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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지구는 난파 직전의 우주선, 세계 생태·환경도시서 배워야”

“모험과 도전정신의 로빈후드·돈키호테 같은 창조적 리더와 후원그룹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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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5호 정의식 기자⁄ 2014.07.03 08:57:18

▲꾸리찌바 꽃의 거리에 선 박용남 소장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수많은 해외 도시를 돌며 친환경·생태·창조도시의 사례를 연구하고, 이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국민들에게 소개해온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이 그간의 저작물들을 엮어 ‘도시의 로빈후드’를 출간했다. 뉴욕의 자넷 사딕-칸, 보고타의 엔리케 페냐로사, 파리의 베르트랑 들라노에 등 수많은 ‘도시혁명가’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국내에도 모험과 도전정신을 갖춘 창조적 리더와 후원그룹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박용남 소장을 만나보았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난파 직전의 우주선 지구호’로 묘사한다. 다가오는 위기가 하나도 아닌 여러 개라며 ‘다중위기론’을 설파한다. 특히 심각한 것은 이산화탄소 문제로 대표되는 기후변화 문제와 석유 등 화석연료 고갈로 인한 에너지 위기, 그리고, 수시로 발생하는 금융 위기다.
일찍부터 박 소장은 지구촌을 급습하는 이들 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을 연구하는 것을 평생의 소임으로 생각해왔다.

1954년 대전에서 태어난 박 소장은 숭실대 대학원에서 지역경제를 연구했고, 이스라엘 정주연구센터에서 환경계획을 공부했다. 이후 ‘한밭레츠’와 ‘역사경관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등을 통해 지역화폐, 공동체 은행, 내셔널 트러스트 같은 대안운동을 전개해왔다. 바람직한 미래 도시의 모델을 찾아 선진국은 물론 남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까지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둘러봤다.

지난 2001년 ‘꿈의 생태도시 꾸리찌바’를 출간하면서 그는 ‘꾸리찌바 박’으로 많이 알려졌다. 이후 여러 곳에서 기고와 강연을 통해 자동차와 건설 위주의 도시계획을 사람을 중심에 두는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2006년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2011년 ‘꾸리찌바 에필로그’를 출간했다. 최근 출간한 단행본 ‘도시의 로빈후드’에서 박 소장이 제안하는 ‘다중위기 해법’을 경청해보자.


석유 없는 세상, 쿠바에 주목하다

“피크오일(Peak Oil)은 미국의 탐사지질학자 킹 허버트가 1954년 처음 창안한 이론입니다. 지구촌 안에 매장된 석유의 절반 정도가 이미 사용됐기 때문에, 조만간 석유 생산이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박 소장에 따르면, 피크오일 징후는 상당히 많이 있다. 학자들은 피크오일이 지난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지났거나 향후 2012년을 전후로 지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난 2005년 월드워치 연구소는 48개의 산유국 중 33개 나라에서 석유 생산이 감소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08년 석유가격이 배럴당 147달러까지 폭등했습니다. 200달러 수준으로 오를 경우 현재의 생활방식은 유지가 불가능해집니다. 농산물 생산에서부터 모든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박 소장은 석유가 없는 세상을 경험한 세 나라의 경우를 분석한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요르크 프리드리히스의 연구를 소개한다. 문제의 세 나라는 미국의 경제봉쇄를 받았던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과 소련의 몰락으로 석유 수입이 중지된 1990년대의 북한, 쿠바다.

▲꾸리찌바의 버스 중앙 차로


군국주의 일본은 미국의 석유 수입이 끊기자 유럽 국가들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공격했고, 북한은 가장 심각한 수준의 경제·식량난을 겪었다. 하지만 쿠바는 공동체에 기반한 순환형 사회구조 덕분에 큰 혼란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프리드리히스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쿠바의 생존비결이 공동체에 토대를 두고 다양한 영역에서 ‘회복력’을 증진시키고, 사회적 연대와 전통적 지식의 부활을 성공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회복력’이란 자연재해 등 충격을 받았을 때 공황을 일으키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는 힘, 또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 즉 ‘극복력’입니다. 오염된 하천과 호수가 오염 유입을 중지시키면 서서히 정화되고, 다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 듯 자연과 사회, 개인에게는 회복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회복이 불가능한 ‘한계’가 나타납니다.”


