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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법률 칼럼] 형사재판 소송비용은 누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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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0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2016.07.04 09:27:03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최근 제주지방검찰청은 “유죄가 명백한 경우인데도 형사재판 절차에서 피고인이 불필요한 증인신문을 신청하는 등 공판절차를 지연시키고 소송비용을 증가시키는 경우, 피고인에게 소송비용 전액을 부담하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제주지방법원도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혐의가 명백한 사건에는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내용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보통 우리가 민사소송에서 판결을 선고받는 경우,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소송비용의 3분의 1은 원고가, 3분의 2는 피고가 부담한다’는 식으로 소송비용에 대한 선고가 이뤄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형사사건에서는 소송비용 부담과 관련한 판결이 선고되지 않습니다.

죄질이 명백한 사건에도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는 판결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형사재판은 민사재판처럼 당사자가 주도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이 주도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명백한 사건의 경우에도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증인여비, 국선변호인 선정비용 등을 부담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필자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을 무렵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했습니다. 국선변호는 변호사의 경력과 국선변호인의 경력 등에 따라 사건의 질이 차등 배당됩니다. 필자는 처음 국선변호를 맞고 대략 2년 정도 ‘약식명령에 불복한 정식재판 청구 사건’을 주로 맡았습니다. 저희 변호사들끼리는 이런 사건을 ‘고정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 사건번호가 ‘2016고정OOOO호’라는 방식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약식명령(略式命令)’이란 지방법원이 관할하는 형사사건에 대해서 검사의 청구가 있을 때 법원이 별도의 공판절차 없이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 조사해 피고인에게 형을 과하는 재판절차입니다. 이 과정을 ‘약식절차’라고도 하는데, 빠르고 간편하며 비공개로 행해지기 때문에 많이 이용됩니다.

약식명령 청구가 가능한 사건은 지방법원이 관할하는 사건으로 벌금, 과료, 몰수에 처할 수 있는 사건에 한정됩니다. 즉 약식명령으로 징역형이나 집행유예 등을 선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약식명령은 사건 자체가 경미하거나 피고인이 자백한 사건, 비교적 간단한 사건에서 이뤄집니다. 법원 공판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흔히 “검사가 벌금 때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약식명령은 약식명령을 고지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 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451조). 좀 더 정확하게는 약식명령을 정식으로 통보하는 법원 서류를 받은 날이 기준이 됩니다.

흔히 당사자(피의자)에게 문자로 약식명령이 내려진 사실이 통보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법원의 서류보다 벌금고지서가 먼저 당사자에게 보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법원의 정식 서류를 받은 날이 기준이 됩니다.

형사재판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상소제도가 인정됩니다. 잘못된 판결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가 상소입니다. 제1심 판결에 대한 상소를 ‘항소’라고 하고, 제2심 판결에 대한 상소를 ‘상고’라고 합니다.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재판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내가 상소했는데 상급심에서 판결이 나한테 더 불리하게 변경된다면 누가 상소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형사소송에서는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을 인정해 상소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피고인이 자신에게 선고된 형이 1심보다 2심에서 무겁게 변경될 것을 두려워 상소 제기를 단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원칙입니다.

무분별한 재판 청구 막고자 피고인에 비용 부담시킬 수도 

그런데 재판에 대한 불복은 피고인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검사도 할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선고한 형량이 너무 적거나 일부 공소 사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경우 검사는 항소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피고인만 항소하고 검사가 항소하지 않은 경우 피고인이 2심에서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없지만, 검사가 항소한 경우에는 피고인은 2심에서 1심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받을 수 있습니다.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피고인만 처분에 불복한 사건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이 적용돼 피고인은 유죄든 무죄든 처음 받은 벌금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죄가 명백한 사건의 경우에도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정식 재판 청구를 남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억울해서 무죄를 다투는 경우도 있지만, 단지 벌금을 줄이기 위해서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약식명령은 비교적 경미한 사건에서 처분됩니다. 그러다 보니 경미한 폭행, 상해, 명예훼손, 모욕, 음주운전, 업무방해, 피해액이 크지 않은 사기죄 등이 약식명령 사건의 단골손님입니다.

매년 초 지난 연말에 적발된 음주운전 벌금 사건으로 인해 고정사건의 법정이 가득 메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주운전을 했지만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서 정식 재판을 청구해 벌금을 감액해줄 것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주운전은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치는 범죄행위이고, 그간 음주운전을 줄이기 위해서 형량을 여러 차례 높이는 법률 개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모든 법원의 기본적인 방침은 음주운전 사건의 경우 감형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사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한 사건(자백사건)을 정식 재판 청구하면서 벌금을 줄여달라고 하는 경우에도 피해자와 합의가 됐다든가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벌금 감액은 없습니다.

이런 정식 재판 청구를 남용하기 때문에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약식명령에 불복한 경우 적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무죄라고 확신하면 정식 재판을 청구하되, 원래 벌금형보다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은 피고인의 중요한 권리 중 하나입니다. 피고인의 억울함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이를 풀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칙을 함부로 제한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좀 우회적인 방법이 등장합니다. 증인여비, 국선변호인 선정비용 등의 소송비용을 형사소송법 제186조에 따라 피고인에게 적극적으로 부담시키자는 것입니다. 제주지방검찰청과 제주지방법원도 이런 ‘밑져야 본전’식 정식 재판이나 증인 신청을 남용하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송비용이 민사소송처럼 커지지는 않습니다. 대략적으로 국선변호인 비용 30~40만 원에 증인여비 1인당 5만 원 정도 선에서 소송비용이 결정됩니다. 무익한 사건에 이 정도 비용을 당사자가 부담하는 것은 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면서도 이를 남용한 경우 줄 수 있는 적절한 불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익한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약식명령도 거의 일관된 기준에 따라 벌금이 책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식 재판을 받는 경우에도 유죄로 인정될 경우 벌금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지 않고 앞으로는 오히려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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