영화음악을 만나다’(이하 ‘방은진 음반’)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영화음악을 이끈 음악감독 조성우 엠엔에프씨 대표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영화 음악가들의 곡을 4장의 CD로 엮어 모은 편집 앨범이다. “제가 라디오를 진행한 지 3년이 됐는데요, 그걸 기념하기 위해 앨범 발매를 기획하던 중 많은 사람의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이런 음반이 나오게 됐네요.” 방 감독의 말처럼 ‘방은진 음반’은 방 감독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tbs FM ‘밤으로의 여행’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앨범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적 여자 감독 중 한 명인 방은진을 비롯해 조성우 음악감독, 레코드 회사 아름다운동행의 최성철 대표, ‘밤으로의 여행’의 음악작가이자 음악 평론가인 이헌석 등은 이 앨범을 만든 정예 멤버다. ‘방은진 음반’에는 ‘슈퍼스타 감사용’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 ‘싱글즈’ ‘효자동 이발사’ ‘8월의 크리스마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선물’ ‘신기전’ ‘위대한 유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킹콩을 들다’ ‘내사랑 내곁에’ ‘불꽃처럼 나비처럼’ ‘봄날은 간다’ ‘약속’ ‘인어공주’ ‘정사’ ‘마음이’ ‘세이 예스’ ‘연애소설’ ‘순애보’ ‘영어완전정복’ ‘국경의 남쪽’ 등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 음악 95곡이 담겨 있다. “원래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음악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음악감독이 영화음악 OST를 직접 내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 많은 영화음악이 사장되다시피 해요.” ‘방은진 음반’ 속지를 보면 방 감독이 영화음악에 대해 쓴 문장이 들어온다. ‘스토리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지만, 음악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이처럼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우리 영화음악들이 너무도 가볍게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방 감독은 이번 앨범을 통해 대중이 우리 영화음악의 소중함을 알아주길 바랐다. ‘방은진 음반’은 주로 서정적이고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곡들로 구성됐다. 귓가에서 잔잔한 물결처럼 울리는 곡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아! 이 곡이 이 영화에서 나왔구나’ 하는 발견의 즐거움을 주는 음악도 곳곳에 넣었다. 또 음악과 함께 영화 속 대사도 일부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방은진 음반’의 매력이다. 이는 방 감독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11월 2일 서울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방 감독과 만나 앨범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작업과 새벽의 라디오 진행, 앨범 관련 인터뷰 등으로 요즘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는 그녀. “제가 지금 상태가 좀 별로예요.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라면서 배시시 웃은 방 감독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앨범과 일에 대해 말할 때는 주위의 공기까지 단숨에 얼게 하는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여인이었다.
-앨범을 처음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영화와 라디오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영화음악을 모아 청취자에게 틀어주고,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데에 보람을 느꼈어요. 물론 제 이름을 내건 앨범이라서 과분하고 민망하긴 했지만요(웃음).” -‘방은진 우리 영화음악을 만나다’라는 제목은 직접 지었나요? “그렇지 않아요. 기획 단계에서 지은 거죠. 물론 저를 중심으로 이뤄진 일이니까 저의 동의를 받아서 결정됐지만요.” -이 앨범에서 방 감독의 역할은 뭐였나요? “저는 음악을 배치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같은 반찬도 배열을 잘해야 더 먹음직스럽잖아요(웃음). 그 외에 음악 판권은 조성우 음악감독이, 선곡과 콘셉트는 이헌석 음악 평론가가, 제작 관련 진행은 최성철 대표가 했고요.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주도는 조 음악감독이 맡고 저는 그에 맞게 의견을 내는 정도였어요. 음악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중간 매개자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아쉬움은 없고요? “곡을 더 실었으면 좋았겠죠.” -1990년을 기점으로 곡을 선정한 이유는요? “우리 영화계에서 1990년대는 각 부분이 전문화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볼 수 있어요. 그 이전에는 미술 감독, 음향 감독이란 개념이 없었고, 그냥 미술, 음향 이런 식으로 표현했으니까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존 영화사와 젊은 프로덕션이 공존하는 시대가 왔고, 각 파트가 전문화·세분화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각 파트가 독립된 컴퍼니를 운영할 정도로 커졌죠.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한국의 역사를 빛낸 영화 속 음악을 모은 건 맞지만, 그냥 현재에서 과거로 역추산해서 곡을 모았다고 생각해 주세요. 어떤 곡이 좋고 덜 좋고를 떠나서 사장되기에 아깝다고 생각한 곡들을 최대한 모으려고 노력했으니까요.” -이 앨범이 갖는 의미는 뭘까요? “영화를 보지 않으면 따로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모아놓은 앨범입니다. 한 곡씩 들을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기분이 뿌듯하군요. 영화 뒤에 숨어 있던 오리지널 스코어가 음반이라는 물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랄까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영화음악이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여러분도 앨범을 듣고 나면 저와 같은 기분을 느낄 겁니다.” -이 앨범의 특징은 뭔가요? “드라마 속에서 잔잔하게 깔리는 서정적인 음악을 중심으로 채웠고, ‘약속’의 박신양,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 등 배우들의 대사를 중간에 실어 지루함을 없앴다는 겁니다.”