서울시 버스중앙차로제 모델 브라질 꾸리찌바

브라질 남부의 작은 도시 ‘꾸리찌바’는 아직까지도 박 소장을 ‘꾸리찌바 박’으로 불리게 하는 인연깊은 도시다. 어찌 보면 제3세계의 전형적인 도시일 뿐이지만, 국제사회는 꾸리찌바를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로 칭송한다. 왜냐하면 지구촌에서 가장 완벽한 대중교통·녹색교통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꾸리찌바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과 동료들은 5개의 주요 간선교통축을 중심으로 도시교통문제를 완벽히 해결했습니다. 이 도시의 간선급행버스(Bus Rapid Transit) 시스템은 전세계 168개 도시가 모방하고 있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 실시했던 버스중앙차로제의 모델이 바로 꾸리찌바입니다.”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간선급행버스 시스템은 지하철이나 경전철보다 건설비가 훨씬 저렴하고, 운영·관리비도 월등히 적다.

꾸리찌바는 19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주요 간선교통축을 따라 중앙버스전용차로를 건설하고, 지구간 순환버스 노선을 도입했다. 지선 노선도 완벽하게 구축했다.

1990년대에는 승객들이 버스를 타기 전에 요금을 지불하는 원통형정류장을 갖춘 직통급행버스체계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스마트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장치와 공중전화 등을 설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승객들의 승하차 시간이 줄고 불필요한 엔진의 공회전이 줄자, 대기오염이 약 30% 정도 저감됐다.

이외에 혁신적인 폐기물 관리 프로그램과 환경정책, 문화정책 등 도시 전체가 재활용을 모토로 만들어지고 있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한편, 꾸리찌바를 모델로 서울 등 국내 일부 지역에서 시행중인 버스 준공영제에 대해 박 소장은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지만, 일부 구간에서 체증과 혼잡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간선급행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행 수익금 공동관리제를 노선관리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 신호체계 개선, 안내정보 체계 구축이 이어져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공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식량권 인정도시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아름다운 지평선’이란 뜻의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는 인구 2000만명이 모여사는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의 주도(州都)이다. 인구 241만명으로 브라질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대다수 브라질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고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이 도시는 “세계 최초로 식량권을 인정한 도시”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벨루오리존치는 기아와 영양실조가 식량 부족이 아닌 빈곤과 결부된 식량 접근권 결여 때문으로 보고, 식량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닌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필요재로 인식했습니다.”

벨루오리존치는 1993년 시민식량권을 공식 인정하고 조달국을 설치하여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20여 년 간 영양과 식량보장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왔다.

세부적으로는 시중가격의 절반이하로 시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민중식당’, 1개월분의 22개 기본 가구소비품목으로 구성된 바구니를 저소득 가족에게 판매하는 ‘기초식량바구니 프로그램’, 취약계층에게 영양강화가루를 무료로 배급하는 ‘영양실조 예방·퇴치 프로그램’, 공립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1일 1회 영양급식을 제공하는 ‘학교급식 프로그램’, 노숙자·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에게 먹거리를 지원하는 ‘푸드뱅크’ 등을 시행하고 있다.

“벨루오리존치는 양적·질적으로 좋은 먹거리를 보장하면서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을 완전히 실현한 캐나다 토론토 시와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먹거리 정책을 실천해온 도시입니다”

박 소장은 “우리나라 도시들도 파편화된 먹거리 정책에서 벗어나 도시농업, 로컬푸드, 학교·기관급식, 식품안전, 영양보장, 먹거리 교육 및 실습 등에 대해 통합적으로 접근하고, 시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시민들을 존경하고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21세기형 인간도시의 참모습”이라는 것이다.


뉴욕과 파리, 보고타의 로빈후드들

“대부분의 도시들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됐습니다. 도로만 새로 건설하고 확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자동차·건설론자들이 득세한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이제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박 소장이 가장 먼저 소개하는 ‘도시의 로빈후드’는 뉴욕시의 전 교통국장 자넷 사딕-칸이다. 그녀는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에 의해 교통국장에 임명된 후 뉴욕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작업에 돌입했다. 먼저, 타임스퀘어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대로’를 세계최악의 차량정체구간에서 보행자를 위한 휴식 공간으로 정비했다. 이후 메디슨 스퀘어에도 새로운 보행자 광장을 조성했다.

