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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⑳]클레오파트라 유적은 화려극치, 피라미드 노예 몰살무덤은 살벌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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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6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2.05 09:11:48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8일차 (카이로 → 알렉산드리아 → 카이로)

힘든 중동 여정

그동안 간편식에 아랍 음식만 먹느라고 비타민이 부실한 것 같아 어젯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구입한 딸기를 아침식사와 함께 먹었다. 그동안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 여러 나라 국경을 출입하고 또한 장거리를 이동하느라 피로와 함께 비용 지출도 많았지만 경험한 것의 값어치에 비할 바 아니다. 곧 여행 여건이 좋은 EU 세계로 넘어갈 것이므로 잘 버텨보자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고대 파라오 왕조를 기억하는 이집트 국립박물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집트 국립박물관이다. 오전 9시 박물관 개장을 앞두고 사람이 많다. 어제 휴관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박물관에는 BC 4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을 비롯해 BC 2000년 무렵 고대 왕국,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까지 전시물이 꽉 차 있다. 이집트가 고대 문명 발상지라는 것을 증명한다. 고대 파라오 왕조 유물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해외로 반출됐고 이슬람 시대에는 모스크 건축을 위해 석조물이 파괴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남아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쿠푸왕의 무덤인 대피라미드는 높이 146m, 밑변 길이 230m, 정사각형의 거대한 산 형태를 띠고 있다.


이집트 고대 문명은 남쪽 아스완 지역에서 출발해서 계속 북상했다. BC 332년에는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를 격퇴하고(페르시아 전쟁) 그 영토의 일부였던 이집트를 접수했다. 알렉산더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웠고 그 최후 통치자가 바로 클레오파트라인 것이다. 그러나 AD 30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가 시저에게 패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지배에 들어갔다. 전시물 중에서도 투탕카멘(BC 1362~1351) 무덤 출토품은 물량과 화려함이 압권이다. 박물관 내 전 지역이 촬영 절대금지여서 아쉬웠다.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

박물관을 나와 택시를 타고 람세스 기차역으로 향했다. 마침 역사를 신축 중이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우왕좌왕하는 나를 매표창구까지 안내해 준 한 청년의 도움으로 카이로 12시 정오 출발, 알렉산드리아 저녁 7시 출발하는 1등석 왕복표를 구입하니 안심이다.

열차는 정시에 출발해 나일 삼각주 지역을 빠른 속도로 달려 카이로-알렉산드리아 230km를 2시간 30분에 주파했다.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는 도시와 마을로 이어진 인구밀집 지역이다. 나일강 삼각주는 농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풍요로운 지역이다. ‘나일강의 선물’은 바로 이 비옥한 지역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열차에서 사먹은 샌드위치와 커피는 배고팠던 나에게 꿀맛이었다.

클레오파트라를 생각하다

이집트인들이 ‘알렉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알렉산드리아는 인구 220만, 이집트 제2의 도시인만큼 번잡하기는 카이로 못지않다. 알렉산더 제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50여개 있었지만 이곳이 그중에서 가장 번성했다. 세계 7대 고대 불가사의였던 파로스 등대도 여기 있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 시저, 옥타비아누스와 갖은 인연과 악연을 뿌린 이곳에 발을 디딘 감회가 새롭다.

난생 처음 지중해를 만나다

알렉산드리아에는 광장이 무수히 많다. 택시로 처음 이동한 곳은 사드 자골로우 지역이다. 지중해의 빛나는 태양이 쏟아진다. 즐비한 콜로니얼 건축물 중에서도 세실 호텔은 명품이다. 마이크로버스로 해안도로를 따라 이스턴 터널 북쪽 끝 퀘이트만 성채에 갔다. 파로스 등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BC 279년에 세워졌다. 멀리 퀘이트만 건너 도시 중심부가 보이고 앞으로는 지중해가 펼쳐진다. 내가 지중해를 처음 만난 곳은 바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기록되는 순간이다.

이어서 택시로 이동한 곳은 로마 원형경기장이다. 요르단 암만의 것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정교하다. 원형경기장 말고도 부근은 로마식 저택과 목욕탕, 저수조가 있던 자리로서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팀의 협조로 현재도 발굴 복원이 진행 중이다. 여태까지 로마제국의 변방을 돌았으니 로마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제국 영토의 방대함에 새삼 놀란다.

