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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호주] 수십권 책보다 값진 여행 나선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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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2.25 08:56:57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0일차 (호주 시드니)

물가 비싼 호주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 탐방에 나선다. 호텔이라지만 배낭 여행자들이 묵는 중저가 숙소다. 그래도 나의 원칙은 가급적 언제나 단독 욕실을 가진 방을 예약하는 것이다. 물가 비싼 호주, 뉴질랜드 모두 조식 없이 하룻밤에 한화 9~10만 원 선이다. 센트럴역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가서 내리니 하이드 파크(Hyde Park), 시내 중심이다. 즐비한 고층 빌딩과 널찍한 녹지, 그리고 현대식 빌딩 사이에 섞인 빅토리아식 건물들은 런던과 뉴욕을 합친 모습이다.
ANZAC 기념관

하이드 파크 중앙에 자리 잡은 ANZAC(호주-뉴질랜드 연합군) 기념관은 1934년 건립됐다. 당시 세계 공황으로 건립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해외 각 지역에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으로 참전한 기록들이 전시돼 있고, 기념관 바깥 공원에는 ‘기억의 연못(Pool of Remembrance)’이 조성돼 있다. 미국 워싱턴 DC 링컨 메모리얼과 그 앞에 뻗은 반사 연못(Reflecting Pool)을 합친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작은 규모로 조성한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이드 파크 주변 명소들

하이드 파크를 둘러싸고 사방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Australian Museum), 세인트 메리 대성당(St. Mary’s Cathedral), 하이드 파크 배럭스 뮤지엄(Hyde Park Barrack’s Museum) 같은 시드니의 명소들이 자리 잡았다. ANZAC 기념관 건너편 엘리자베스 스트리트(Elizabeth Street)에 한국문화원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가 본다.

시내 중심 가장 좋은 위치에 널찍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나 전시물이 빈약하고 전시 방식이 진부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내 거리에는 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데이(Australia Day)를 기념하는 페넌트가 가득 걸려 있다. 1788년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이 시드니를 영국의 죄수 유형 식민지(penal colony)로 삼은 날이다. 시드니(Sydney)라는 도시 이름은 당시 영국 내무장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시드니 200주년을 기념해 조성된 달링 하버 해안. 높이 솟은 초현대식 빌딩이 즐비해 마치 홍콩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사진 = 김현주

뉴질랜드 마오리 vs. 호주 애버리진

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에 가깝지만 특이하게도 애버리진(Aborigine: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관한 정보를 모아 놓았다. 자연사 관은 호주 대륙에 사는 각종 포유류와 파충류의 두개골 표본, 각종 조류 박제, 광물 표본 등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호주 원주민 관은 그들에 대한 박해와 원주민들의 인권 투쟁 역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965년 2월 미국 인권운동 당시 했던 것 같은 자유의 기수(Freedom Rider) 버스 시위, 1972년 백호주의 정책 폐지, 1975년 인종차별 금지법 통과 등을 소개했다.

뉴질랜드의 곳곳 박물관에서 마오리와 태평양 지역 민족과 문화에 방대한 공간을 할애했던 것에 비하면, 호주에서 애버리진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왠지 빈약해 보인다. 뉴질랜드에서 마오리가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서 호주 애버리진은 비율이 낮아서(2.3%)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하이드 파크 중앙에 자리 잡은 ANZAC(호주-뉴질랜드 연합군) 기념관은 1934년 건립됐다. 해외 각 지역에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으로 참전한 기록들이 전시됐다. 사진 = 김현주

백호주의

호주는 수가 얼마 되지 않는 원주민을 내쫓고 1788년부터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 이민이 몰려오면서 성립된 나라다. 19세기 후반에 터진 골드러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였는데 그중에는 중국인도 많았다. 그러나 1972년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비유럽인, 심지어는 남유럽인에게조차도 이민 문호가 닫혀 있었다. 다행히 2차 대전이 끝나면서 호주 이민 정책은 반전해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600만 명 이상을 받아들인 이민 대국이 됐다. 

죄수 수용소 배럭스 뮤지엄

하이드 파크에서 북쪽 방향으로 서 있는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북반구에서도 보기 드문 웅장한 두 개의 고딕 첨탑이 인상적이다. 하이드 파크 배럭스 뮤지엄은 2011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호주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별 사전 지식 없이 우연히 들렀지만 의외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곳이다. 이민 초기 호주가 영국의 죄수 유형지(penal colony)이던 시절, 수용소로 사용됐던 시설을 보존하고 복원했다. 3층 공공 숙소에 재현해 놓은 수십 개의 해먹(hammock)이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말해 준다. 그래도 본국에서 사형이나 종신형에 처해졌을 운명이 식민지 노동으로 감형돼 결국은 자유시민이 됐으니, 영국의 죄수 유형은 차라리 인도적인 조치로 보인다. 

▲죄수 수용소 배럭스 뮤지엄(Barrack’s Museum)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호주가 영국의 죄수 유형지이던 시절에 수용소로 사용됐던 시설을 복원했다. 사진 = 김현주

죄수들이 건설한 도시

영국의 해외 식민지 죄수 송출은 1718년부터 시작돼 처음에는 미국으로, 미국이 독립한 이후에는 호주로 보냈다. 호주 이외에도 당시 영국이 가지고 있던 인도, 지브롤터 등 많은 해외 식민지가 모두 죄수 송출지였다. 

