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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흑인 없는 뉴욕 같은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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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0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12.10 08:49:19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 타슈켄트)

인종 전시장

타슈켄트행 아시아나 항공기에는 다양한 얼굴의 승객들이 모두 모였다. 우즈벡인, 한국인, 고려인, 타지크인, 금발의 러시아인까지…. 동서양 교차로에서 수천 년 동안 섞이고 섞여 130여 민족이 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인종 구분은 무의미할 정도다.

우즈벡인은 몽골, 투르크계와 이란계의 혼혈이다. 원래 인도아리안계 언어를 사용하는 백인종이 살던 우즈베키스탄은 9∼10세기 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하는 황인종이 들어오면서 인종 지도가 한층 복잡해졌다. 역사적 이유뿐 아니라 구소련 스탈린 통치 시절 고려인, 체첸인, 유대인, 타타르인의 우즈베키스탄 집단 이주 같은 정치적 이유도 민족 다양성에 기여했다. 

피침의 역사

우즈베키스탄은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 BC 6세기 페르시아, BC 4세기 알렉산더제국, 아랍, 몽골,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들어온 제정러시아에 이어 구소련까지, 수많은 세력이 거쳐 간 땅이다.

그 중 7세기 말부터 8세기에 걸쳐 밀려온 압바스 왕조의 아랍 연합군 30만 명은, 751년 천산산맥 서북쪽 기슭 탈라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당나라 유민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화세계의 영향력을 차단했다. 이후 당나라는 안록산의 난으로 국력이 쇠퇴해 더 이상 서역 경영에 관심을 둘 수 없게 되고, 중앙아시아는 온전히 이슬람 세계에 편입된다. 

▲무스타클릭 광장의 독립기념 조형 아치. 무스타클릭은 ‘독립’을 뜻하는 우즈벡어다. 사진 = 김현주

이중 내륙국

인천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는 3000마일, 7시간 반 걸린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지 4시간 반 지나니 몽골 초원을 완전히 건너 중국 신장의 광활한 사막 위를 난다. 곧 만년설 쌓인 봉우리들을 아래로 보며 천산산맥을 넘어 남부 신장(난장, 南疆) 카쉬가르(喀仕) 부근에서 키르기즈스탄 상공으로 진입하더니 곧 타슈켄트다.

어느 방향에서 오든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웃 여러 나라를 통과해야만 한다. 우즈베키스탄과 접경한 다섯 국가들, 즉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이 이미 내륙국인데, 우즈베키스탄은 이들 다섯 나라에 둘러싸여 있으니 이중내륙국(二重內陸國, double landlocked)이라는 독특한 지정학적 환경을 가진 나라다.

우즈베키스탄의 중심, 중앙아시아의 중심

항공기는 현지 시각 오후 9시 10분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했다. 크지 않은 공항이지만 타슈켄트 국제공항은 중앙아시아의 중심 공항으로서, 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연결하며 과거 실크로드의 명성을 이어간다. 대한항공은 타슈켄트를 경유해 이집트 카이로행 노선을 운영 중이고, 아시아나항공과 우즈벡항공도 인천 직항노선을 운영한다.

공항 환전소에서 미화 200달러를 내미니 너무 많다고 100달러만 환전하라고 한다. 사회주의식 근무 방식에 밤늦은 시각이라 귀찮아서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미화 100달러만 해도 공식 환율로 19만 3000솜, 1000솜 지폐가 최고액 지폐인 이 나라에서 1000솜 지폐로 무려 193장, 거의 책 한 권 두께에 해당하는 돈을 내준다. 

▲넓고 쾌적한 티무르 광장. 광장엔 아무르 티무르 박물관과 아무르 티무르 기마상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 = 김현주

깨끗한 도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사회주의식 도시 계획에 따라 건설된 거리는 깨끗하고 널찍하다. 게다가 1968년 대지진 이후 재건한 도시여서 더욱 그렇다. 택시의 라디오에서는 미국 올드 팝송이 흘러나오고, 거리 곳곳에 햄버거를 비롯한 미국식 패스트푸드 식당이 많다. 한반도의 2배, 남한의 4.5배 면적에 2850만의 인구를 가진 우즈베키스탄은 1인당 소득이 1533달러에 불과하지만 국민들의 공중도덕 수준이나 도시 기반, 구소련 시절부터 체제가 갖춰진 의료보험 등 사회 보장 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버금간다. 

