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 - 21]‘맥주병 환자’ 싣고 질주한 구급차

정말로 응급환자 운반했는지 확인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  

cnbnews 제247호 박현준⁄ 2011.11.07 13:08:19

나는 밤 12시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때 군 복무를 했다. 밤 12시가 넘으면 경찰이나 구급차 이외에는 누구도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교통지옥이라는 말도 없었고, 길이 막힌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의무대에는 군의관 여러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대학 선배 한 사람이 술을 무척 좋아해서 우리는 자주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 보면 12시를 넘기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우리는 군 응급차를 이용하곤 했다. 한밤중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달리는 기분도 괜찮았다. 당시 119 구급대는 없었고 병원의 구급차도 적었다. 말이 구급차였지 규모나 시설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교통이 전혀 막히지 않으니 응급 환자를 빨리 옮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병원도 대형화되고 그에 따라 구급시설과 응급차도 많이 늘어났다. 교통은 복잡하고 응급을 요하는 환자도 많아지니 소방서에 ‘119’라는 전화번호로 국민의 질병 관리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주는 시스템이 생겨났고, 민간 응급차 그리고 병원의 구급차도 대형화됐다. 구급차가 뒤에서 달려와 비켜주려니 서두르던 구급차가 내 차를 받아. “전화번호 줄테니 연락하라”는데도 핏대를 올리는 구급차 운전자에게 “어떤 환자길래…”라고 따지니 전국적으로 교통이 막히다 보니 응급차는 양보를 받아 달릴 수 있게 하는 법이 적용됐다. 그러나 워낙 교통지옥이다 보니 응급차가 빨리 가는데 문제가 많다. 얼마 전 TV를 보니 응급차가 사이렌을 울려도 운전자들이 잘 비켜주지 않는다면서 응급차에 카메라를 달아 경찰이 이를 철저히 단속하기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응급환자는 일분일초가 급하기에 당연히 모든 차량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 내가 환자를 보려고 신촌에서 영동의 병원으로 가던 중 뒤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는 응급차를 비켜주려고 하다가 그 응급차가 무리하게 옆으로 튀어 나오면서 내 차와 충돌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응급차 운전자가 내려서 내가 응급차를 막아서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며 큰소리를 쳤다. 어이가 없던 나는 내 전화번호를 주면서 어서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나중에 연락하라고 했지만 사고 문제를 계속 추궁하는 것이었다. 화가 난 나는 “도대체 어떤 환자냐”면서 “나도 의사인데 좀 보자. 급한 환자라면서 이럴 시간이 있느냐”며 응급차 뒷문을 열고 들여다봤다. 황당하게도 환자는 없고 온통 맥주 박스가 실려 있었다. 요즈음 내가 의사여서 주의 깊게 보니 00정신과, 00피부과 등을 써 붙인 응급차도 눈에 띈다. 미국의 경우 의사에게는 앞에 의사라는 표시를 해주고 응급차 같은 대우를 해준다. 그리고 더 급한 환자는 헬리콥터도 쉽게 이용해 이송할 수 있다.

이제 응급차에 대한 규정도 선진화돼야 한다. 정말로 응급 환자를 이송했는지 병원에서 확인을 받아두는 제도 등 말이다. 그래야 일부지만 다른 용도로 교통질서를 무시하고 달리는 가짜(?) 구급차의 횡포를 막아 교통질서도 지키고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는 일도 더 쉬워지리라 본다. 10km로 부닥쳐도 목부터 감싸니… 얼마 전 TV에서 “몇 군데 중형병원의 경우 교통사고 입원 환자라는 기록만 있을 뿐, 실제 병원에 머무는 환자는 거의 볼 수 없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가짜 환자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상해 환자로 등록이 돼 있고 그것도 교통사고가 대부분이라는 보도였다. 자동차 보험회사는 현재 상태로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며 보험료를 올리고 있는데, 그 내막을 보면 보도된 것처럼 가짜 환자가 문제일 뿐 아니라 조금만 흠이 나도 다른 부위까지 수리를 하는 운전자들이 큰 문제이다. 이를 부추기는 수리 회사 등 때문에 보험사의 부담이 커져서 국민 부담이 늘어나지만, 죄의식을 갖지 않고 가담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심한 자원 낭비다. 나는 최근 2년 사이에 접촉사고를 2번 경험했다. 2번 모두 주차장 안에서 발생한 가벼운 접촉 사고였다. 하지만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를 핑계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인 내가 봐도 전혀 병원에 갈 대상이 아닌데도…. 한 10년 전 일이다. 내가 한눈을 팔다가 교차로에서 앞에 서 있는 택시를 추돌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 것이었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택시기사가 차에서 내리는데 목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보통 추돌 사고가 나면 채찍 손상이라고 해서 목이 젖혀 생기는 통증이 생길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손상은 가벼운 추돌에서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택시 운전사는 목을 감쌌지만 손님은 “아무렇지 않다”며 택시에서 내리고, 병원에 가니 “전치 2주”라며 진단서를 뗐지만 막상 내가 의사라고 밝히니… 자동차 사고에 대해 택시기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택시 손님은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며 내려버렸다. 나는 차를 추돌한 것이 전적으로 내 과실이라고 인정했다. 문제는 교통순경이 오더니 택시기사와 몇 마디 주고받고는 나보고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야 하니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잠시 진찰을 받더니 2주 진단이 나왔으며 한 일주일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해야 하는데 보험으로 하겠느냐 아니면 내가 부담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시속 10km나 됐을까?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의사의 진찰실로 들어가서 “무슨 문제인데 2주 진단이냐”고 묻자 그는 “진단은 의사가 내리는 것”이라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직업과 직장을 밝히고 세브란스로 가서 진단을 다시 받게 해주겠다고 말하자 이 의사, 금방 태도가 변하며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았느냐”고 웃어넘기려 했다. 이 병원도 일부 병원이 그렇듯 교통경찰과 내통해 환자를 데려오면 돈을 건네고, 환자의 진단을 부풀려 돈을 벌고, 피해자는 진단서를 제출해 가짜환자로 시간을 보내면서 돈을 받는 놀이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요즈음 자동차에 일부러 치어 부상당한 척하며 돈을 받아 내거나, 병원과 짜고 서류상으로만 입원을 할뿐 실제로는 밖에서 돌아다니는 가짜 환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자해공갈단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할 짓과 못할 짓은 구별해야 하지 않을까? 양심을 파는 사람들이 비록 일부일지라도 의사, 경찰, 택시기사 등 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는 점이 씁쓸하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