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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 골프 세상만사] 똑똑하면 뭐하나? 몸이 멍청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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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5호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2016.03.24 08:52:45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나는 문과적 적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주로 매달리는 글쓰기를 직업 삼아 20년 이상 글밥을 먹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이과인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광학’ 과목을 가르치던 교수님은 빛의 입사각과 반사각, 굴절률, 탄성계수 등의 용어를 나열하면서, “물리학도가 당구는 잘한다”고 했다. 대학교 앞에서 당구장을 경영했던 사람들은 “문과생들보다는 공대생, 이과생들이 월등하게 당구를 잘한다”고 말한다. 그 시절 골프가 대중 운동이었더라면 골프 역시 이과생들이 정복하기 쉬운 운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골프를 배울 무렵, 내가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골프는 매우 과학적인 메커니즘을 가진 운동이에요. 이과 전공한 사람이 골프에 대한 이해력이 높죠”라고 티칭 프로들이 추켜세워주곤 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 말을 내가 골프를 금방 잘하게 될 거라는 칭찬으로 받아들였고, 조금만 노력하면 남보다 빠르고 쉽게 정상에 우뚝 설 줄 알았다.

나는 골프에 빠져 ‘골프 빠순이’ 경력을 쌓아갔지만, 팔꿈치나 손목 등의 부상이 잦아서인지 실력은 영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빠순이답게 다른 골퍼의 스윙 구조나 체재를 분석 및 판단하고, 골프 경기를 찾아 다니며 초보 골퍼들에게 경기 규칙이나 선수의 사생활 등에 대해 아는 척 떠들어댔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 지면을 얻어 골프 칼럼을 연재하면서도 정작 골프하는 것엔 지진아였다.

“넌 참 총명해 보이거든. 그런데 하는 짓은 영 지진아 같아.” 가족이나 지인들은 가끔, 또한 농담조로 나를 놀렸지만, 나는 단지 남에게 총명하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상대의 조언을 웃음으로 뭉개고는 했다.

골프 빠순이인 내가 자주 듣는 말 “영특한데 왜?” 
나 왈 “머리와 뭔 상관? 몸에 그분이 안 오시는데”

그와 연관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과적 머리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재였다. 서울대를 나왔고,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학의 이학박사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플레이는 하고 있을 적에 그가 골프에 발을 들여 놓았다. 내 경험으로 남성 골퍼들은 100타 안팎의 타수를 기록하는 비기너(beginner)일 때까지만 여성 골퍼들과 라운드를 하다가, 중상급자가 되면 슬그머니 여성 골퍼들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스포츠 이외에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남성은 빼고.

드라이버나 아이언의 거리에서 차이가 나는 여성 골퍼보다는, 맞수 골퍼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팽팽하게 겨루는 플레이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언제쯤 내 곁을 떠날 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꽤나 오래 여성 골퍼들 틈에서 플레이를 했다. 절대로 안정되지 않는 드라이버 샷 탓에 거의 매 홀 OB를 내면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하나쯤 더 보탤 불가사의가 있는데, 그건 ‘너하고 상렬 씨하고 왜 공을 못 치는 것이냐’야. 못 칠 이유가 없잖아. 연습을 안 하나, 머리가 나쁘나, 팔이나 다리 어느 한쪽이 짧은 것도 아니고. 둘 다 영특하게는 생겼는데….”

친구의 그런 비아냥거림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해졌다. 내 머리가 명석한 것은 맞다. 단지 몸이 멍청할 뿐이다. 왜 내가 골프의 이론과 스윙의 메커니즘을 모르겠는가. 골퍼들은 정타의 임팩트를 오르가즘으로 표현한다. 혹은 그 정타 임팩트의 순간을 “그분이 강림하셨다” “접신했다”고도 한다. 내 영특한 머리는 오르가즘의 희열을 산술적 수치로 그린다. 신과 영혼이 통하는 접신 순간의 시각과 공간의 좌표까지 계산한다. 단지 몸이 멍청하고 둔해서 두뇌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고, 강림하는 신을 영접하지 못할 뿐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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