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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라오스] 나 어릴적 한국에 돌아온듯한 착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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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8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11.26 08:52:51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7일차 (라오스 루앙프라방)

노스탤지어 인도차이나 버스 여행

산안개 가득 낀 아침을 맞은 지 오래지만 아직도 버스가 달린다. 산골 마을 아이들이 무리지어 학교로 간다. 스쿨버스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이 산골에 학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계속해서 지나치는 산중 마을은 30여 년 전 대학 시절 친구와 함께 갔던 강원도 정선군 어느 면소재지 모습과 똑같다. 지금 라오스 모습은 곧 40∼50년쯤 전 한국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 동남아 여행은 가끔씩 문득 지난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스탤지어 여행이 되곤 한다.

루앙프라방 버스터미널 풍경

드디어 아침 7시 30분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 도착했다. 비엔티안에서 400km 정도 거리지만 열악한 도로 사정 때문에 11시간 걸렸다. 버스 터미널에는 서양인 배낭 여행자가 많다. 라오스 서북부 오지 산악지대로 가는 버스들이 여기서 떠나기 때문이다. 

1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거뜬히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인도차이나 말고 또 있을까 싶다. 터미널에서는 20년 전 한국에서 퇴역했을 낡은 현대차 버스가 지붕 위에 짐을 가득 싣고 벽지 노선을 오간다. 

▲쾅시 폭포에서 즐겁게 노는 서양 젊은이들을 만났다. 타잔처럼 밧줄을 붙잡고 웅덩이로 뛰어 드는 모습이 참 신나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왓시엥통 목조 사원 전경.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사진 = 김현주

호텔이 있는 시내까지 뚝뚝을 타고 찾아 들어가니 이른 아침 체크인이지만 다행히 환영해 준다. 예쁜 발코니의 하얀 이층집, 겹창문을 가진 전형적인 라오프렌치 양식이다. 샤워를 하고 연이틀 야간 강행군에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한다. 호텔 바로 앞에는 왕궁 박물관이 있다. 1975년 공산 혁명으로 수도 비엔티안에서 북쪽 오지로 유배된 왕이 살던 곳으로서, 이후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그러나 애석하게 오늘 화요일은 휴관이다. 가로에 늘어선 노천카페에서 먹은 라오 커피가 참 맛있다. 

쾅시 폭포의 비키니 서양 여행자들

마침 쾅시(Kuang Si) 폭포로 가는 미니트럭 승합차가 있어 올라탄다. 시내에서 25km 산길을 달려 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폭포 가는 구불구불 시골길과 라오스 농촌 풍경, 사방을 둘러싼 첩첩 산중은 한국 농촌의 옛날 모습이다.

입구에서 폭포로 향하는 낮은 오르막 숲길 트레킹이 즐겁다. 길을 따라 오르니 여러 층으로 만들어진 폭포가 연이어 나타난다. 짓궂은 서양 젊은이들이 타잔처럼 밧줄을 붙잡고 폭포 아래 웅덩이로 뛰어 든다. 여성들의 과감한 비키니 노출이 볼거리를 하나 더 보태준다.

▲루앙프라방 야시장엔 먹을 것이 풍부하다. 거리 음식은 1000원이면 푸짐하게 먹는다. 사진 = 김현주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묵은 호텔 앞에서 왕궁 박물관을 발견했다. 1975년 공산 혁명으로 수도 비엔티안에서 북쪽 오지로 유배된 왕이 살던 곳으로, 이후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사진 = 김현주

시내로 돌아와 몇 군데 명소를 더 탐방한다. 거리를 걷다보니 비엔티안과 함께 루앙프라방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를 알겠다. 개발 바람을 타지 않아 아시아에서 역사 유적이 잘 보존된 몇 안 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과거 왕궁이 있었고 내전이나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은 것 또한 이유가 된다. 인구 10만 명, 라오스 제2의 도시인 루앙프라방은 미얀마의 침공을 피해 멀리 비엔티안으로 수도가 옮겨간 1545년까지 라오스의 수도였다. 

라오프렌치 양식 도시 풍경

중심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걸으니 여러 개의 사원이 계속 나타난다. 뾰족한 황금빛 지붕과 건물 외벽 모자이크 벽화가 화려하다. 또한 겹창을 가진 19세기 콜로니얼식 빌라들이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혹은 카페가 돼 줄지어 서 있다.

사찰 하면 우리는 보통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산속에 자리 잡은 풍경을 연상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시내 한 복판, 소나무 대신 야자나무 속에 열대 지방의 사찰이 있어 풍경이 낯설다. 거리 동쪽 끝은 칸(Khan)강과 메콩(Mekong)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대나무 다리를 건너 메콩강변 백사장까지 내려가 발을 담근다. 내 앞에서 나는 듯이 걷는 승려의 빨간 승복이 파란 하늘, 하얀 모래 백사장과 어울려 멋진 그림을 연출해낸다.

프랑스의 라오스 집착

목조 사찰인 근처 왓시엥통(Wat Xieng Toung)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마침 예불 시간을 알리는 타종 의식이 진행 중이다. 종루를 둘러싼 많은 관광객을 의식한 듯 동자승은 일부러 과장되게 멋을 부리며 타종한다.

▲정감 넘치는 루앙프라방 거리. 겹창을 가진 19세기 콜로니얼식 빌라들이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혹은 카페가 돼 줄지어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왓시엥통 사원에 부처의 생애를 다룬 탱화가 모자이크 타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이 과거의 매우 찬란했던 문명을 상상케 한다. 사진 = 김현주

법당 안에는 크고 작은 불상이 여러 개 있고 부처의 생애를 다룬 탱화가 모자이크 타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매우 아름답다. 여기에도 한때 이렇게 찬란한 문명이 있었음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운남성(云) 등 중국 번호판을 단 고급 SUV 차량들이 여러 대 눈에 띤다. 중국의 존재가 얼마나 가깝고 큰지 알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콜로니얼식 빌라들은 프랑스가 이 도시에 공을 많이 들였음을 말해 준다. 사실 프랑스는 1945년 점령자 일본의 패망 이후 라오스 게릴라를 앞세워 다시 들어와 왕을 옹립했을 정도다.

▲승려가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엔 여러 사찰이 있는데, 깊은 산속이 아닌 시내 한 복판에 많이 자리한다. 사진 = 김현주

험준한 메콩강 중류의 분지

호텔에 돌아와 쉬다가 해 저물기를 기다려 푸시(Phou Si) 언덕에 오른다. 가파르지 않은 계단 길을 오르니 70m 언덕 정상이다. 사방이 확 트인 언덕은 전방향으로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저녁 해는 메콩 강을 물들이고 도시는 불을 켜기 시작한다.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루앙프라방은 험준한 메콩 중류 산악 지대 사이에 자리 잡은 분지임을 보여 준다.

거리에 열린 야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호텔 2층 발코니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본다. 밤이 깊어갈수록 조용해지더니 이제는 적막감마저 든다. 인도차이나 내륙 국가 라오스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중앙부에 자리 잡은 루앙프라방의 밤이 고즈넉하다. 그냥 이렇게 걸터앉아 여러 날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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