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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멕시코]은빛도시 과나후아토의 찬란한 색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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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0-43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5.18 18:03:54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4일차 (멕시코시티 → 과나후아토)

새벽 6시 호텔에서 나왔다. 메트로는 이미 붐비기 시작한다. 먹고 사는 것이 빠듯한 서민들이 이처럼 새벽부터 움직여야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ETN 우등 고속버스는 매우 안락하다. 분지인 멕시코시티를 벗어나기 위해 버스는 긴 고개를 여러 개 넘는다. 좌우엔 어김없이 가난한 자들의 집이 비탈을 따라 기어 올라간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한 시간쯤 지나자 도시가 끝나고 전원이 시작된다. 낮게 자라는 풀과 점점이 이어지는 시골 마을…. 집집마다 옥상에 물탱크를 이고 있다. 물이 귀한 나라다. 멕시코시티를 떠난 지 다섯 시간쯤 되니 메마른 대지와 헐벗은 산이 다가온다. 가장 멕시코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과나후아토(Guanajuato)에 근접한 것이다. 언덕을 따라 파랗고 빨갛고 노랗고 흰 집들이 뻗어 올라가 있다.

멕시코의 부자 동네였던 은광 도시 ‘과나후아토’

과나후아토는 전형적인 산중 광산촌 지형을 타고났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좁은 도로를 마침 하교하는 학생들과 차가 뒤섞여 지나간다. 자동차를 제외하면 시계를 100년 쯤 뒤로 돌린 듯한 모습이다. 인구 14만 5000명,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380km 지점에 위치한 과나후아토는 가장 멕시코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아 콜로니얼 풍의 독특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한때는 멕시코 전체 은 생산의 25%를 담당했던 은광(銀鑛)으로 인해 멕시코에서 가장 부자 동네였다고 한다.

▲과나후아토 시티 센터. 화려한 교회나 극장 등의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사진 = 김현주

화려한 건축물이 가득한 센트로

시내 중심은 플라자 데 라 파스(Plaza de la Paz)다. 바로 인접해 성당(Basilica del Guanajuato)이 있다. 내부가 아주 화려한 주홍색 성당이다. 그 옆에는 콤파니아 사원, 그리고 그 옆 우니온 정원 앞 바라티오 광장에는 후아레스 극장, 산디에고 사원 등 멋진 건물이 즐비하다. 우체국 건물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은 산출로 돈이 넘쳐났던 이 도시의 한때가 화려한 교회나 극장 등의 건축물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포토제닉 도시의 다양한 풍경

골목마다 특색이 있어 길을 잃고 아무리 헤매도 지루하지 않다. 골목이 매우 좁아서 골목을 마주보고 사는 연인들이 서로 키스할 수 있을 정도라는 ‘키스의 골목’에도 가본다. 골목을 오를 때 보이는 풍경과 내려올 때 보이는 풍경이 모두 다른 매우 포토제닉한 도시다.

조금만 높은 곳에 가면 도시는 보는 각도마다 다른 전경을 펼쳐 놓는다. 동화 속 어여쁜 산중 마을이다. 기후가 온화하니 일 년 내내 축제의 도시가 될 만도 하다. 바쁘게 사진을 찍다 보니 이달고 시장에 닿는다. 시장 건물답지 않은 빅토리아 건축 양식이 이채롭다. 로스앙헬레스 광장에 우두커니 앉아 그늘을 즐긴다.

▲과나후아토의 ‘키스의 골목’. 골목을 마주보고 사는 연인들이 서로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는 뜻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사진 = 김현주

독립의 깃발이 펄럭이다

100페소를 주고 시내 관광 차량에 오른다. 알론디가 기념관에 먼저 들른다. 멕시코 독립을 위한 첫 종이 울렸던 곳으로,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과나후아토는 1810년 9월 16일 멕시코 독립 영웅 이달고 신부의 연설로 시작된 혁명의 발상지다.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해 카를로스 국왕을 볼모로 붙잡았다는 소식에 힘입어 혁명의 기운이 용출한 곳이다. 그러나 혁명군은 멕시코시티에 접근하면서 패퇴했고 이달고와 혁명 지도자들은 처형, 참수됐다.

미라 박물관에서 수십 개의 미라를 마주하다

좁은 산 언덕길을 돌아 미라 박물관에 갔다. 근처 공동묘지에서 발굴한 미라 수십 개가 전시된 으스스한 곳이다. 몸이 뒤틀린 미라, 비명을 지르는 듯한 괴로운 표정의 미라…. 거친 광산 도시다운 해괴한 풍습이기는 하지만 죽은 후 인간의 몸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게 하고 싶은 교훈적 가치도 염두에 뒀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과나후아토 도시 전경. 한때는 멕시코 전체 은 생산의 25%를 담당했던 은광으로 인해 멕시코에서 가장 부자 동네였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발렌시아나 은광지대 그리고 화려한 교회

드디어 발렌시아나 은광 지대에 닿는다. 은광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산카야타노 교회다. 250년 된 교회 외부 전면은 은 장식물로, 내부 제단은 금 장식물로 입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교회다. 당시 멕시코 최대 부자였던 은광 주인의 기부금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게 해준 신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인디오 노예를 착취한 데 대한 속죄의 마음을 담아 교회를 지었을 것이라고 안내인이 말한다.