▲파로스 등대가 있던 자리에 선 퀘이트 성채는 BC 279년에 세워졌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서관

짧은 반나절 일정으로 무리해서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지만 와보기를 잘했다. 원형극장 가는 길은 구불구불 좁은 길이 얽힌 구시가지 한복판을 지나간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도시의 역사를 말해 준다. 100년은 됨직한 낡은 전차가 지나는 모습은 인도 콜카타 어느 골목을 닮았다.

이어서 도서관을 찾았다. 세계 7대 고대 불가사의였던 구 도서관은 23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건립됐다. 지중해 지역의 학문과 과학의 본산이었음은 당연하다. 그 자리에 지금은 초현대식 박물관이 들어서서 위용을 뽐낸다. 이 위대한 도서관은 AD 7세기 이집트를 점령한 아랍 세력이 장서를 모두 꺼내 소각(혹은 수장)함으로써 인류 역사에서 사라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해 기차역으로 나오니 저녁 7시 카이로행 열차 출발까지 시간이 적절히 남았다. 한 이집트 남성이 중국에서 왔냐고 말을 걸어온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자신은 2등 항해사로서 한국에서 건조한 유람선을 인수하러 간 적이 있다면서 한국 방문 추억을 들춰낸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청년이 한국과 그런 식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 한국은 이제 세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안락한 열차 1등석 의자에 기대앉으니 지난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2박 3일 짧은 이집트 일정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까지 방문한 것은 행운이다. 열차가 도착한 카이로 람세스 역은 혼돈의 극치다. 수없이 길을 묻고 물어 겨우 호텔에 찾아 들어오니 밤 10시가 돼간다. 길만 제대로 알면 10분도 안 걸릴 거리를 무려 40분 걸려 찾아온 것이다. 무사히 찾아온 것에 안도하며 잠을 청한다.

▲이집트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 전경.


9일차 (카이로 → 아테네)

안개 깔린 기자 피라미드

오전 9시 30분 예약한 승용차로 기자 지구 피라미드로 이동했다. 대사관과 5성급 호텔이 늘어선 가든시티를 지나 카이로와 기자를 동과 서로 가르는 나일강을 건넌다. 운전기사는 내가 타고 가는 현대차가 참 좋다며 자랑한다. 현대와 대우가 카이로에 현지 공장을 가지고 있어서 현대는 베르나를, 대우는 라노스와 누비라를 생산한다. 나머지 한국차들은 직수입한다. 아침 안개 속이지만 기자의 도시 풍경 너머로 뿌옇게 피라미드 군(群)이 눈에 들어온다. 운전기사 테마르 말로는 이집트에는 500개의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 그 중 기자 피라미드는 모두 쿠푸왕 가족의 무덤으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크고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피라미드 낙타 트레킹 투어

기사는 관광버스가 운집한 메인 게이트를 지나 낙타 트레킹을 시작하는 거리에 나를 내려놓는다. 메인 게이트에 내렸더라면 천천히 걸어서라도 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선택이 없어졌기 때문에 말이나 낙타를 타야만 한다. 만만치 않은 비용(70유로, 약 11만원)을 감수하며 두 시간짜리 코스를 선택해서 말에 오른다. 순수비용 외에 말 가이드 팁 등 추가 비용이 잔뜩 들어가 여행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일생에 한 번’이라고 굳게 위로하고 7대 불가사의 관람 비용이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는 피라미드 관광을 컨트롤하는 마피아 조직 때문이다. 시내에서 모객하는 자, 피라미드 내 경찰 및 공원 관리자, 현지 모객자 등 수많은 관련자들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을 뜯어 가니 그럴 수밖에 없다. 호텔에서 기자, 사카라, 다슈르 피라미드 군을 들러 공항까지 가는 차량 편으로 이미 지불한 미화 49달러는 물론 별도 비용이다.

▲낙타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 이집트 피라미드로 가는 과정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비용 많이 드는 중동 여행

다행히 나의 마부이자 가이드인 라마단 카림은 선하고 진실하다. 즐겁냐고 쉬지 않고 물어 보며 곳곳에서 말에 오르고 내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사진 찍기 좋은 곳마다 열심히 도와준다. 관광버스로 피라미드 지역에 들어오면 도로를 따라 겉핥기로 지나가겠지만 오늘 피라미드 구경 하나는 제대로 한다. 후진국 관광은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비용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다행히 오늘 밤이면 유럽 문명세계로 진입하므로 오늘만 버티면 된다.

