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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 - 18]진찰대 위에 회칼 꽂은 남자

돈 뜯어내려다 특진비 두배 낸 보호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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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3호 박현준⁄ 2011.10.12 14:23:31

미국이나 일본 특히 일본에서는 환자가 사망하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 먼저 의사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한 뒤 변호사를 선임하고 고소를 한다. 우리나라처럼 고함치거나 행패를 부려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시도는 보기 어렵다. 어떤 방식이 더 무서운지는 모르겠다. 선진국에선 의료 사고 전담 변호사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송을 벌여 승소하는 경우가 많고, 엄청난 액수를 감당해야 하는 의사들은 의료사고 보험에 반드시 가입한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어느 산부인과 여의사는 환자가 사망하자 유가족들이 시신을 둘러메고 병원에서 시위를 하는 것도 모자라 병원과 집을 점령하고 난리를 피우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또 모 대학 병원의 소아심장 전문의는 폭력배까지 동원해 괴롭히는 것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몇 개월간 피했던 사건도 있었다. 법으로 해결하라고 하면 “법 좋아하네”라며 마이동풍이었다. 기물 파손 및 폭력으로 경찰을 불러도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조교수 시절 때 일이다. 일요일 저녁 선배 교수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잘 아는 사람의 아이인데 심장 부전증이 있어 응급실로 왔으니 직접 봐달라는 것이었다. 환자를 살펴본 결과 심부전 증세가 매우 심해서 환자 부모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지금 상태가 아주 위독합니다.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치료를 해도 살아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보호자의 동의와 애원으로 집중 치료실에 입원시키고 치료를 했지만 이틀이 지나 사망했다. 치료가 어렵다는데도 애걸복걸해 입원시켜 줬더니 환자가 사망하자 삼촌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칼을 내 책상에 꽂고…. 과거에 비슷한 경험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도 잊히지 않는 화요일 아침…. 외래에 있는데 병실에서 전화가 왔다. 그 아이의 삼촌이란 사람이 난리를 피우는데 말리는 사람의 따귀를 때리고 기물을 파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는데 그 삼촌이라는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내 방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와서 “당신이 주치의야? 애 죽여 놓고 여기 앉아 있어?” 하면서 주머니에서 칼을 뽑더니 책상 위에다 꽂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자지러지게 놀랐을 것이다. 내가 “당신이 삼촌이라고? 당신을 본 적이 없는데 이제 나타나서 난동이야? 그리고 칼을 뽑아? 당신이 삼촌이라도 아기 부모와 함께 와! 무슨 유치한 짓이냐”고 하자 그 사람은 “너 정말 죽어 볼래?” 한다. 이건 정말로 유치한 공갈 협박이었다. 그동안 별 사람들을 다 봤지만, 일요일 밤에 환자를 데려와 치료가 힘들다는 설명까지 했는데도 부탁해 입원한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경우였다. 내가 강하게 나가자 보호자라는 사람들은 병원장실로 쳐들어갔고, 그래도 소용이 없자 결국 내게 다시 찾아와 특진비를 빼 달라고 요구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환자의 아는 사람 중에 원무과 직원이 있었고 그의 코치(?)로 돈을 좀 받아내 보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나는 퇴원장을 가져 오라고 해서 보통 100% 부과하는 특진비의 상례를 깨고 200%를 부과했다. 지금은 의사가 잘못을 감출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언론에서는 환자 사망 등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들이 감추려고 하면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나 보호자들이 법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법을 따르기 이전에 병원이나 의사를 상대로 악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양심을 파는 의사를 제외하고 적어도 대형 병원, 대학 병원 등에서는 사망 원인을 조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간호사와 다른 의사들의 감시(?)의 눈이 도처에 있으며, 양심을 벗어난 행동을 방관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유가족 횡포 무서워 도망간 의사들 병원은 그 어느 장소보다 희로애락이 매순간 교차하는 곳이다. 