고선지로 시작한 인연

타슈켄트는 석국(石國)이라는 뜻이다. 보석과 보석 가공자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750년 고선지 장군이 한때 점령하고, 이 나라 왕을 사로잡아 당나라 장안(서안)까지 데려갔다. 악연이지만 우리와 오랜 인연이 이어지는 곳이다. 타슈켄트는 이제 인구 213만 명의 쾌적한 수도다. 습도가 거의 없는 사막의 여름 밤 공기가 상쾌하다. 


2일차 (타슈켄트)

사막의 오아시스

아직 해가 작열하기 전, 오전 9시 타슈켄트 거리는 벌써 분주하다. 거리 요지마다 삼성, LG 광고판이 박혀 있다. 대우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져서 이 도시를 달리는 자동차의 거의 대부분은 GM대우 우즈벡 공장에서 생산한 것들이다.

가로수가 늘어선 그린 도시 타슈켄트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천산의 눈 녹은 물로 시작한 아무다리아(Amudarya)강은 시르다리아(Syrdaria)강을 만나 도시를 풍족하게 적시며 아랄해로 흘러간다. 그러기에 타슈켄트는 지금도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우크라이나 키에프에 이어 구소련 독립국가연합(CIS)에서 네 번째로 크고,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타슈켄트 지하철.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이 있는 도시다. 역사 내부가 화려하다. 사진 = 김현주

범 러시아권

동유럽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도시에는 가로 표지판과 버스 노선도, 간판 등이 모두 러시아어로 돼 있다. 1865년 제정러시아가 들어온 후 1991년 구소련 해체까지, 한 세기 훨씬 넘도록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만큼 언어, 인종, 문화, 산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러시아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고려인 올가 장

한국을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예약해 놓은 우즈베키스탄 국내 열차표를 받으러 시내 여행사를 찾아간다. 여행사를 찾느라 헤매다가 친절한 현지인의 도움을 받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로 위치를 확인한 후 더운 날씨임에도 함께 걸어서 여행사 현관 바로 앞까지 데려다준다. 여행사 직원 올가는 만나고 보니 고려인 ‘장’씨다. 메일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영어가 매우 훌륭해 인상 깊었다. 

올가가 근무하는 여행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활용해 주로 서양 관광객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나를 보더니 최초의 한국인 손님이라며 반가워한다. 러시아와 영어는 물론 우즈벡어까지 할 줄 아는 올가는 자기에게는 한국어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러시아어와 어순이 다른 우랄알타이계 언어이기 때문이란다.

▲우즈베키스탄 시인의 이름을 딴 나보이 극장. 2차대전 때 일본군 포로들의 노동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클래식하면서도 중앙아시아적 요소가 결합된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다. 사진 = 김현주

티무르제국

지하철로 티무르 광장을 먼저 찾는다. 1977년 첫 개통한 이래 3개 노선을 운영 중인 타슈켄트의 지하철은 쾌적하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지하철이 있는 도시다. 티무르 광장에 위치한 아무르 티무르 박물관은 그의 탄생 660주년을 맞아 1996년 유네스코 후원으로 개관했다. 중앙홀 초대형 벽화와 푸른색 테마로 꾸민 천정 문양이 현란하다.

당연히 박물관의 주제는 사마르칸트와 티무르제국이다. 티무르제국은 길지 않은 기간(1369∼1507까지 138년간) 존재했지만 서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갠지스강, 북쪽으로 아랄해에서 남쪽으로는 아라비아해까지 방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대제국이었다. 티무르는 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에 지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이다. 

실크로드의 시작

티무르제국의 발흥에 따라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한 실크로드의 개념도를 보면서 천산남로와 천산북로의 교차점인 사마르칸트의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느낀다. BC 2세기 시절 이곳을 다녀간 장건에게서 ‘비마(飛馬)’ 얘기를 전해들은 한 무제는 흉노를 비롯한 유목민 토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해 흥분한다. 비마를 얻기 위해서 한 무제는 서역 국가들에게 비단을 비롯해 갖은 선물 공세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동서양 문물 교류사를 따라 명멸했던 수많은 국가와 도시, 인물들이 그려진다.

▲동유럽풍으로 꾸며진 타슈켄트 중심가. 사회주의식 도시 계획에 따라 건설된 거리는 깨끗하고 널찍하다.사진 = 김현주

실크로드의 부활을 꿈꾸며

이후 15~16세기 인도양 신항로 개척으로 선박이 더 안전하고 저렴한 교통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실크로드는 잊힌 길이 돼갔다. 그러나 사실 동서양 인류에게 실크로드는 마음의 고향처럼 남아 있다.

