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20년만에 뮤지컬로 돌아온 ‘오빠 권인하’
“가수 권인하는 버려두고 배우로 무대 오릅니다”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에서 열연 중인 권인하. 사진 = 은세계씨어터컴퍼니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왕년의 오빠가 돌아왔다. 최근 노래 경연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얼굴을 가리고 변함없는 가창력을 드러낸 권인하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1984년 ‘사랑을 잃어버린 나’로 데뷔한 뒤, 록 밴드 ‘우리’ 보컬을 거치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명곡을 가졌던 그는 대한민국 대표 로커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이후 14년의 긴 공백기를 가졌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정규 앨범 발매 이후, ‘복면가왕’ 출연에 이어 이젠 뮤지컬 무대까지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꽃미소는 여전했다.
‘10여 년 동안의 공백기가 야속했다’는 기자의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사업도 하고, 여러 다른 일을 하다 보니 10년이 훅 지나가버렸어요. 많은 일이 정리되고 나니 더 늦기 전에 노래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죠. 그래서 지난해 14년 만에 정규 앨범을 내면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했고, 최근 ‘복면가왕’에 출연했는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로지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는 소녀시대 멤버 태연의 ‘만약에’를 불러 화제가 됐다. 아이돌의 노래를 특유의 담담함과 시원하게 뻗어 내지르는 창법으로 새롭게 해석해 또 다른 ‘만약에’를 탄생시켰다는 평가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바이브레이션이 빠진 자리를 감동이 채웠고, 상대방에게 말하듯 읊조리는 가사와 멜로디는 귀를 즐겁게 했다.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의 한 장면. 배우들이 직접 기타와 첼로 등을 연주한다. 사진 = 은세계씨어터컴퍼니
노래 선택이 의외였다는 평이 있었다. “익숙한 노래를 불렀으면 편했겠죠. 하지만 제 노래 또는 제가 부를 법한 뻔한 노래 말고 젊은 사람들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어요. ‘만약에’를 듣고 저만의 스타일로 바꿔 불러보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방송이 끝난 뒤 반응을 보니 너무 올드한 창법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많더라고요. 이만하면 성공 아닌가요?(웃음)”
늘 도전을 추구하는 그가 선택한 다음 무대는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1995년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이후 20년 만이다.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집안 형편 때문에 상경해 식모살이를 하는 19살 소녀 ‘순이’와 그녀의 첫사랑이자 고향 오빠인 ‘춘호’의 이야기를 그린다. 권인하는 극 중 춘호 역을 맡아 10~20대 청춘, 이별과 시련을 겪는 중년, 그리고 60대 노년기 시절까지 연기한다. 도전을 좋아하는 그이지만 20년만의 뮤지컬 출연은 솔직히 부담됐다고.
20년만의 뮤지컬 무대 복귀.
거친 로커 이미지 벗고
1970년대 첫사랑 오빠로 변신
“처음엔 망설였어요. 10대를 연기하려면 교복을 입어야 하는데 쑥스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본을 보니까 5060세대의 이야기를 제가 충분히 이해하고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어렸을 때는 시골 소녀들이 서울로 올라와 식모살이를 하며 번 돈을 집에 보내는 일이 많았어요. 보릿고개 시절 모두가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의지로 버텼죠. 그 시절에 대한 회상과 함께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다시 세상에 저를 알리면서 뮤지컬을 그 흐름의 하나로 이어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더 나이 들면 아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잖아요?(웃음)”
뮤지컬에는 60~90년대 당대의 히트곡이 약 30여개 등장하며, 옛 향수를 자극한다. 가수 김국환, 이미자, 김추자, 신중현, 이장희, 김정호, 심수봉, 조용필, 이용, 이문세, 이선희 등의 노래가 무대를 채운다. 권인하는 연출자와 협의해 김정호의 노래를 추가하는 등 특히 노래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고.
▲뮤지컬에서 호흡을 맞추는 권인하와 도원경(가운데). 사진 = 은세계씨어터컴퍼니
2014년 초연 때 등장하지 않았던 권인하의 ‘사랑이 사랑을’, ‘오래 전에’ 등의 곡도 새로 추가해 초연과는 다른 매력을 더했다. 이동준 연출은 “가수로 활동해왔기에 노래에 대한 해석력이 탁월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캐스팅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뮤지컬 연습실에서 권인하는 ‘노래 선생님’으로 통하고 있다.
