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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생애 첫 컬렉션…달이 차오르듯 여유와 인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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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8호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2014.10.02 08:34:17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가까운 지인인 최부장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미술애호가가 됐다고 한다. 어느 날 김환기의 그림을 보게 됐는데, 그 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순백의 항아리에 꽂혀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단다. 보름달을 닮아 펑퍼짐하고 둥그런 그것은 바로 ‘달 항아리’였다. 누군가는 달 항아리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면 나이가 찼다는 증거라고 했듯, 그 역시 50대를 넘어선 중년이었다.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한국 현대미술 최고의 작가 김환기 작품이었지만, 진정 마음을 빼앗긴 건 그 안에 그림 소재로 등장한 달 항아리였던 것이다.

김환기 작품을 만난 이후 ‘달 항아리 연정’은 그칠 줄 몰랐다. 문화재로 등록된 백자의 도판과 박물관을 전전해도 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견물생심이라 했듯, 그는 생애 첫 컬렉션을 ‘달 항아리’로 결심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엔틱 조선백자를 사자니 마음에 드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가격이다. 보통 위아래 두 판을 합친 달 항아리의 높이는 40~50cm가 넘는다. 이런 크기의 수작(秀作)은 수억 원을 호가한다. 이름난 현역 중견작가 중에 권대섭 도예가 정도의 달 항아리도 기본 3~4천만 원선, 월급쟁이 중년 가장으로선 무리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도 간절하게 ‘형편에 맞는’ 달 항아리 수집에 골몰할 때 극적으로 만난 작품이 바로 강민수(43)의 달 항아리였다.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이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고 예찬했던 대목처럼, 넘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제격의 임자를 만났다. 특히 높이 60cm 전후의 엄청난 대호(大壺)가 500~600만원이니, 최부장 형편과도 절묘하게 안성맞춤이었다. 처음 달 항아리를 만나고 3년 만의 쾌거였다.

▲도예가 강민수의 달항아리


운 좋게도 마음에 찬 달 항아리를 구입한 최부장에겐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 퇴근 후 귀가시간이 빨라졌다. 언제나 지지 않는 보름달이 집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그 둘레에 모여 앉으면 웃음꽃이 피어나고, 두런두런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간혹 주말에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 소박한 하우스파티를 열고 있단다. 물론 달 항아리를 입양하게 된 무용담을 자랑하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이런 최부장이 허영과 사치스럽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삶의 한 단편을 보여주는 듯하다.

최부장의 달 항아리 수집과정을 보면, 미술애호가 입문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선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접하게 되고, 뭔가 모를 끌림을 경험한다. 이는 미술품이 지닌 ‘감성을 자극하는 내재된 매력’과 만난 것이다. 관심을 갖게 된 대상에 대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본인이 정확히 어떤 기호를 지녔는가를 지속적으로 자가진단 하는 자세도 주목할 부분이다. 결정적인 순간엔 자신의 경제적 여건과 예산을 고려해 무리하지 않은 점 역시 높이 살만하다.

▲도예가 강민수의 달항아리. 높이 67cm.


무엇보다 최부장의 바람직한 미술애호가상은 구매한 작품의 활용법에서 빛을 발한다. 작품을 구매하기 전까지 꾸준히 가족과 협의하고, 구입한 이후엔 그 작품을 통해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예술품이 지닌 ‘감성교화’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구입한 작품을 테마로 한 하우스 파티 역시 아주 좋은 활용법의 예시이다. 처음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할 때는 본인이나 가족의 취향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겠지만, 보다 발전적인 애호가의 길은 안목을 함께 길러가는 것이다. 안목을 키우는데 있어 ‘관심사가 같은 주변의 객관적인 평가’를 자주 접하는 것만큼 좋은 방안도 드물다.

처음 달 항아리 짝사랑으로 시작한 최부장의 최근 행보는 그 범위가 제법 넓어졌다. 첫사랑이 도자기이다 보니, 관심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입체작품부터 회화까지 아우르게 됐다. 그리고 달 항아리의 푸근하고 정감어린 매력에 심취했던 경험을 살려, 다른 작품들을 고를 때 ‘한국적인 정감이 묻어나는 테마 컬렉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부장의 예를 봐도 미술애호가 입문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간이 되어 서서히 달이 차오르듯, 적당한 여유와 인내심을 가진다면 누구나 또 다른 최부장이 될 수 있다.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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