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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브루나이] 산유국이라 부럽고 무섭고 지루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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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0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7.04 09:27:03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 (브루나이 도착)

다양한 인종의 브루나이

항공기 승객들은 대부분 필리핀 해외 노동자들이다. 마닐라를 떠난 항공기는 술루해(Sulu Sea) 작은 바다를 건너 817마일을 날아 두 시간이 채 안 걸려 새벽 1시 40분 보르네오섬 북부에 자리 잡은 브루나이 왕국의 수도, 반다르스리베가완(Bandar Seri Begawan)에 닿는다.

참 애매한 시각이다. 이 시간에 시내로 나가는 방법은 택시밖에 없으나 매우 비싼 콜택시를 부르느니 공항터미널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한다. 공항터미널은 추울 정도로 냉방이 잘 돼 가방 깊숙이 넣어 놓은 겨울옷을 꺼내 입었다. 이미 충분히 깨끗한 공항을 티끌 하나 없을 정도로 샅샅이 청소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부자 나라가 그렇듯 현지인들이 꺼리는 힘든 일은 외국인들 몫이다. 브루나이의 인구는 50만이지만 인종 구성은 말레이계 67%에 중국계 15%, 그리고 인도네시아계, 인도계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석유와 천연자원 풍부한 부자 나라

지금은 우리나라 경기도 절반 정도의 면적을 가진 작은 나라이고, 작은 국토나마 말레이시아 영토에 의해 양분돼 있지만 15~17세기 전성기 때 브루나이 술탄은 보르네오 북부와 필리핀 동남부까지 지배했다. 17세기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세력이 들어오면서 왕국은 쇠락해 영국 보호령(1888~1984)으로 지내다가 독립했다. 한때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 제의가 있었으나 석유 판매 금액 배분을 놓고 의견이 달라 독립국으로 남았다. 

브루나이는 석유와 천연자원 덕분에 잘 사는 나라다. 일인당 소득 2만 8800달러이고, 의료, 교육, 심지어 주택까지 무상 공급된다. 거리는 매우 깨끗하게 가꿔져서 미국 플로리다, 호주 다윈, 싱가포르를 연상하게 한다. 열대 낙원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반면, 지구상 남은 유일한 전제군주 국가라는 점과 숨 막힐 정도로 살벌한 각종 규제와 엄한 이슬람 규율 때문에 이 나라 모든 국민들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약 소지나 복용에 대한 극형은 물론이고 웬만한 경범도 엄하게 다스린다. 예를 들어 금연 구역에서 흡연하면 300브루나이달러(한화 약 28만 원)를 물린다고 한다. 성탄절 장식도 금지하고 있을 정도다.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Sultan Omar Ali Saifuddien) 모스크는 브루나이의 랜드마크다.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이 특징이다. 사진 = 김현주

▲브루나이강 바로 건너편에는 깜풍 아예르(Kampung Ayer)가 있다. 수상마을 경관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 김현주

열대 마을의 베니스

이런 저런 밀린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새 길 것 같았던 밤은 금세 지나간다. 새벽 첫 버스를 기다려 시내로 향한다. 거리의 표지판은 이 나라 공용어인 말레이어와 영어로 표기돼 있다. 말레이어를 라틴 문자와 아랍 문자로 병기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일단 짐이나 맡기려고 호텔에 도착했으나 고맙게도 방을 내준다.

잠시 휴식 후 시내 탐방에 나선다. 시내 중심가에서 브루나이강 바로 건너편 깜풍 아예르(Kampung Ayer)를 먼저 찾는다. 도심 피어에서 모터보트로 순식간에 닿는 수상마을은 ‘열대의 베니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물 위에 격자로 얼기설기 엮어진 보행로(boardwalk)를 따라 여기저기 들르며 마을을 살핀다. 

바로 아래 미로처럼 형성된 수로에는 모터보트들이 종횡무진 마을과 강 건너 도시를 이어준다. 강을 따라 8km 뻗어 있는 수상마을에는 2000개의 주택에 3만 명이 살고 있으니 마을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도시다. 통나무 기둥 위에 올린 전통적 수상가옥도 많지만 새집들은 튼튼한 콘크리트 파일 위에 올라앉아 있다. 브루나이식 주택개량 사업의 결과인 듯하다. 그래도 집집마다 모터보트 한두 대씩은 있으니 부자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여행 도중 한국 드라마의 열혈 팬인 브루나이 여성들을 만났다. 브루나이 인구는 50만이지만 인종 구성은 말례이계 67%에 중국계 15%, 그리고 인도네시아계, 인도계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사진 = 김현주

▲브루나이의 아름다운 워터프론트(waterfront)를 걸었다. ‘열대 마을의 베니스’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경관이다. 사진 = 김현주

도교-힌두교-기독교 사원이 혼재

도시로 다시 건너가 워터프론트(water front)를 따라 걷는다. 아침 11시인데 벌써 찌는 듯 덥다. 물 위에 떠 있는 듯 석호(lagoon) 위에 들어선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Sultan Omar Ali Saifuddien) 모스크는 브루나이의 랜드마크답게 아름답고 웅장하다. 모스크 안에 들어가 보니 그 넓은 모스크가 완벽하게 냉방이 돼 있어 다시 한 번 놀란다. 야경이 더 멋질 것 같아 해진 후 다시 와보기로 하고 도심을 향해 좀 더 걷는다.

