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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문화 칼럼]화랑도 살고 작가도 살아야 미술시장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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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9호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2014.12.18 09:02:3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한국 미술시장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미술시장을 이끌다 보니, 주변 국가인 우리로선 더 초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축 처진 미술시장을 어디 하루아침에 살릴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여러 계통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온갖 시장 부흥책 마련에 고심하지만, 묘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경제력도 어느 정도 올라섰고, 국가 경쟁력이나 인지도도 이 정도면 뒤지지 않는데, 마냥 과도기라고 치부하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이젠 반짝이는 순발력이 아닌, 롱런할 근본책이 필요하다.

기본부터 살펴보자. 우선 시장이 건강하려면,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 균형은 유통단계의 몫이다. 미술시장도 마찬가지,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수요자 혹은 컬렉터를 중계자인 화랑이 제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 그런데 미술시장의 주인공으로 너무 작가에만 관심이 편중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작가 수는 얼마나 될까? 한국미협 회원으로 등록된 3만 여명 이외에 전국에 최소 1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작가는 제외하고 말이다. 이들이 1년에 평균 10점만 그려도, 연간 100만 점의 작품이 생산된다는 소리다.

반면 연간 100만 점의 작품을 유통시켜줄 화랑은 얼마나 될까? 이 역시 전국의 군소화랑까지 합치면 500여 곳 될 것이다. 생산된 작품의 50%만 유통된다고 해도, 무식하게 어림잡아 한 화랑이 연간 5000점을 감당해야 한다. 다시 10%만 유통시킨다면, 화랑별 200점이 된다. 모든 작가는 자기애가 강하다. 본인의 작품세계가 이리도 훌륭한데 왜 그렇게 안 알아주는가를 한탄한다. 그 자세는 좋다. 작가의 길을 가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500여 곳의 모든 화랑이 유통에 나서질 못한다. 대관화랑이나 대안공간 등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유통 역할을 할 수 있는 화랑은 줄잡아 200여 곳 남짓일 것이다. 시장에서 성공적인 작가로서 살아남기, 낙타 바늘구멍이 따로 없다!

현실은 이리도 각박한데, 미술시장 살리려는 노력은 너무 기형적이다. 무작정 작가를 살리자는 목소리만 편중됐다. 작가를 지원한다는 건 시장에 나올 작품들을 양산한다는 건데, 이는 시장적 측면에선 공급과잉으로 덤핑(dumping)을 일으킬 수 있다. 작가 못지않게 유통을 책임질 건강한 화랑들을 양산하지 않으면 시장의 불균형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화랑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어떤 경우는 ‘갑질논쟁’에 휩싸이기도 한다. 부당한 조건으로 작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순수한 창작의지를 꺾는다는 것이다. 꼭 그렇게만 봐야 할까?

▲서울 인사동 거리. 사진 = 왕진오 기자


대관화랑이 아닌 기획화랑에서 전시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풀코스 순수 초대전, 전시공간과 도록 등 일부분 지원, 전시 공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극소수로 작가 본인이 경비를 부담하고 무늬만 초대전으로 하는 예도 있다. 이 경우는 작가가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전시 진행을 위해선 공간 운용비·대표 및 직원 인건비·도록비·홍보비·케이터링 및 기타 잡비 등을 포함하면, 화랑 입장에선 작품판매여부 상관없이 평균 1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지출하게 된다. 결국 화랑은 최소 2000~3000만원의 작품이 팔려야 본전인 셈이다. 반면 작가는 미판매된 작품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아 보관하게 된다. 또한 작가에겐 작품이 언젠간 유가증권일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따라서 ‘갑질논쟁’은 작가나 화랑의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아무튼 어떤 경우가 됐건, 작가가 허락하지 않을 경우 전시가 이뤄질 수는 없다. 모든 전시는 작가의 결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피해를 보더라도 참아야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작가 못지않게 시장의 중추적인 주역인 화랑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작품이 팔려야 살아갈 수 있음에도, 수익 창출하는 ‘상업적인 화랑은 지원할 수 없다’는 논리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궁극적으로 건전한 유통시스템에선 화랑이 돈을 많이 벌어야 작가도 잘 살 수 있다. 찡그린 우리 미술시장의 얼굴이 활짝 펴지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위축된 화랑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CNB저널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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