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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응답하라 1988’의 양옥집 멋 다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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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4호 안창현 기자⁄ 2016.03.17 08:56:29

▲아뜰리에 아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잉고 바움가르텐. 사진 = 안창현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건축은 도시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활동에서 무대나 배경이 된다. 그것이 때로 너무 평범하고 익숙해서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건축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건축은 생활의 무대나 배경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또는 건물 밖 사람들의 삶을 규정짓기도 한다.

독일 출신의 작가 잉고 바움가르텐(Ingo Baumgarten)은 이런 이유에서 도시 환경과 건축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는다. 건축물이 그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 산물이라 생각하는 그는, 날카롭고 세심한 시선으로 각 지역의 건축물과 일상의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일본, 대만 그리고 한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교육 받고 거주하면서 각 지역과 시대의 건축물을 관찰하고 표현해왔다. 서울 성수동 아뜰리에 아키에서 4월 9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 ‘퍼셉션(Perception)’은 내부자들의 시선에는 너무 일상적인 도시의 장면들을 낯설게 다시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잉고 바움가르텐은 독일 칼스루에 국립예술조형대 졸업 뒤 파리, 영국, 일본 등에서 공부하고 현재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작가다.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독일을 비롯해 여러 나라를 거쳤다.

“워낙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파리에서 공부할 때도 독일과 다른 프랑스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그곳에서 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해 영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런 새로운 경험들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알게 해줬고, 예술가로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작가는 20년 전 우연한 기회에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 와본 아시아는 유럽과 또 달랐다. “프랑스에서 석사 과정 중에 그곳 교수가 대전 엑스포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그와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이후 일본에서 4년간 살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홍익대 교수로 임용된 뒤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고 있다.”

▲‘무제(서울 서교동)’, 캔버스에 오일, 27 × 22㎝, 2016. 사진 = 아뜰리에 아키

바움가르텐은 건축과 도시 환경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 그는 작업 초기부터 그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담은 중요한 문화 산물로서 건축물을 중요하게 다뤘다.

“주변의 건물들은 단지 우리 필요에 의한 도구가 아니라 기술과 디자인, 미학이 집약된 흥미로운 대상이다. 나는 일상과 문화, 사회라는 공동체의 정서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것이 집약된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관심을 회화란 장르로 표현하고 있다. 도시의 건축물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개인이자 집단이고 문화인 셈이다.”

이방인의 시선에만 보이는 특징들

작가는 일본에 처음 갔을 때 건물 지하의 식당들이 무척 낯설었다고 했다. “일본 땅값이 비싸서인지 지하 식당들이 많았다. 유럽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일본 사람들에겐 익숙하겠지만, 외국인으로 처음 일본을 방문한 내겐 무척 낯설었다.”.

▲‘무제(독일 프리드리히샤펜)’, 캔버스에 오일, 140 × 120㎝, 2005. 사진 = 잉고 바움가르텐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건축물들이 작업의 소재가 됐다. 화가인 만큼 건축물이 갖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디테일, 재료와 색의 배열 등 조형적인 요소에 주목했다. 그런 구조와 형태에 내포된 사회학적인 의미와 가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2005년 작가는 독일 프리드리히샤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독일의 시골 마을이다. 그곳의 건물들은 한적한 전원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프리드리히샤펜 풍경과 주택가를 담은 그의 작품은 독일인들에게 과거 독일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

하지만 똑같은 풍경에 대해 작가의 대만인 친구는 다른 모습을 연상했다고 한다. “2005년 프리드리히샤펜 레지던스에서 그린 그림들에 대해 대만인 친구는 ‘한 번 꼭 살아보고 싶은 럭셔리한 주택가’라고 말했다. 독일인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자아내는 시골 집들이, 다른 나라 사람에겐 럭셔리 저택으로 보였다. 서로 다른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무제(서울 신천동)’, 캔버스에 오일, 80 × 100㎝, 2015. 사진 = 아뜰리에 아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은 이런 차이를 만든다. 바움가르텐은 프리드리히샤펜 지역의 건축물과 한국의 주택가를 비교하는 전시를 가진 바 있다. 이때 작가는 한국 건축이 서양의 것을 모방하면서도 한국 특유의 한옥 곡선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동서양 건축의 공존에 주목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나는 작가로서 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주변의 일상과 건축물을 관찰하고 이를 그리려고 노력한다.”

독일인 작가에게 도쿄의 초소형 정원은 흥미로운 대상이다. 작가는 “정원의 크기가 불과 10~20㎝ 되는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대만에선 시내 모습도 달랐다. 서양식 초고층 빌딩 사이로 대만 특유의 문양들이 불쑥불쑥 끼어든 모습은 이질적이기에 충분했다고.

