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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②]동서문명 교차로, 말라카 차이나타운

거리 활보하니 즐거움 이상의 ‘감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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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1-38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4.06.05 08:54:58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여행<2/4> 인천 - (중국 남방항공 CZ) - 중국 심천 (2박) - (Air Asia)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말라카(1박) - (쿠알라룸푸르) - (Air Asia) - 자카르타(1박) - (Batavia 항공) - 암본(1박)  - (Batavia 항공) - 수라바야 경유 - (버스) - 덴파사르 발리(1박) - (Air Asia) - 족자카르타(1박) - (Air Asia) - 자카르타 - (대한항공 KE) - 인천



4일차 (말라카 → 쿠알라룸푸르 → 자카르타)  

고도(古都) 말라카

호텔에서 조식 후 말라카 시내 관광에 나선다. 중국,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고도(古都)를 배회하니 감개무량하다. 호텔을 나와 먼저 성 바울(St. Paul) 교회로 향한다.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위에 자리 잡은 교회는 1521년 건립한 것으로서 예수회 선교사 하비에르(Francis Xavier)의 무덤이 있었다. 원래 이곳에 있던 하비에르의 유해는 훗날 인도 고아(Goa)로 옮겨졌다.

교회에는 멀게는 400년 전, 가깝게는 100∼200년 전에 묻힌 네덜란드인과 영국인들의 무덤이 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스러져간 이방인들의 수많은 사연들이 맺힌 이 작은 언덕은 지난 밀레니엄 후반부에 이뤄진 수백 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를 웅변해 주는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

교회에서 내려오니 산티아고 관문(Porta de Santiago)이 있다. 1511년 포르투갈의 알부르케르케(Alfonso d’Alburquerque)가 건설한 것으로 요새의 관문에 해당한다. 네덜란드의 침입, 영국의 간섭으로 얼룩진 500년 풍상을 겪은 유적이지만 온전히 건재한다. 독립기념관을 관람한 후 하비에르 교회(Xavier Church, 1863년 하비에르를 기념해 건립)를 지나 작은 운하를 건너니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이다.
중국풍, 말레이풍, 인도풍, 포르투갈풍, 네덜란드풍이 모두 어우러진 차이나타운은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채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있다. 역사와 문화가 섞인 만큼 인종도 많이 섞였다. 눈이 파란 중국인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정화를 모신 Cheng Hoon Teng(青云亭) 사원은 1646년 건립됐고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다. 중국 남부 양식으로 지은 사원 안에는 명나라 정화의 첫 번째 말라카 원정(1405)을 기념하는 비석이 서있다.

동서 문명의 교차로

불교 사원뿐만이 아니다. 노랗고 파란 건축물들 사이에는 수마트라(Sumatra) 양식으로 지은 무슬림 사원인 캄풍 클링 모스크(Kampung Kling Mosque) 등 유적지가 즐비하다. 수백 년 동서양이 각축했던 말라카 차이나타운의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단순히 여행의 즐거움 이상의 그 무엇을 안겨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 그 거리에 내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동서양 만남의 교차로에 지금 내가 서있다. 쉽게 와볼 수 없는 곳, 말라카와 우연히 맺은 인연은 짧지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어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말라카까지 오느라 들인 수고가 몇 배로 보상받는다.

▲쑨다 끌라빠, 아직도 범선이 현역 활동중이다.


말라카 해협 풍경

차이나타운을 나와 도시 남쪽 바닷가에 새로 조성된 관광단지인 포르투갈 광장(Portuguese Square)으로 이동해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한때 융성했던 동서양의 교차로는 이제 고즈넉한 어촌으로 바뀌었다. 한때 세계 80여개 언어가 들렸던 세계 문명의 십자로는 증기선의 등장과 바로 남쪽 싱가포르의 개발로 쇠락해 버렸다. 낡은 시내버스가 지나가 길래 잡아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호텔에 맡겨 뒀던 짐을 찾아 말라카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2시간여를 달려 쿠알라룸푸르 푸두라야(Puduraya) 터미널에 닿는다. 일단 택시를 타고 말레이시아 국립박물관으로 향한다. 선사시대, 고대, 콜로니얼 시대,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를 기록한 박물관은 역사박물관에 가깝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KL 센트럴(Sentral)로 이동해 공항버스를 타고(버스요금 8 링깃, 한화 약 3000원) LCCT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지났다.