병이 다 나았다고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는 사람, 가족이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애태우는 사람,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옆에 있던 가까운 가족을 보내고 실신하는 사람…. 의사 생활 40년 동안 기뻐서, 슬퍼서 함께 웃고 눈물을 흘린 일도 많았다. 그간의 사정을 보면 환자의 죽음이 의사의 과실인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죽음도 있으며, 왜 사망했는지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육체를 과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30년 전에는 의사들의 확실한 과실일지라도 숨기고 넘어가려는 시도도 많았고, 왜 사망했는지 항의하는 보호자가 무서워 도피하는 바람에 보호자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조교수 때 일이다. 산부인과 외래 앞을 지나가는데 병원 경비원들과 웬 남자 간에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외래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산모가 아기를 낳고 갑자기 사망했는데 보호자가 나타나서 난리라는 것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다 보니 나와 군대 시절을 함께 했고 대학 시절에는 유도 선수였던 후배였다. 내가 다가가서 이름을 불렀더니 한참 흥분해 있던 그 친구는 나를 보고는 “이 병원에 계셨어요?”라며 놀란다. 내 방으로 온 이 친구, 형수가 아기를 낳자마자 사망했는데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전공의는 “죽을 만 했으니까 그랬다”고 한다. 주치의를 보자고 하니 만나주지 않아 소리를 쳤다고 했다. “최소한 주치의가 왜 사망했는지 이유는 직접 얘기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게 그의 말이었다. 이 사건은 출산 후 아주 드물게 나타날 수 있는 패혈증으로 생각되는데 마음 약한 주치의가 무서워서 피한 사건이었다. 내 주선으로 주치의를 만나서 설명을 다 듣고 나서 그 후배는 “전공의는 무조건 덮으려고 하고 주치의는 도망가고…. 이래서 되겠습니까? 최소한 의사의 양심이나 용기가 있다면 주치의로서 진심에서 나오는 설명은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면서 병원을 떠났다. 의사의 태도에 따라 유가족의 태도도 달라진다. “죽을 만하니 죽었다”고 말해 분노를 폭발시킨 의사가 있는가 하면, 사고 뒤에도 “수고했다”는 말 듣는 의사가 있으니… 다른 사례도 있다. 지금은 은퇴한 한 심장 전공 교수는 심도자 검사를 하다가 조영제 쇼크(10만 명 중 1명에게 생길 수 있다고 함)로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자 이 환자가 사망하기까지 일주일 동안 거의 환자와 함께 했다. 오죽하면 환자 보호자가 이젠 좀 가서 쉬시라고 했을까? 환자가 사망한 뒤 환자 가족들은 주치의에게 “수고하셨다”고 하면서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과거에는 의사의 실수가 분명하더라도 감춰질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불가능하다. 함께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나 전공의 그리고 테크니션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아야할 사실은 의사도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며 또 수술 등을 할 경우에는 직접 집도를 하는 의사만이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반을 보면 순수함이 빠진 슬픔도 많다.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다르지만 과거에는 사망만 하면 시신을 둘러업고 병원에 나타나서 큰 대가(?)를 받아낼 때까지 농성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잘 아는 개원의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응급 환자라고 중년의 남자가 내원해 대낮이니 큰 병원으로 보내려 했지만 증세가 심한 것 같아 주사를 주고 지켜보고 있는데 30분 만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들이 나타나서 “멀쩡한 사람에게 주사 잘못 놓아서 죽였으니 책임을 지라”며 기구 등을 던지고 난리를 쳐서 법적으로 하라며 경찰을 불렀으나 소용이 없더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병원을 찾아가 환자의 신상을 알아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죽은 사람이 사는 집 근처의 종합병원 몇 군데에서 진료 기록을 찾아봤다. 다행히 내가 의사라서 병원들이 협조를 잘 해줬고 한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찾았는데 수개월 전에 심장 관상동맥 질환으로 중재술을 하라고 했으나 차일 미뤄 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데도 모두가 의사 책임이라니….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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