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갖고 살아야 무난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런데 정작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요즘 선호하는 콘텐츠가 외톨이 이야기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달 컴백한 그룹 빅뱅의 노래 ‘루저’는 5월 최고 히트곡으로 꼽힌다. 멜로디도 귀에 쏙쏙 꽂혔지만 특히 가사에 공감 간다는 반응이 많았다. “루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거울 속에 넌 Just a loser, 외톨이, 상처뿐인 머저리, 더러운 쓰레기, 거울 속에 난”으로 시작되는 가사는 “솔직히 세상과 난 어울린 적 없어” “언제부턴가 난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만 해” 등 세상과 단절된 이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엔 외톨이가 되기를 자처한 소녀 백마리가 등장한다. 인간 세상에 섞여 사는 뱀파이어인 그녀는 비정상이라 여겨지는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갖고, 타인과 관계 갖는 걸 두려워하며 거부한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1990년대부터 일본의 사회 문제로 인식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학교,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은 상태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극은 히키코모리였던 토미오가 히키코모리 출장 상담원이 돼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20대 히키코모리 청년 스즈키 타로, 20년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은 40대 히키코모리 카즈오 등 다양한 히키코모리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며 겪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콘텐츠들의 주인공은 외톨이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다. 외톨이라 치부되는 자에게 ‘그러면 사회생활 제대로 못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거다’ 식으로 손가락질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특히 히키코모리에 대해선 ‘문제가 있는 사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 등 정상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외톨이 콘텐츠는 과감하게 그 문제가 다른 곳에 있는 건 아닌지 짚고, 이들이 느끼는 심정을 가감 없이 밝힌다. 노래 ‘루저’는 외로움을 고백하는 것조차 제대로 용인되지 못했던 사회에서 스스로를 외톨이라고 고백하며 “파란 저 하늘을 원망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거래처와 원만한 관계를 트기 위해 등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쳐 공허함을 느끼거나 때로는 외톨이가 되고픈 현대인의 심경을 자극해 위로가 된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에선 왜 백마리가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할 수밖에 없었는지 주변 환경을 보여준다. 극 중 백마리가 뱀파이어라는 특이 요소를 집어넣었지만, 결국 말하는 바는 사회에서 정한 정상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 존재에 쏟아지는 멸시의 눈길이다. 그래서 백마리는 자신이 비정상이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인간의 음식을 억지로 먹다 토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이야기가 더 적나라하다. 일단 실제 히키코모리였던 작가 이와이 히데토의 경험이 들어갔다. 작가는 16살부터 20살까지 직업도 가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일본에서의 거품경제를 겪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에 속한 개인이었다며 자신이 히키코모리였을 때의 심경과 함께 생각해볼 거리를 공연에 풀어 놓았다.
극 중 히키코모리인 타로와 카즈오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 위해 출장 상담원 쿠로키와 토미오가 고용된다. 이들은 “밖으로 나가야 행복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며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카즈오에게는 상담센터 기숙사 신문을 만들며 타인과 소통하게 하고, 컴퓨터에 재능이 있는 타로의 능력을 칭찬하며 사회로 나갈 준비를 시킨다. 이들 또한 처음의 어두웠던 모습에서 점점 밝게 변화한다.
결국 카즈오와 타로 둘 다 취업에 성공하며, 세상 밖으로 나간다. 외톨이를 벗어나 앞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것 같은 이들이었지만 카즈오는 바로 자살을 택한다. 세상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던 카즈오의 죽음은 적잖은 충격과 동시에 히키코모리가 바깥으로 나가야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히키코모리가 과연 바깥으로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건 아닌지, 과연 이런 문제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묻는다.
작가는 “일본은 거품경제에 들떠 끝도 없어 보이는 정상까지 올랐다가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봤다. 그렇기 때문에 취직, 안정적인 직장 혹은 정규 채용과 같은 말에 그다지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높은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모두가 말하는 회사에 다녔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그 회사가 망해서 실업자가 됐다 류의 이야기는 흔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사회 현실에서 ‘나아가야 할 미래가 없다’는 기분을 몸소 체험했고, 방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로 지내다 20살 때 우연히 바깥세상으로 나왔다”며 “나는 극을 통해 히키코모리들이 왜 집 밖에 나가지 않게 됐는지, 그들이 정말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2010년 일본 정부에서 일본에 히키코모리가 70만 명에 육박한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사회관계에 치중하지 않고 홀로 있기를 즐기는 나홀로족 등 외톨이를 자처하는 새로운 부류가 늘어나고 있다. 외톨이를 주제삼아 이야기하는 콘텐츠도 인기다.
이처럼 각각의 형태와 방식을 지닌 외톨이가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 ‘외톨이=잘못’ 식으로 구분 짓는 현실이다. 하지만 ‘외톨이’를 꿈꾸게 된 세상이 과연 비정상인지, 그들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