시간이 여유로 와 인근 푸드코트에서 말레이시아 현지 음식을 푸짐하게 맛보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행 Air Asia 항공기를 기다린다. 같은 언어, 비슷한 인종으로 구성됐고 비슷한 시기에 함께 독립국으로 출발한 이웃 인도네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두 나라 사이에 격차가 있다면 그것은 영국 식민 통치와 네덜란드 식민 통치의 차이일까? 아니면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펴면서 말레이시아의 경제력을 키운 마하티르 전(前) 총리 덕인가? 자카르타행 항공기 출발 시각이 다가오면서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말라카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이 있다.


난생 처음 적도를 건너다

Air Asia 항공기는 쿠알라룸푸르 저가항공 터미널(LCCT)을 오후 6시 50분 이륙해 남행한다. 기류가 만만치 않다. 적도 수렴대의 활발한 상승 기류 활동 때문일 것이다. A-320 에어버스 중형 여객기는 몇 차례 수십 미터를 곤두박질하며 요동을 부린다. 그러는 사이 항공기는 적도를 무사히 건너 남위 6도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타(Soekarno Hatt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반구 땅을 밟은 것이다. 작은 감격이다. 예약해 둔 시내 호텔로 찾아 들어가 편안한 밤을 맞는다. 


5일차 (자카르타)

말레이시아 vs 인도네시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간 호텔 식당에는 현지인들의 다양한 얼굴이 보인다. 섬나라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대륙 남쪽 끝 반도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보다 훨씬 다양한 인종 구성을 보인다.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아 여기가 폴리네시아(Polynesia)와 멜라네시아(Melanesia)의 경계쯤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 다른 나라에 와있는 것이다.

자카르타 vs 바타비아

호텔을 나와 올드 바타비아(Old Batavia)로 향한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불렸던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다. 코타(Kota)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네덜란드 통치 시절 구도심으로서 중심에 따만 파타힐라(Taman Fatahilah) 광장이 자리 잡고 있고 인근에는 한자 표기가 전혀 없는 야릇한 차이나타운인 글로독(Glodok) 쇼핑센터가 있다. 광장에는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네덜란드식 건축물들이 멋을 내고 서있다.

구 시청 건물(1710년 건립)에 들어선 자카르타 역사박물관은 밖에서 본 웅장한 모습과는 달리 전시물은 초라하다. 납작한 창고 건물들이 늘어선 운하를 따라 잠시 차량으로 이동하니 순다 끌라빠(Sunda Kelapa) 구 항구이다. 돛으로 움직이는 범선이 수십 척 정박해 있고 시멘트 포대 같은 화물을 싣고 내린다. 이 항구에는 여전히 슐라웨시(Sulawesi)와 보르네오(Borneo) 지역에서 화물이 들어오고 나간다. 배 밑바닥이 좁은 범선이기에 도서 지역의 열악한 접안 시설을 극복할 수 있어서 아직도 유용한 것이다.

자카르타 중앙역을 정면으로 보면서 이동하니 곧 국립박물관이다. 박물관이 있는 수디르만(Sudirman) 거리는 방금 들렀던 어수선한 구 시가지와는 달리 초현대식이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보다 빼어난 세련미와 화려함을 뽐낸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박물관 중 하나로서 동남아 도자기와 자바 힌두 문화 전시물이 다채롭다.
거대한 섬나라

▲말라카해협, 세계 물동량의 1/3과 세계 원유수송량의 2/5가 이 해협을 지난다.


인도네시아는 1만7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됐고 동서로는 5100Km, 남북으로는 1888Km에 달하는 방대한 영토를 자랑한다. 면적으로 세계 15위, 남한의 20배, 한반도의 9.5배 면적이다. 300개가 넘는 종족과 500개가 넘는 언어가 어떻게 분포됐는지 보여주는 대형 지도가 눈길을 끈다. 박물관은 고대 자바, 수마트라 섹션에서 시작해 현대 기술, 인종과 문화 섹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을 나와 잠시 이동하니 메르데카 광장 중앙에 독립기념탑 모나스(Monas,  Monumen Nasional)가 자리 잡고 있다. 네덜란드의 통치를 벗어나 1945년 독립한 것을 기념해 1961년 건립했고 1975년부터 일반에 개방했다. 기념탑 꼭대기에 올려놓은 횃불 상징물이 이채롭다. 137m 타워를 올라가고 싶었으나 주말 나들이 인파로 줄이 너무 길어 아쉽게도 타워 관람은 포기했다.