▲박용남 소장이 펴낸 ‘도시의 로빈후드’


새로운 브로드웨이 조성사업이 완성되자 놀라운 성과가 일어났다. 이스트·웨스트 미드타운에서 차량속도가 5~7% 증가했고, 인접거리의 통행시간이 4~15% 개선됐다. 무엇보다 프로젝트가 실시된 지역 내에서 자동차 운전자와 승객들의 부상이 63% 감소했고, 보행자 사고도 35% 줄었다. 뉴욕 시민의 74%가 타임 스퀘어 생활여건이 극적으로 개선됐다는데 동의했다.

이외에도 사딕-칸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대거 건설하고, ‘시티바이크’라는 공용자전거 시스템을 도입했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도시개혁가는 2001년 파리의 시장으로 선출된 베르트랑 들라노에다. 그는 센 강 우측 제방을 흐르는 총연장 13km 구간의 조르주 퐁피두 고속도로에 주목했다. 하루 7만대에 이르는 차량이 이용하는 이 도시고속도로가 도시 환경을 망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들라노에는 파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 걷기, 자전거타기에 유리한 교통정책을 실시했다. 특히 퐁피두 고속도로를 여름 한달간 폐쇄해 시민들의 놀이·휴식 공간으로 만드는 정책을 무려 10년간 과감하게 시행했다. 일부 운전자들은 강력히 항의했지만, ‘파리 플라주(파리 해변)’에 열광한 많은 관광객들과 대다수 파리 시민의 지지로 폐쇄 정책은 유지될 수 있었다.

결국 2010년 들라노에는 퐁피두 고속도로를 영구 폐쇄하고 보행자 지구로 전환하는 야심찬 계획을 선언했고, 2014년 후임으로 선출된 안 이달고 시장 역시 같은 입장이라 조만간 이 고속도로는 폐쇄될 예정이다.

세 번째 ‘로빈후드’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전 시장 엔리케 페냐로사다.

페냐로사는 보행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을 가졌다. “신은 우리를 걷는 동물, 보행자로 만들었다.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가 날고, 사슴이 뛸 필요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걸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자동차가 중심이 되는 도시가 아닌 걷고 뛸 수 있는 도시가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신앙을 가진 페냐로사는 막대한 토건 예산과 주민 부담이 예상되는 정부와 국내외 연구기관의 제안을 물리치고, 주민들과 시의회, 시민단체와 지역계획위원회를 구성한 뒤,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 간선급행버스 ‘트랜스밀레니오’를 개통했다.

이후 ‘피코 이 플리카’라는 명칭의 부제운행 시스템을 도입했다. 일주일에 이틀간 출퇴근 시간에 차를 가지고 나올 수 없게 하는 시스템이다. 보고타 전체 자동차의 40%가 운행제한 조치를 받게 됐다.


서울시 독서모임 ‘서로함께’ 주제서적 선정

일부 운전자들은 반발했지만 대다수 운전자는 호응했다. 덕분에 주요 교통축의 통행속도가 빨라지고, 대기오염과 에너지 소비도 줄었다. 불법주차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계도도 추진했다. 그 결과 보고타는 자동차 이용 제한이 대세로 자리잡았고, 시민들의 의식도 빠르게 변화됐다.

지난 2000년 보고타는 “2015년 1월1일부터 평일 하루 6시간의 출퇴근시간에 택시를 제외한 모든 자동차의 통행을 제한한다”는 혁명적 계획안을 주민투표에 부쳐 전체 유권자 51%의 찬성(반대 34%)으로 승인했다.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도시, 에너지를 무차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소비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박 소장은 요즘도 국내외 여러 도시를 바쁘게 돌고 있다.

최근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박 소장의 생각에 관심이 많다. 조만간 열릴 서울시 책읽기 모임 ‘서로(書路)함께’에서 박 시장은 취임 후 처음 읽는 주제서적으로 박 소장의 ‘도시의 로빈후드’를 선정했다. 박 시장이 직접 사회를 보고, 수많은 공직자들과 직원, 시민들이 함께 참가하는 공개 책읽기 행사다.

이런 활동들 외에도 박 소장은 피크오일, 경제위기, 저성장 시대에 맞는 다양한 대안운동에 헌신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해외의 사례들처럼 국내에도 “로빈후드 같은 지도자와 그를 뒷받침해줄 후원그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과감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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