예술가의 예민한 시선은 서로 다른 나라들에서뿐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특이한 지점들을 찾아낸다. 독일에서 그린 그의 그림 중에는 우리에게는 그저 일상적으로 보이는 카페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있다.

“독일에서 2004년에 그린 몇 점이 있다. 당시 살고 있던 베를린 인근을 그렸는데, 터키와 아랍인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몇몇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카페에서 ‘컬처 클럽’을 열고 이민자 커뮤니티를 열었다. 그런 카페들은 색감과 스타일에서 독일의 카페들과 많이 달랐다.”

“양옥에는 마당과 테라스의 멋 있었는데, 
그걸 부수고 쪼개다가 결국 상가로 바꾸니…”  
 
바움가르텐은 이렇게 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크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밀착해 삶의 무늬와 흔적을 드러내는 건축물에 주목했다.

한국에선 어땠을까? 뜻밖에도 작가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한국의 획일적인 빌딩과 각진 아파트 건물들 때문이었다.

▲‘무제(일본 도쿄)’, 캔버스에 오일, 180 × 120㎝, 1998. 사진 = 잉고 바움가르텐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들은 그 역사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한국은 성격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서양식 근대화를 바삐 쫓아가고자 했던 양상이 한국 도시의 건축물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독일에서 건축은 반영구적인 예술 작품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그래서 건물이나 교량 등을 지을 때 향후 20년간 어떤 문제에도 법적으로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날마다 새로운 건물을 세우느라 옛 건물을 부숴댄다.

“유럽과 한국의 도시 모습이 다른 것은 도시와 건축물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파리에선 새 건물을 짓는 일 자체가 드물지만, 일단 건물을 지을 때면 기존 건물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역사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는 전언이었다.

“이유는 알지만… 유럽에서 건물은 보존의 대상인데…” 

바움가르텐은 홍익대학교에 근무하면서 학교 근처에서 살 집을 구하려 많은 곳을 둘러봤다. 그때 도심의 고층 아파트 같은 최신 건물들은 도대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반대로 대략 1970~90년대 사이에 지어진 ‘마당을 낀 단독주택들’을 보면서 한국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었다고.

그는 “한국의 주택들은 내가 본 일본이나 대만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불과 2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그런 아름다운 주택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대 인근이 생활 무대인 작가는 연희동, 아현동, 서교동, 합정동, 상수동 일대의 집과 빌딩, 학교, 지하철역, 교량 등 다양한 건축과 구조물 사이에서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을 선택해 사진을 찍거나 즉석 드로잉을 하는 방식으로 작업 재료들을 수집했다.

작가의 관심을 특히 잡아 끈 것은 한국의 이른바 ‘양옥’이었다. 한옥과 구별되는 서양식 단독주택이란 의미에서 불렸던 이 양옥들에서 바움가르텐은 오히려 한국의 독특성을 잡아냈다.

획일적인 외관과 천편일률적인 구조의 아파트가 한국의 주거 공간을 잠식하기 이전에 이 양옥들은 서양 건축물을 모방하면서도 구석구석 독특한 한국적 특색을 드러냈다. 그가 독일 프리드리히샤펜의 전형적 독일식 주택과 한국 양옥을 비교해보고자 한 것도 한국 주택의 이런 개성 때문이었다.

“한국에선 내가 사는 집의 주변 100m 반경 이내에서도 일상적으로 집들이 헐리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70~80년대 지어진 양옥들은 한국의 전통 양식과 모던한 서구 양식의 결합을 시도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개성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무제(서울 성산동)’, 캔버스에 오일, 100 × 80㎝, 2015. 사진 = 아뜰리에 아키

양옥의 장식적 스타일에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 주택들이 가졌던 넉넉하고 기풍 있는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을 작가는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이제 테라스나 발코니 같은 외부 공간은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대부분 실내로 흡수되고 있다. 또 단독주택들은 거주자를 늘리기 위해 여러 가구들로 쪼개지고 있다. 마당은 주차장이 되고. 그러다가 끝내는 철거되면서 상업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그럴 이유가 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특별한 건물들이 사라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바움가르텐의 작업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한국 건축물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할도 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건축물들에서 살았던 한국인의 모습과 흔적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그에게 좋아하는 건축가를 물었더니 “특별히 없다”고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유명한 건축가의 화려하고 멋진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 없는 건축가가 지은 주변의 평범한 주택들이 더 중요하다고 바움가르텐은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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