오랜만에 맥도날드로 점심을 먹고 도시 남쪽에 위치한 따만 미니(Taman Mini Indonesia)로 이동했다. 따만 미니는 ‘작은 마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거대한 민속촌이다. 인도네시아 각 지역의 주택과 민속이 소개돼 있다. 코모도 왕도마뱀(Komodo dragon)과 이구아나(iguana), 그리고 파이톤(python) 등 희귀 파충류를 실컷 보는 행운도 누렸다. 인도네시아의 광활함과 다양성에 그저 놀랄 뿐이다. 말레이시아와는 다른 인도네시아의 독특함을 곳곳에서 느끼며 다닌 자카르타에서의 하루를 되돌아본다. 언어가 같고 인종과 종교까지 같지만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 제도가 말레이시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직접 땅을 밟아보고 그 땅에 사는 시민들과 호흡을 맞춰 본 후에야 깨닫게 됐다.

▲자카르타 시내 중심 독립기념탑 모나스(높이 137m)


자카르타 공항 국내선 터미널에서 암본(Ambon)행 바타비아(Batavia) 항공 심야 비행기를 기다린다. 강한 비가 잠시 걷히고 안개가 깔린 낯선 타국 공항의 밤 풍경은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국제민간항공기구(IATA)의 안전도 평가에서 늘 낮은 등급을 받는 인도네시아 국내선 항공기를 이용해야 하는 심적 부담은 공항 시설을 보는 순간 어느 정도 사라진다. 섬이 많은 인도네시아는 항공 여객운송 사업이 매우 발달했다. 자동차는 아직 생산하지 못해도 항공기를 생산할 능력은 갖춘 나라다.


6일차 (자카르타 → 암본)

드디어 Spice Islands에 닿다

암본행 항공기는 적절히 승객이 많다. 승객은 매우 다양해서 인도네시아의 모든 인종을 모아놓은 것 같다. 항공기는 굵은 비가 내리는 자카르타 공항을 자정 지난 1시에 이륙해 정동쪽으로 밤하늘을 날아 3시간 20분후인 새벽 6시 20분 암본 공항에 도착했다. 암본 공항은 시설이 훌륭하고 깨끗하다. 과거(1999-2002) 3년간 1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참혹한 인종(종교) 분규가 있었던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후덥지근하고 묵직한 새벽 공기가 방문자를 맞이한다. 공항은 아침 비행기를 타러온 사람들로 이미 붐빈다. 자카르타보다 두 시간 이른 이곳 표준시는 우리나라 표준시와 같다. Spices Islands 향료 제도 몰루카(Molucca)의 중심 도시에 드디어 발을 디딘 것이다.

암본은 인도네시아 32개 주의 하나인 말루쿠(Maluku)의 주도로서 북말루쿠(주도 테르나테, Ternate)와 함께 향료 제도(spice islands)를 형성한다. 오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과 폴리네시안(Polynesian)이 주축인 암본 사람들은 자바 사람들과 생김새로 쉽게 구별된다. 짙은 피부, 곱슬머리, 우람한 체격이 특징이다. 남위 3-8도, 동경 125-135도 사이에 놓인 말루쿠주는 북으로는 북말루쿠(North Maluku)주, 남으로는 서티모르주와 호주, 동쪽으로는 서파푸아주(인도네시아에서는 이리안 자야, Irian Jaya라고 부른다), 서쪽으로는 슐라웨시(Sulawesi)주와 접한다.

▲코모도 드래곤, 코모도섬에 서식하는 희귀 파충류


기독교 지역

비싼 택시 대신 마침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운 좋게 만났다. 노련한 버스 운전사는 삽시간에 시내 중심 호텔에 데려다 줬다. 깊게 파인 만(bay)을 끼고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돌아 나오는 길이 아름답다. 곳곳에 있는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가 한창이다. 몰루카 주민의 주 종교는 원래 이슬람이었으나 네덜란드가 전파, 개종시킨 결과 지금은 기독교가 주축이고(신교와 구교 합쳐서 60%) 이슬람은 술라웨시 지역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의 종교이다.  

폭동의 흔적

길거리 작은 시비로 우연치 않게 발생한 종교 분규의 상처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으나 도시는 의외로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그러나 곳곳에 주둔한 군대와 경찰 병력의 규모로 보아 아직 이곳이 치안 불안 상태임을 말해 준다. 군대의 존재만으로 폭동 재발 억제 효과는 있을 듯싶다. 시내에는 폭동으로 불타고 폐허가 된 교회와 바로 그 옆에 새로 건축한 교회가 나란히 서있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속에 깔린 무거운 침묵은 여행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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