방송국 건물을 지나 레갈리아 박물관(Regalia Museum)에 들른다. 핫사날 볼키아(Hassanal Bolkiah) 현 국왕의 대관식 때 축하 사절로 방문한 외국 귀빈들이 가져온 값진 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도시에는 도교 사원, 힌두교 사원과 함께 교회도 있어서 브루나이가 종교적으로 배타적인 국가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후 저녁 무렵 식사도 할 겸 거리로 다시 나온다. 더위는 누그러들어서 상쾌하지만 음식점과 상가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드문드문 다니던 시내버스도 저녁 6시에 끊겼다. 다행히 문을 연 필리핀 음식점을 겨우 찾아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저녁이 있는 삶치고는 심각하게 지루한 이러한 분위기를 24시간 분주한 한국생활에 젖은 나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해진다.


4일차 (브루나이 → 코타키나발루)

비행기 출발 전 기내방송으로 코란 들려줘

냉방이 잘 된 호텔방에서 시간을 보낸 후 공항으로 나가 코타키나발루행 항공기 출발을 기다린다. 웅장한 시설에 비해 공항은 한적하기만 하다. 로열브루나이 항공기 또한 자리가 절반은 비어 있다. 그래도 항공사는 40년이 넘었고 홍콩,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등 가까운 곳은 물론이고 런던, 두바이, 제다 등 장거리 노선도 갖고 있다. 항공기는 출발 직전 기내방송으로 코란(이슬람교 경전)을 들려주고 곧 이륙하는 것이 참으로 이채롭다. 아주 특별한 나라를 다녀간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겨 준다.

▲방송국 건물을 지나 레갈리아 박물관에 들렀다. 방문 당시엔 핫사날 볼키아(Hassanal Bolkiah) 현 국왕의 대관식 때 축하사절로 방문한 외국 귀빈들이 가져온 값진 선물들을 전시해 놓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사진 = 김현주

비행기론 40분, 땅으로 가면 6번 입출국

항공기는 이륙하자마자 거대한 임해(臨海) 석유산업단지 위를 난다. 지독하게 더운 날씨대신 신이 내린 축복을 본다. 금방 남중국해 해안선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인구 45만의 도시 코타키나발루가 발아래 보인다.

브루나이에서 코타키나발루까지는 항공거리로는 140마일, 226km, 40분도 안 걸리는 길이지만 육로나 해로를 이용하면 거의 한나절이 걸린다. 특히 육로 이동은 브루나이 영토 일부가 말레이시아 영토 내에 끼어있기 때문에 브루나이 출경, 말레이시아 입경과 출경, 다시 브루나이 입경과 출경, 그리고 말레이시아 입경을 거치므로 짧은 시간에 무려 여권에 스탬프를 여섯 개나 받아야 하는 성가신 길이다.

코타키나발루의 황홀한 석양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 호텔을 찾아 들어가 체크인한 후 서둘러 거리로 나와 워터프론트로 향한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예상대로 석양은 서두른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도 남는다.

육안으로도 아름답지만 카메라에 담으니 노을이 황홀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머문다. 혹한을 피해서 온 한국 관광객들이 아주 많다. 적당한 크기의 도시, 편리한 교통, 다양한 쇼핑 환경, 우아한 해안선, 이국적 풍광과 분위기, 선량한 사람들에 맛있는 음식과 저렴한 물가까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남아 해양 휴양지로 명성을 높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브루나이엔 석유와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임해 석유산업단지의 모습이 저 멀리 아래 보인다. 사진 = 김현주

말레이시아의 특별 지역인 사바

지금은 말레이시아 연방이 된 사바(Sabah) 지역은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브루나이 술탄과 술루(Sulu) 술탄이 번갈아 가며 통치해 왔고, 이후 영국이 이 지역을 탐내던 스페인과 독일을 따돌리고 술탄들을 회유해 차지한 땅이다. 연방이라고는 하지만 말레이반도에서 보르네오섬의 사바(Sabah) 주와 사라왁(Sarawak) 주를 오갈 때는 여권 검사를 하는 등 코타키나발루는 좀 특별한 곳이다. 거리도 자기 나라 수도인 쿠알라룸푸르까지는 1009마일(1624km)인 반면 필리핀 수도 마닐라까지는 680마일(1059km)로 훨씬 가깝다. 

인종 구성도 본토와는 달라서 중국계가 50%에 가깝다. 중국인들의 이민 역사가 오랜 탓도 있고 영국 통치 시절 노동자로 많이 불러 들였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브루나이와 마찬가지로 필리핀 사람들도 많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통치 시절부터 1970년대 정정 불안으로 필리핀인들이 많이 유입됐고, 한국, 일본, 호주, 유럽인도 적지 않다. 

코타키나발루는 영국 보호령으로 북보르네오특허회사(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가 관리해 오다가 2차 대전 이후 전후 복구를 감당할 여력이 없자 영국 정부가 나서 영령(英領) 보르네오(British Borneo)로 정하고 말레이시아로부터의 독립과 연방 성립(1963)까지 통치했다. 전쟁 이후 사바주의 수도도 보르네오섬 동부 산다칸(Sandakan)에서 코타키나발루로 옮겼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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