을씨년스러운 폐광촌 풍경

폐광한 은광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다. 발렌시아나 은광은 1558년 채굴이 시작된 뒤 250년 동안 멕시코 은 생산의 25%를 담당했다. 지금은 초라한 시골 마을로 변한 은광 주변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을 많이 닮았다. 뒹구는 가시덩굴과 말 탄 무법자만 있다면 영락없이 총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그런 풍경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멀리 보이는 도시와 도시를 감싼 산들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은광도시 발렌시아나 풍경. 다양한 건축물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다. 사진 = 김현주

스펙터클 피필라 언덕

시티 투어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피필라 기념비가 있는 산언덕이다. 인디오 광부였던 피필라는 알론디가 창고를 불태우고 산화한 독립투사다. 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전경이 압권이다. 부산 서구 괴정동 감천고개 ‘마추픽추’가 여기를 흉내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맞춘 듯 때마침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가 스펙터클에 감흥까지 덧붙인다.

우니온 정원 근처로 내려와 중국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사이 해가 저문다. 푸니쿨라를 타고 피필라 언덕에 다시 오르니 도시가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마침 들려오는 성당 종소리, 저녁노을, 멀고 가까운 산 능선, 그리고 파스텔 톤의 집들…. 이 색깔과 소리의 조화를 어쩌란 말이냐?

우니온 정원의 밤 풍경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어두운 화강암 골목길을 걸어 우니온 정원에 다시 내려오니 축제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축제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젊은이들이 가득하고 쉬지 않고 음악이 흐르는 낭만의 광장이다. 마침 한 무리의 밴드가 길을 나서고 그들을 따라 많은 젊은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광장을 출발한다. 밴드의 문하생들이라고 한다. 지금 일기를 정리하는 밤늦은 시각까지 기타와 챔벌린, 트럼펫 소리가 골목에서 화음을 만들어 낸다. 이 도시의 밤 풍경을 전달하기에 나의 글이 모자람을 아쉬워한다.

▲발렌시아나 은광 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성당의 화려한 제단. 당시 멕시코 최대 부자였던 은광 주인의 기부금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호텔로 돌아오는 길, 술집마다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마침 멕시코와 온두라스의 골드컵 준결승전이 열린다. 단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편도 5시간씩 먼 길을 올라온 노고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고도 넘친다. 아름다운 건축물, 뽀송한 여름 날씨, 그리고 가로등 불빛 내리는 화강암 골목길에 평화로운 6월 하순의 밤이 깃든다. 과나후아토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삶을 잠시 엿봤을 뿐이지만 나는 이미 넉넉히 마음의 양식을 채운 느낌이다. 멕시코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혼자 맥주잔을 기울인다.

5일차 (과나후아토 → 멕시코시티 → 샌프란시스코 → 서울)

새벽 6시에 호텔을 나선다. 머나먼 귀국길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멕시코시티까지 버스 5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5시간 30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천공항까지 12시간…. 비행기에 승객이 적어 다소 편하게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새벽 비가 내린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 인간이 사는 모습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비가 추적거리는 낯선 도시의 새벽길을 나서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버스터미널에는 새벽 버스를 타려는 승객들이 꾸준히 모여든다.

고독한 여행 속의 낭만

버스는 7시에 출발한다. 아직 바깥은 어슴푸레 동틀 무렵이지만 차 안은 쾌적하다. 비가 오는 새벽, 낯선 도시를 버스로 벗어나는 것도 고독한 여행의 낭만이라면 낭만일 것이다. 버스와 비행기에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나이가 됐다. 멕시코시티가 가까워 온다. 오늘은 환승을 위해 스쳐갈 뿐이지만 눈에 익은 풍경이 반갑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긍정적인 삶을 사는 그들에게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과나후아토 거리. 어딜가도 콜로니얼식 분수대 광장이 있다. 사진 = 김현주

태평양 블록에서 소외된 멕시코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는 멕시코 국적 항공사를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항공사, 유럽계 항공사, 그리고 남미계 항공사가 취항하지만 아시아 계열 항공사는 전혀 없다. 태평양 건너 아시아와 교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멕시코는 원래 태평양 무역을 개척한 나라다.

식민지 시절 멕시코에서 산출한 은을 실은 갈레온 무역선이 멕시코 아카풀코와 필리핀 마닐라 사이를 수백 차례 왕래했다. 스페인은 멕시코 은으로 중국의 견직물과 도자기 등을 구입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중계무역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화려하게 태평양 시대를 개척했던 멕시코가 이제는 미 대륙, 그것도 북미 대륙으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말았다. 멕시코는 태평양 연안에 버젓한 항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역설적으로 우리 입장에서 보면 멕시코에는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항공기는 멕시코시티를 이륙한 지 5시간만인 오후 6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국제선 도착장 입국 심사는 매우 신속해서 삽시간에 빠져 나온다. 입국장 환영 간판에 한국어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국가 위상이 현저히 높아졌음을 이런 작은 데서도 느낄 수 있다. 입국장 바깥으로 나오니 정돈된 환경, 여유로운 풍경이 나를 안심시킨다. 하룻밤을 일없이 더 보내고 인천행 항공기에 오름으로써 여행이 끝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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