20세기 중반 중일전쟁(1937∼1945) 시절 실크로드가 잠시 이름값을 되찾은 적이 있다는 박물관 기록이 있어 번쩍 눈에 띈다. 일본의 중국 해안 봉쇄로 중국 국민당의 항일전 수행을 위한 서방의 전쟁물자 공급 루트가 막히자, 러시아로 통하는 북쪽 실크로드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영토 욕심이 유별난 중국의 급부상에 따라 서방 및 중동과의 완충지대로서의 전략적 위치,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목이라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중앙아시아는 언제든 과거 실크로드의 영광을 회복할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티무르 광장

타슈켄트 신시가지 중심인 티무르 광장 중앙에는 아무르 티무르 기마상이 있다. 1993년 우즈베키스탄 독립 이후 세워진 기마상 앞에는 티무르를 통해 민족정기를 부활하려는 카리모프(Karimov)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권면사를 담은 기념비가 서 있다. 이 자리는 과거 스탈린, 마르크스, 레닌 등의 동상이 있던 곳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나보이 극장 가는 길

정오가 막 지난 무렵 태양이 무척 뜨겁지만 가로수 그늘로 덮인 거리는 걷기 쾌적하다. 마주치는 늘씬한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수천 년 피가 섞인 문명의 교차로는 이렇게 빼어난 용모를 지닌 인종을 남기는가 보다.

국립역사박물관 가는 길에 유명한 우즈베키스탄 시인의 이름을 딴 나보이(Navoy) 극장 앞을 지난다. 2차대전 때 극동전선에서 소련군에게 붙잡힌 일본군 포로들의 노동으로 지었다는 극장은 클래식한 요소와 중앙아시아적 요소가 결합된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다. 타슈켄트를 방문하는 일본인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지금은 하계 휴식 기간이라서 문이 닫혀 있지만 평소에는 세계 정상급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매우 저렴한 관람료로 시민에게 선보인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소소한 삶이 흐르는 초르수 시장 전경. 견과류부터 카펫까지 먹을거리와 생필품 모두를 아우른다. 사진 = 김현주

발길 붙잡는 국립역사박물관

국립역사박물관은 이곳이 인류가 정착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전시물 중에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Islamization) 이전인 2∼4세기 불상을 비롯한 불교 유물들이 흥미롭다. 남쪽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인 테르미즈(Termiz)에서 발굴된 것으로 쿠샨 왕조 시절 작품이라고 소개돼 있다. 이외에도 고대, 중세, 근대의 역사, 고고학, 인류학 자료가 전시돼 오래도록 관람자의 발길을 잡는다.

박물관 2층에는 제정러시아 시대의 압제와 독립운동, 그리고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산업발전 과정이 소개돼 있다. 항공, 교통, 통신, 과학, 기술, 교육, 체육 등 주제가 다양하다. 다만 러시아어를 읽지 못해 내용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무스타클릭 광장에서 느낀 독립

오후 두 시로 접어드니 한낮의 태양이 작열한다. 늦은 점심식사 후 무스타클릭 광장으로 간다. ‘무스타클릭’은 우즈벡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다. 구소련에서 가장 큰 레닌 동상이 섰던 자리에 이제는 독립기념 조형 아치가 섰고, 그 뒤로는 추모의 광장과 무명용사의 묘가 조성됐다.

정겨운 ‘철수’ 시장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는 초르수 시장(Chorsu Bazar)이다. 우리말 ‘철수’와 발음이 거의 같아서 가보기도 전인데 왠지 정겹게 느껴진다. 우즈베키스탄 지하철은 인종 박물관이다. 흑인만 없을 뿐, 뉴욕 지하철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빼어난 용모의 백인 우즈베키스탄 여성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오후 6시 밖에 안 됐는데, 초르수 시장의 가게들은 이미 ‘철수’ 중이다.

서둘러 시장을 돌아본다. 견과류 등 먹을 것부터 카펫까지 없는 것이 없다. 여러 가지 향신료 냄새가 섞여 시장 안에 야릇한 향이 풍긴다. 거대한 푸른 돔이 덮고 있는 시장 건물 주위엔 과일 장사들이 하루의 결산을 앞뒀다. 단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커다란 꿀복숭아가 6개에 5000솜(한화 3500원)이니 공짜나 마찬가지다. 근처 식당에서 양과 닭고기 샤슬릭, 우즈벡 빵, 그리고 맥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나오니 이미 지하철이 끊겼다. 지금 평일 저녁 7시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다행히 지나가는 버스가 있어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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