죄수 해외 송출은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당시 해외 식민지를 가진 유럽 국가들이 해왔던 관행으로, 영국이 가장 많은 죄수를 해외로 보냈다. 영국에서 호주는 2만 5500km, 8개월 항해해야 하는 머나먼 길이었다. 영국은 1788년부터 1868년까지 호주로 16만 6000명의 죄수를 보냈고 그중 5만 명이 여기 배럭스 뮤지엄을 거쳐 간 것이다. 19세기 후반 시드니 인구의 1/3이 죄수였을 정도였다. 

따져 보면 현재 호주인 열 명 중 한 명은 조상 중에 죄수가 있다고 한다. 시드니로의 죄수 유출은 1840년까지만 이뤄지고 이후에는 태즈마니아(Tasmania)와 퍼스(Perth) 등 서부 호주 지역으로 보냈다. 죄수를 유형 보낸다고 해서 본국의 범죄율이 낮아지지 않았다는 판단과 현지 일반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박물관에는 1822년 시드니 항구 전경을 담은 파노라마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죄수뿐만이 아니다. 1848년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고아가 된 청소년 중 미혼 여성 4000명도 여자가 귀했던 호주로 보내졌다. 

▲서큘러 키에서 애버리진이 전통 관악기를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보는 사람까지 절로 즐거워진다. 사진 = 김현주

시드니 관광 중심 서큘러 키

태양이 무척 뜨겁지만 곳곳에 쉴 데가 많아 걷기 힘들지는 않다. 드디어 서큘러 키(Circular Quay)다. 부둣가 광장에서는 애버리진이 전통 관악기로 신나는 음악을 연주한다. 신비로운 소리는 항구 전체에 울려 펴진다. 오래된 창고, 세관 건물, 사무실 등이 잘 보존된 락스(Rocks) 지역으로 가본다. 옛 건물들은 가게나 음식점, 사무실로 바뀌었지만 시드니 개척 시대 분위기를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역시 세계 3대 미항

서큘러 키에서 달링 하버(Darling Harbor)행 시드니 페리에 오른다. 거대한 크루즈선, 옷걸이를 닮은 하버 브리지(Harbor Bridge: 현지인들은 코트 행거라고 부른다),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Opera House)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니 감격스럽다. 시드니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이태리 나폴리(Napoli)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이라고 불리지 않는가? 하버 브리지는 락스 부두 지역과 시드니 북쪽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1932년에 건설된 이후 건재하고 있다. 

일부 관광객들은 높이 130m 교량을 걸어서 올라가는 스릴을 즐긴다. 오페라 하우스의 기이하고도 조화로운 모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네덜란드 건축가 요른 웃손이 설계했고 1973년 완공한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를 넘어 호주의 아이콘이다. 오페라 하우스의 하얀 돔 위로 강렬한 여름 오후 햇살이 반사된다. 하얀 돔, 아주 파란 하늘, 그리고 쪽빛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은 아무리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다.

▲시드니 항만 전경. 푸른 물결과 하늘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저 멀리로는 호주의 상징인 오페라하우스도 보인다. 사진 = 김현주

페리에서 제자들을 만나다

그런데 페리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반가운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을 만난 것이다. 여럿이 어디론가 저녁 나들이 가는 중이다. 여기 시드니에는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일하고 있거나 몇몇은 곧 면접을 앞두고 있다. 진취적인 젊은이들이다. 넓은 세상을 일찍 경험해본 젊은이들은 그 깨달음에 취해 큰 꿈을 꾸기 마련이다. 책 수십 권을 읽는 것보다 큰 배움을 깨우치고 오기를 바란다. 그들의 앞길에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달링 하버의 풍경

페리는 오페라 하우스 앞을 지나 하버 브리지 밑을 통과한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시드니 항만의 멋진 풍경이 내 눈 앞에, 그것도 페리 갑판에서 펼쳐지는 것은 감격이 아닐 수 없다. 시드니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조성한 달링 하버 해안은 높이 솟은 초현대식 빌딩이 즐비해 홍콩 분위기를 연출한다.

피어몬트 베이(Pyrmont Bay) 선착장을 나오니 웰컴 월(Welcome Wall)이 길고 긴 모습으로 서 있다. 이민자들이 내린 곳을 기념해 조성한 이곳에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호주로 몰려든 이민자 600만 명의 용기와 성취를 기리는 글과 함께 그들의 이름이 벽면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하버 브리지는 현지인에게 ‘코트 행거’(옷걸이)로 불린다. 시드니가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데 한 몫 하는 건축물이다. 사진 = 김현주

아름다운 거리에 살인적인 물가

역동적이고 활발한 도시 시드니에서도 가장 젊은 달링하버를 버스로 벗어나 서큘러 키로 돌아왔다. 해가 지니 아주 선선한 가을 날씨로 변한다. 순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을 가진 남반구 호주 시드니는 축복받은 땅이다. 거리에는 중국인이 정말 많다. 반쯤은 호주 거주 중국인들이고 나머지 반은 관광객들로 보인다.

센트럴역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도넛 몇 개, 사과 몇 개, 탄산음료와 맥주 한두 캔 샀는데 30달러(한화 3만 3000원)가 넘는다. 아무리 편의점 가격이라지만 한국 물가의 세 배쯤 되는 것 같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일 것이다. 뉴질랜드의 비싼 물가에 이미 놀랐지만 호주에 와서 한 번 더 놀란다. 아름다운 시드니가 살인적인 물가로 기억될까봐 걱정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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