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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아뿔싸, 번지수가 잘못됐네!

커닝 잘못을 빌러 교수님 댁을 찾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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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1호 박현준⁄ 2011.12.05 11:15:14

의예과는 수업 시간이 너무 많았다. 모든 이과계 과목을 다 배우는 것 같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 그리고 토요일엔 4시간 수업을 받는 등 고등학교 수업보다도 더했다. 우리는 당시 화학, 물리, 생물 중 한 과목을 선택하는 입시제도 아래서 고등학교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선택 과목이 아니면 매우 어려웠다. 그 밖에도 물리화학, 미적분 등 의예과 과목은 의학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학생들을 지치게 하고, 공부에 정을 떼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나는 그 당시에 했다. 그래서 내가 교수가 된 뒤에는 학교 측에 건의했고 또 지금도 학장에게 의예과의 개혁을 말하고 있다. 물론 세월이 약이라고, 지금은 예과 수업 과목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이 많은 과목과 씨름하다가 입학 동기 중 20여 명이 예과 재수를 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아예 학교를 그만뒀다. 물리-화학 시험을 보던 중이었다. 강당에서 시험을 보는데 나와 내 친구는 과감히 시험지를 바꿨다. 나는 그 친구 시험지에 유유히 답을 달아 주는데 마음이 유난히 약했던 이 친구는 눈치만 보다가 그만 시험이 끝나버렸다. “연필 내려놓으라”는 말을 들은 다음에야 몇 자 더 적다가 감독관에게 시험지를 빼앗겼다. 친구와 시험지를 바꿔 써넣기 하다가 걸려 시험지를 빼앗겨, 내가 그 친구로 변장하고 교수님 댁을 찾아갔더니 따귀 전문 교수님 왈 “오늘 난 시험감독 한 적 없는데?” 누구에게 시험지를 빼앗겼냐고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신학대학 교수라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평소에 학생들에게 매우 엄격하며 담배 피우는 것만 봐도 따귀를 때리는 교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있으랴? 안경을 끼고 키도 비슷한 친구에게 “이제는 네가 나고, 내가 너다. 어차피 내 이름이 적힌 시험지를 빼앗겼으니…” 하고는 그날 저녁 수소문해 그 교수 댁을 찾아갔다. 나를 맞이하는 교수의 눈초리가 그날따라 더 매섭게 느껴지는데 무슨 일로 왔냐고 하신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아까 강당에서 시험 시간에 제가…” 하는데 “그런데 나는 오늘 원주 분교를 다녀왔는데…”라고 하신다. 그래서 ‘아차! 잘못 알았구나’ 생각하고 “아닙니다. 제가 잘못 알고 온 것 같습니다” 하고 나오려는데 “학생, 들어와. 시험 볼 때 뭐가 어쨌단 말이야. 이왕 왔으면 자초지종은 말하고 가야지” 하면서 반 강제로 집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래서 “사실은 시험 시간에 부정행위를 했다고 시험지를 빼앗겼는데 부정이라기보다 시험이 끝난 뒤 나오면서 몇 자 더 적어 넣다가 빼앗긴 겁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빼앗은 감독관을 교수님으로 잘못 알고 그만…”이라고 했다. 그러자 교수님이 “자네, 남의 시험지를 보고 쓴 것이 아니고 나오다 몇 자 더 적었다고 했는데, 지금 그 말 진실이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할 수 있겠는가?” 하시는 것이었다. 급한 김에 “네” 하는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교수님, 전화를 걸어 담당 교수에게 “이 학생, 명확히 말해서 부정행위는 아니니 한 문제만 못 맞춘 걸로 하고 나머지 점수는 그대로 계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과목에 문제가 생기면 진학에 문제가 있었던 나는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하나님을 속이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모른 척 해주신 것일 거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 의대생들의 별난 체육 열기 전국 의대생들이 만나는 체육대회가 있었으니… 필자가 의과대학 다닐 때 전국 의과대학 체육대회는 기대에 설레는 축제의 장이었다. 전국의 의과 대학생들이 만나서 배구, 야구, 축구, 농구, 탁구, 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을 1년에 한 번씩 견주는 축제였다. 의대생들의 대회라고 해도 그 수준은 매우 높았다. 중학교 때 전국 체전에서 1위와 3위를 했던 탁구 선수 출신, 야구 선수였던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연식 테니스 선수 생활을 했던 학생은 전국 대학생 테니스 대회에 출전했을 정도로 실력파였다. 나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했고, 그 외에도 우리 농구부에는 중학교 때 선수였던 후배가 2명 더 있었다. 따라서 우리 의과대는 내가 예과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5년간 내리 우승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의대 체육부장이던 시절, 부산 의대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우리 농구는 승승장구하다가 준결승에서 모 지방대학과 시합을 하게 됐는데 한 5분 정도 경과하다보니까 상대방 선수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전반전이 끝나고 나는 이의를 제기했다. “너희 선수들 적어도 5명은 의대생 같지가 않다”고 했더니 “의대생이 맞다”고 우기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을 만나자고 해서 해부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들, 한참을 있다가 안 배워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규 2부 리그 대학의 농구 선수들이었다. 경쟁이 얼마나 심했는지 의대생 아닌 일반 농구선수를 동원한 대학도 있었고, 야구시합 중 난투극을 벌이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비극 탓에 전국대회 자체가 없어져버려 창피하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선수들을 보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이기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즈음 각종 대회를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게 우선이고, 스포츠맨십은 상실된 것 같은 분위기가 많다. 내가 대전에서 공군에 근무할 때 대전에서 전국 의대 체육대회가 열렸다. 멀지 않은 거리였으므로 후배들 응원 차 구경을 갔는데 사고가 발생했다. 야구 경기 도중 투수가 던진 공에 타자가 맞았는데 이것이 빌미가 돼서 양 팀 간에 집단 난투극이 시작됐다. 그런데 힘이 부친 한 학생이 야구 방망이로 상대방의 허리를 겨냥해 휘둘렀는데 그 학생이 앉으면서 피하다가 오히려 머리를 맞고 사망한 것이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뒤 전국 대회가 없어졌다. 무척 아쉽다. 전국의 의대생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고, 의대생의 스트레스를 서로 풀어가던 그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없애기보다는 그 사건을 계기로 보완하고 수정해 더 나은 만남의 장으로 키워갈 수는 없었을까?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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