-방 감독은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에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이런 질문엔 대답을 잘못하면 큰일 나요(웃음). 그냥 이 말로 대신할게요. 세 번째 CD가 제 취향에 가장 가깝다고요.” -앨범에 대한 수익금의 배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았어요. 만일 수익금이 생긴다면 그 중 일부를 예술영화전용관 건립 기금을 위해 쓰고 싶어요.” -그 이유는 뭔가요? “우리나라에 한국영화의 젊은 피들이 만든 작품을 상영할 공간이 없다는 건 정말로 창피한 일입니다. 상영 공간이 없으면 자리를 계속 옮길 수밖에 없고, 허리우드 극장이 있는 주변은 요즘 젊은이들과 맞지 않고요. 예술영화전용관 건립은 제가 이 앨범을 만든 취지에 가장 잘 맞는 이유입니다.” -평소에 가장 즐겨듣는 한국 영화음악은 뭡니까? “‘오로라 공주’(방은진의 감독 데뷔작)의 OST를 만든 정재형 음악감독의 음악은 늘 챙겨서 듣고 있어요. 또 ‘이화에 월백하고’의 음악감독이기도 한 이병우의 앨범도 좋아하고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은 도드라지는 매력이 있어서 음악 사이트를 통해 듣곤 합니다.” -즐겨 듣는 외국의 영화음악은요? “‘디 아워스’ ‘시네마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ST와 ‘집시의 시간’의 고런 브레고빅(Goran Bregovic)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랑 블루’의 음악을 만든 에릭 세라(Eric Serra)도 즐겨 듣고요. 저는 펑키 재즈나 탱고 같이 운율과 리듬이 살아 있는 음악을 선호해요.” -한국의 엔니오 모리코네(세계적인 영화음악 감독)는 누구일까요? “음…. 한 사람을 꼽자니 고민이 많이 되지만 그간의 행보나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차지하는 입지, 다른 음악감독의 참여도, 대중과의 소통 등을 종합하면 조성우 음악감독이 가장 적당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감독의 차기작 ‘이화에 월백하고’는 어떤 작품인가요? “조선시대 10대 소녀 과부들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조선시대 소녀판 ‘섹스 앤 더 시티’라고 보시면 돼요. 내년 중반쯤 관객을 만나게 될 겁니다. 지금은 각색 작업 중인데 시나리오 단계가 아직 끝나지 않아 힘이 많이 듭니다.” -‘방은진 음반’ 2탄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2탄이 나온다면 그때는 제가 앞장서 나서볼까 싶기도 해요. 어쩌면 이번 앨범도 제가 직접 영화 쪽을 설득했으면 더 수월하게 진행됐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여러 사람이 주도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안 되고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잠자코 있었어요.” -끝으로 영화음악 팬과 ‘CNB저널’의 독자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저는 영화가 우리를 계속 꿈꾸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여러분은 꿈의 한 자락을 만나게 될 겁니다. 이번 앨범에 제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음악은 없지만 이런 음악들을 한데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와 뜻을 같이해 준 영화인들 덕분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 감사함을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방은진은 한 편 한 편이 관객들의 마음에 남고, 기억에 남고, 추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