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 골프 세상만사] 벗과 함께하는 3C, 즐겁지 아니한가
(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그녀는 상사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로 살러 갔다. 가계 제정이 흔들릴만한 국제전화는 꿈도 못 꿨고, 그녀와 나는 서로의 그리움을 항공 우편으로 전했다.
“지난주에 국립공원 사파리 파크에 놀러갔었어. 우리 집에서 이리까지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지. 전라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넓어서, 안에서 길을 잃으면 휴전선을 넘어서 북한(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파리 파크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국경까지의 거리가 군산까지보다 멀 만큼 광대한 초원이야. 동물들이 철창이 쳐진 랜드로버에 갇힌 사람들을 구경해. 사자가 사냥해서 뜯어먹고 남긴 얼룩말의 머리며 갈비뼈가 풀밭에 널려 있어. 저녁에는 향나무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코냑을 마셨어. 너랑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쪽 면에 사연을 적어 내용이 감춰지도록 접어 봉하고, 겉면에 발신자와 수신자의 주소를 써서 우표를 붙이는 항공 우편지에 되도록 많은 사연을 담기 위해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지면을 메웠다.
고향친구인 그녀와 나는 고교 졸업 후 상경해 학교도 다니고, 직장 생활도 했고, 또한 서울에서 결혼도 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만 이틀을 타야 도착한다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서울 잠실에 살다가 갔다. 그런데도 그녀의 ‘우리 집’은 태어나고 유년을 보낸 전주시 전동이었다.
그 후 10년 쯤 지나,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옮겨와 살 때,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말했다. “비행기로 두 시간, 서울~부산보다 두 배쯤 멀어.”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의 비행시간을 일컫는 모양이었는데, 아마 전주에는 비행장이 없어서 그래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잣대로 삼는 것 같았다.
동반자(companion), 편안(comfort), 겨룸(competition)까지…
3C 갖춰야 진정 즐거운 골프 인생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두 시간쯤 날아서 도착한 곳은 발리, 그리고 또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세계 50대 골프장에 선정됐다는 한다라 코사이도 골프장이었다. 발리섬의 위치는 적도 근처여서 언제나 한여름인데 반해, 골프장은 해발고도 1400미터의 칼데라분지 안에 들어 있어서 연중 18~24도의 기온을 유지한다고 했다. 분화구가 만들어낸 부얀호수 주위를 돌며 라운드를 하는데, 천혜의 자연경관에 더한 인위적인 조경은 보는 사람의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가히 천국이었다. 아아, 골프란, 골프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김해림이 5월 8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교촌레이디스오픈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산꼭대기의 골프장으로 올라가면서 그녀가 물었다. “한국 교민들끼리 월례회도 해. 장타상은 언제나 내가 독식이다. 넌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몇 야드야?” 나는 장타상이라는 용어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바람 소리와 새들의 노래 소리 때문에 그녀의 말을 잘 못들은 척하며, 내 골프 지식의 한계 안에서 거짓말을 했다. “야드로는 못 재봤고, 아마 오목대 정자에서 치면 우리 집 마당에는 떨어질 거야.” 오목대는 그녀와 내가 어린 시절 가끔 올라가던 뒷동산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같이 골프라는 취미를 갖게 된 후로 그녀와 나는 거리의 단위를 ‘7번 아이언’이라거나 ‘18홀 한 라운드만큼 거리’ 등으로 잣대를 만들어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금 그녀는 한국에 사는데, 골프는 안 한다. 외국에서 운전사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뒷자리에만 타다보니 운전하는 법을 잊었단다. 한국에서 운전을 안 하면 자연 골프와 멀어진다.
골프가 무엇으로 인해 즐거운가. 3C, 즉 companion(동반자) comfort(편안) competition(겨룸) 덕이라고 한다. 어쩌면 골프의 벗이 사라지는 날, 내 골프 인생도 끝날 것 같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