말 타고 하는 피라미드 여행은 모든 피라미드를 조망하는 파노라믹 뷰를 포함해 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코스를 순례하므로 가장 좋은 지점에서 피라미드를 보게 된다. 아침 안개가 걷히고 피라미드 7개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눈이 닿는 곳은 온통 모래사막이다. 사하라 사막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여기 아닌가! 쿠푸왕 무덤인 대(大)피라미드는 높이 146m, 밑변 길이 230m, 정사각형의 거대한 산이다. 2~20톤짜리 화강암 200만개를 쌓아 올렸다.

내부는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따라 운반한 화강암이고 외부는 백색 외장석으로 덮여 있었다고 하나 외부는 소실돼 흔적을 찾기 어렵다. 특히 20세기 초 이집트 지배자였던 오스만 제국 술탄 무하마드 알리는 피라미드 외부석을 떼어 자신의 성을 짓기도 했을 정도이다. 대피라미드의 겉면이 매끈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피라미드의 수호신인 스핑크스가 위용을 뽐내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노예 무덤군

쿠푸왕 피라미드 동쪽에는 피라미드의 수호신 스핑크스상이 있다. 한 덩어리 암석을 깎아 만들었고 22m 높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 포격으로 스핑크스 코가 깨져 있고 동쪽 피라미드는 상층부가 뭉개져 있다. 헤로도토스는 피라미드 건축에 10만 명의 인원이 10년 일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스핑크스를 왼쪽 지점에는 무덤군이 있다.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예들은 건축의 기밀이 알려질까 봐 모두 처형됐고 바로 이 무덤군에 묻혔다.

카이로 국제공항서 중동 지역 여정 마무리

이어서 사카라 피라미드군으로 이동했다. 기자 지구에서 18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계단식 피라미드라는 점이다. 멀리 카이로 시내의 고층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사카라 지구는 가자 지구처럼 붐비지 않아서 좋다. 마지막으로 다슈르 피라미드로 갔다. 피라미드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좁은 통로를 깊숙이 들어가니 드디어 석실이 나온다. 지하 깊숙이 제법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피라미드 구경 하나는 제대로 한 것에 만족하며 공항 가는 길을 재촉하다.

힘들었던 중동 지역 여정이 끝난 데 큰 안도감을 느낀다. 일정을 예측하기 어렵고 변수가 많고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여정이었으나 별 탈 없이 마무리했다. 그리스 아테네행 항공기 시간에 맞추려고 커피숍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린 뒤 드디어 보딩 패스를 받고 출국장에 섰다. 사람들의 다양한 용모가 여기가 바로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의 십자로임을 말해 준다. 공항 푸드코트에 마침 맥주가 있다. 나에게 남은 이집트 파운드를 모으니 맥주 한 캔이 나온다. 단숨에 벌컥 해치운다.

EU 지역에 첫 발을 딛다

카이로 공항을 정시에 이륙한 올림픽 에어 항공기는 지중해를 가로질러 아테네로 향한다. 항공기 여승무원들은 대개 그 나라 얼굴을 대표한다. 그리스 여승무원들의 얼굴을 보면서 중동을 벗어나 유럽 헬레니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번 여행의 재미있는 부분은 가까운 거리일지라도 국경을 건널 때마다 사람들의 용모가 현격하게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 초행자인 나의 눈에도 터키,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그리스 얼굴이 서로 확연히 다르게 보인다.

아테네에 도착하니 밤 10시 40분이다. 이민국 관리는 여권을 보는 둥 마는 둥 스탬프부터 찍는다. 메트로 또한 곧 출발하니 신타그마에서 환승해 오모니아 도착 시각이 밤 11시 50분이다. 주소가 정확해 호텔은 곧바로 찾았다. 생각보다 훌륭한 호텔이다. 그동안 밤마다 추위에 떨다가 오랜만에 히터가 나오는 호텔에서 편히 자게 됐다. 호텔에 들어오니 마침 비가 세게 온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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