“노래를 잘 부르려고 기교에 신경쓰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노래 부를 때 항상 가사를 읽으라고 이야기해요. 가사를 이해하면 이야기하듯 노래 불러도 진실한 뜻이 전해지거든요. 가사가 가진 뉘앙스를 찾는 게 중요하죠. 또 뮤지컬에서는 조화가 중요해요. 혼자가 아니라 다른 배우들과 함께 채우는 무대이기에 혼자 튀면 무대를 망칠 수 있죠.”
혼자 튀는 걸 막기 위해 권인하는 무대에 오를 때 ‘가수’ 권인하는 내려놓는다. “내게는 로커 이미지가 강한데, 뮤지컬에 왔을 땐 가수로서의 내 개성을 살리기보다 극에 알맞고, 잘 어울리는 노래 소화가 첫 번째 목표라고 생각했다”며 “노래를 더 편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들과 함께 열심히 연구하고 연습했다. 가수로서의 내 모양이나 색깔은 극장 밖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
가수 후배 도원경도 함께 출연해 힘을 보탠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왕년의 로커 권인하와 도원경이 호흡을 맞춘다는 소식으로 일찌감치 관심 대상에 올랐다. 도원경 또한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등에 출연해왔다. 가수들의 뮤지컬 진출이 활발해지는 데 대해 권인하는 긍정적이었다.
“과거에는 가수가 노래만 했지만 만능 엔터테이너가 요구되는 요즘에는 가수라고 노래 한 가지만 고집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연기로 성공한 아이돌 가수도 많고, 뮤지컬로 성공한 가수도 요새 흔하잖아요. 가수니까 노래만 부른다는 생각보다 음악과 관련된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능력을 갖춰야 생명력이 길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콘서트-방송 등으로 새 도전 계속
‘뮤지컬로 소통에 나서는 권인하를 5060세대야 환영할 수 있지만 젊은 세대가 공감하기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전하자 그는 또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헌데 이 뮤지컬에도 맹점이 있어요. 젊은층끼리만 보기엔 이해가 어려운 점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전 부모님과 함께 보기를 추천해요. 부모님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뮤지컬을 보고 이해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거죠. 극장 안에서 공감과 소통의 장이 펼쳐지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인하는 남자 주인공 춘호의 10대부터 60대까지를 연기한다. 사진 = 은세계씨어터컴퍼니
권인하는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다고도 했다. 최정상 스타에 올랐던 그는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의 춘호를 연기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고.
“극 중 춘호가 30~40대까지 사업이 번창하다가 IMF 때 부도가 나서 망해요. 꿈이 좌절되자 절망하고 분노하죠. 이 부분에서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노래 부르는 사람으로서 가졌던 꿈과 목표들이 어느 순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걸 느끼고 세상을 원망하기만 했어요. ‘감히 나를 이런 취급해?’라고 생각하며 차라리 관두겠다고 마음 먹었던 제 모습이 후회됐죠. 힘든 시기일수록 자극으로 받아들여 더 노력했다면 지금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더 탄탄한 자리에 있었을 텐데…. 한마디로 철없고 건방졌어요(웃음). 그래서 절박한 마음, 절실한 마음으로 음악을 향해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수 백 번 서왔던 무대이지만 늘 걱정이 앞선다. 무대 동선이 몸에 잘 익지 않아 고생도 했다. 인터뷰 당시 다음날 뮤지컬 첫 무대를 앞둔 그는 조금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콘서트를 500회 이상 해왔으니 실전에서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걱정되지만 설렘도 있다. 이 설렘이 무대를 꾸려가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저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노래하고 활동하면서 다시 저를 알리고, 어느 정도 인지도와 영역을 구축해 조금씩 활동 반경을 키워나가고 싶어요. 10년 넘게 쉬었으니 충분히 쉬었죠. 앞으로 달릴 일만 남았습니다(웃음).”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