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뉴스]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키워드, 지금 여기의 ‘아시아’를 다시 묻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전시 전경. 사진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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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의 계절’이라 할 만큼 올해 가을, 국내 굵직한 비엔날레들이 줄지어 열리고 있다. 지난 9월 2일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미디어시티서울’은 미디어 도시 서울의 특성을 반영하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행사로 2000년 ‘미디어_시티 서울’이란 이름으로 2년마다 열려왔다.
올해로 8회재를 맞으며 14년의 역사를 이어온 ‘미디어시티서울’은 그동안 민간위탁사업으로 운영되던 비엔날레가 미술관 직영사업으로 전환해 열리는 첫 번째 행사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은 “올해 세마(SeMA) 비엔날레는 지난 비엔날레들과 달리 미술관 직영으로 기획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의 주요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술관 직영으로 운영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동안 위탁으로 진행하다 보니, 전시 감독들의 일회성 행사로 끝나게 된 점이 없지 않았다. 아카이브 자료가 남지 않는 점 등 단점도 있었고, 현재 그 자료들은 다시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직영 체제가 강화되면 비엔날레를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비엔날레가 미술관 직영으로 바뀌면서 예술감독의 역량이 더 발휘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예년 비엔날레는 감독들이 큐레이터를 초청해서 전시를 꾸렸는데, 올해 비엔날레는 예술감독으로 초청된 박찬경 감독의 큐레이터쉽이 잘 발휘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9월 1일 ‘미디어시티서울’ 2014 개막 공연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서울새남굿’. 사진 = 안창현 기자
그동안 ‘미디어시티서울’은 동시대 예술을 중심으로 과학, 인문학, 테크놀로지의 교류와 융합을 기반으로 제작한 미디어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이에 미디어아트의 다양성과 전문적인 전시를 위해 매회 다른 예술감독을 초빙했다.
올해는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박찬경이 예술감독을 맡아 ‘귀신 간첩 할머니’를 키워드로 현대 아시아를 차분히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찬경 예술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는 감독 선임이 일찍 이루어져 1년 반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었고, 만족할 만한 전시를 꾸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비엔날레의 ‘귀신 간첩 할머니’는 아시아에서 중요한 주제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비엔날레 직접적인 주제인 귀신, 간첩, 할머니 외에도 이들이 주로 살고 있는 산, 섬, 숲이라는 장소의 관점에서나 주술, 방언, 코드라는 언어적 차원으로 전시에 접근해도 재밌을 것”이라며 관객들이 아시아라는 큰 주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아시아 지역은 식민과 냉전의 경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급변을 공유해 왔지만 그동안 미술계에서 이를 본격적인 전시의 주제로 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특히 아시아를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세 가지 관점을 통해 살핀다는 점이 흥미롭다.
▲쯔엉 꽁 뚱(Truong Cong Tung), ‘요술정원(Magical Garden)’, 습득한 사진, C-프린트 재출력, 30×40cm, 2012~14. 제공 = 서울시립미술관
17개국 42팀 주제의식 뚜렷한 미디어아트 선보여
올해 비엔날레 키워드 중 하나인 ‘귀신’은 아시아의 역사에서 억압되고 드러나지 않아 유령과도 같은 이들의 한 맺힌 말을 경청하려는 의미에서 쓰였다. 이런 유령의 호출을 통해 굴곡이 심했던 아시아를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되돌아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귀신은 또한 아시아의 전통과도 결부된다. 무속 등 전통신앙을 비롯한 불교, 유교, 힌두교의 발원지이자 그 영향력이 여전히 큰 아시아에서 현대 미술가들이 아시아 정신문화의 전통을 어떻게 발견하고, 또 새롭게 발명하는지 올해 소개된 작품들에서 살필 수 있다.
‘간첩’은 근현대 아시아의 역사에서 식민과 냉전의 경험이 특별히 심각했다는 점에 주목하기 위한 키워드다. 특히 냉전시대의 간첩은 금기, 망명, 은행 전산망 해킹, 영화의 흥행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여전히 출몰하고 있다. 전시에서 코드, 정보, 통신을 직접 작업에 활용하는 미디어아티스트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마지막 키워드 ‘할머니’는 ‘귀신과 간첩의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증인의 역할을 한다. 최근 위안부 할머니를 둘러싼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갈등은 식민주의와 전쟁 폐해의 핵심에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이렇게 비엔날레의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구성된 올해 ‘미디어시티서울’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역사와 정치 등 뚜렷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형식적으로 기술 친화적인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어떻게 내용적으로도 흥미롭게 작가의 문제의식과 사회의 주요이슈들을 담아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첨단의 동시대 미술을 선보이는 비엔날레의 개막 공연으로 ‘서울새남굿’ 판이 벌어진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9월 1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있었던 중요무형문화재 서울새남굿 예능 보유자 이상순 만신의 의례는 과거 재판소와 대법원으로 사용되었던 시립미술관의 역사 속 애환을 씻고 전시의 개막을 축원하는 의미와 함께 세월호 참사 등 최근 벌어진 불운한 사고들을 애도하는 의미로 치러졌다. 이번 비엔날레의 방향과 주제를 간접적으로 다시 드러낸 개막 행사였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1월 23일까지 진행한다.
- 안창현 기자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