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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뉴스 - ‘독거’전 2제] 젊어도 늙어도 “독방의 시대”

‘신림동 청춘’ vs ‘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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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9호 김금영 기자⁄ 2015.09.24 08:48:23

▲고시학원 광고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시생의 모습. 사진 = 서울역사박물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같은 독거의 삶 속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청년과 노인이 있다. 청년은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대가가 올 거라는 꿈을 갖고 좁은 방구석에 앉아 혼자 공부한다. 하지만 청년에게 닥치는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반대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은 혼자 쓸쓸히 방에 누워 잠이 들었다가 화려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꿈을 꾼다. 간절히 그때로 돌아가고픈 염원을 담아….

청년의 꿈은 100% 실현된다는 보장이 없어 불투명하고, 노인의 꿈은 실현 불가능해 씁쓸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꿈을 꾸는 독거 청년과 노인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전시장에 펼쳐진다.

꿈을 좇는 청춘의 치열한 독거 생활
‘신림동 청춘’전

나무가 무성한 관악산 기슭에 위치해 신림(新林)이라 불린 신림동 일대는 1980년대 학생 운동가들의 투쟁 장소였다. 1975년 2월,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가 신림동으로 이전하면서 대학동네로 변모했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학생 운동가들의 열망이 담긴 집회와 시위가 학교 정문과 신림동 일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벌어졌다.

현재의 신림동엔 또 다른 의미로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청춘들이 고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집결됐던 학생들은 사라지고 한 건물에 마련된 여러 개의 작은 평수 방에 청년 한 명 한 명이 들어가 공부를 한다. ‘신림동 청춘’전은 꿈을 위해 잠시 젊음의 화려함을 유예해 둔 이 시대 청년들의 독거 생활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림천 건너편 산등성이를 빽빽한 건물로 가득 메운 신림동 고시촌은 한때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의 땅으로 불렸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의 고시생들이 몰려들어 최전성기를 누렸다. 주민의 과반수이상이 고시생들이었고, 주민 상당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시 관련 시설과 각종 상권에 종사하며 신림동을 ‘고시촌’이라는 특성화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1평짜리 방으로 이뤄진 고시원 외관. 사진 = 서울역사박물관

하지만 2008년 로스쿨 도입과 2017년 사법시험 폐지로 고시촌을 떠나기 시작한 고시생들을 대신해 ‘1인 가구’라 불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시 관악구다. 그 중 신림동은 25~34세 청년층 분포가 여전히 많다. 아직 남아 있는 고시생 외에도 불안정한 고용, 실업, 학업, 취업 준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많은 청년이 이곳에서 독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 방구석에서 포스트잇을 잔뜩 붙인 책상에 웅크리고 있는 청년의 모습은 치열하기도, 씁쓸하기도 하다.

전시는 고시촌 곳곳에서 펼쳐지는 고시생의 24시간 수험생활, 고시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고시촌 괴담, 선택의 기로에서 남거나 떠나는 청년들의 모습을 통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청춘의 일상을 보여준다.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고시촌 일대를 연출했고, 스토리텔링 영상 등을 통해 관람객이 전시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독특한 역사를 간직한 채 형태는 달라도 미래를 향한 열망과 인고의 공간으로 충실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청춘의 꿈과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11월 8일까지.

화려했던 젊은 시절 꿈꾸는 독거노인의 이야기 ‘꿈’전

‘신림동 청춘’전이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청춘의 치열한 독거 생활을 보여준다면, ‘꿈’전은 화려했던 젊은 시절의 꿈을 꾸는 독거노인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조덕현 작가, 김기창 소설가, 작가와 동명이인인 조덕현 배우의 합작으로, 1914년부터 1995년까지 삶을 살다 간 가상 인물 ‘조덕현’의 개인적인 삶을 묘사한다.

▲‘꿈’전에 설치된 가상인물 조덕현의 집. 독거노인으로 쓸쓸히 살다간 조덕현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 일민미술관

이들이 만들어낸 조덕현은 1930~1950년대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며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다. 김기창이 전시의 서사이자 조덕현의 삶을 담은 단편소설 ‘하나의 강’을 집필했고, 이 서사를 영상으로 재현해 작품에 중첩시키는 역할을 조덕현 작가-배우가 맡았다. 일제시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삼촌을 따라 간 중국 상하이에서 1930년대 배우로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가, 공산당 집권에 따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영화 제작가에게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된 뒤 아들과의 불화로 독거노인으로 살다가 고독사한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법한 낡은 지붕의 집 한 채를 마주한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네댓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침대, 선풍기, TV가 놓여 있다. 독거노인 조덕현이 삶을 마감한 장소다. 어둑어둑한 조명에 손님 한 명 방문하지 않은 듯한 쓸쓸한 풍경은 가슴에 찬바람을 일으킨다.

이 공간을 지나치면 전혀 색다른, 화려한 그림들이 전시장을 채운다. 바로 독거노인 조덕현의 머릿속 풍경이다. 과거 젊은 시절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머릿속으로 꿈을 꾼다. 그런데 화려했던 청춘에 대한 그리움 탓에 왜곡되고 과장된 기억과 망상이 포함된다. 유명 영화 ‘청춘쌍곡선’, ‘카사블랑카’, ‘키드 갈라드’ 등의 주요 장면에서 배우의 얼굴에 조덕현의 얼굴을 밀어 넣는 식이다.

▲독거노인 조덕현의 생활공간. 좁고 손님이 절대로 없을 것 같은 쓸쓸한 풍경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하지만 이 화려한 망상 속 공간에서는 계속해서 마른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그 공간에서 환상이 아닌 현실 속 조덕현이 초라한 모습으로 혼자 방에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독거노인 조덕현은 배우 조덕현이 연기했다. 일민미술관의 남선우 교육담당 큐레이터는 “‘꿈’전은 격동의 삶을 산 한 사람의 삶을 반영-반추한다”며 “머릿속엔 화려한 세상이 펼쳐져 좀 더 아름답게 표현되지만, 화려했던 젊은 날과의 대비 효과로 독거노인의 삶이 더 쓸쓸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조덕현 작가는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오랜 시간 식물인간처럼 누워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게 됐다”며 “서서히 퇴장하는 세대에게도 한 번쯤 전성기가 있다. 그 삶을 가상으로 꾸며 보여준다”고 밝혔다. 전시는 일민미술관에서 10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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