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뮤지컬 ‘올슉업’을 보고 문득 지코의 ‘너는 나 나는 너’의 가사 중 ‘오그라든다는 말은 누가 만든 걸까’가 떠올랐다. 공연을 보는 동안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을 한껏 맛본 덕분. 그런데 그 오그라듦에는 사랑스러움이 만연했다. 닭살이 아닌, 유쾌한 오그라듦이라고나 할까.
‘올슉업’은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스타가 되기 전은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뮤지컬이다. 데뷔 전 이름 모를 한 마을에 엘비스가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모든 사람을 홀리는 매력적인 엘비스에게 마을의 여자 정비사 나탈리가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리고 그런 나탈리를 오래 짝사랑해온 데니스의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나탈리는 엘비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소 입지 않던 드레스도 입고 한껏 변신하지만, 엘비스는 박물관의 아름다운 큐레이터 산드라에게 반한다. 그리고 나탈리의 아버지 짐 또한 산드라에게 반하고, 또 짐을 사랑하는 그의 오랜 친구 실비아까지. 애정 관계가 복잡하게 얽혔다.
흔히 다뤄지는 삼각관계는 지루할 수 있는데, ‘올슉업’엔 삼각관계를 넘어 십각관계까지! 삼각관계는 명함도 못 내민다. 처음엔 단순히 나탈리와 엘비스 그리고 데니스 사이의 삼각관계일줄 알았는데, 결국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허덕이는 상황이 펼쳐진다.
사랑 이야기에 유쾌함을 더해주는 포인트는 신나는 음악과 댄스다. 친숙한 엘비스의 히트곡들이 재해석돼 라이브 밴드의 연주로 무대에 오른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엘비스가 부르는 노래 ‘제일하우스 록(Jailhouse Rock)’은 매우 강렬하다. 그리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된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사랑하고 즐기라는 엘비스의 ‘커몬 에브리바디(C'mon Everybody)’는 공연장 전체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배우들의 댄스가 강력하다.
이밖에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Can't Help Falling in Love)’, ‘올 슉 업(All Shook Up)’, ‘버닝 러브(Burning Love)’ 등 엘비스의 히트곡이 펼쳐져 올드팝의 향수를 자극한다.
오그라듦의 결정체 최우혁-제이민
철없어 보이는데 한심해 보이지 않는 요상한 매력
오그라듦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바로 마을에 사랑의 시작을 가져오는 엘비스 프레슬리다. 특히 최우혁은 마초적이면서도 느끼한 엘비스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한다. 짙은 쌍꺼풀의 눈매부터 무스로 쫙 올린 머리, 그리고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까지 외형부터 심상치 않다. 말의 끝마다 던지는 “베이베~”는 느끼하다. 하지만 이 말에 여자들이 쓰러지듯 관객들도 “아우!” 하며 탄성을 지른다. 오그라들기는 하는데 매력 있고, 철없어 보이는데 한심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게 이 캐릭터의 특징이다.
의외의 면도 있다. 상남자 포스로 산드라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자신감이 넘치던 엘비스는 남장을 한 나탈리에게 끌리며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다소 여성적으로 변한 듯한 모습도 보여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엘비스를 뒤흔드는 나탈리 역의 제이민도 공연에서 매력이 터진다. 공연 도록에서 긴 머리의 그녀는 바로 한순간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오른 그녀는 단발 포텐이 터졌다. 극 중 캐릭터와도 잘 어울린다. 사랑을 모르고 털털하게 자랐다가, 엘비스를 만나며 수줍어하고, 엘비스와 친해지기 위해 남장을 해 에드라는 캐릭터로 또 거듭나는 그녀의 변화가 무대 위에서 꾸준히 펼쳐진다.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는 고음에서 불안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는데, 깔끔하게 쭉 뻗어 올라가 귀에 청량감을 준다. 특히 자신을 사랑해 달라며 ‘러브 미 텐더’를 부를 때 과연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드러낸다.
주역 배우들을 비롯해 실비아 역의 서지영, 짐 역의 장대웅, 데니스 역의 김재만, 산드라 역의 송주희, 딘 역의 선한국, 로레인 역의 이하경, 마틸다 역의 정영아, 얼 역의 김선까지 마을 주민들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가창력과 춤 실력으로 조화를 이룬다. 이들 또한 오그라드는 사랑의 소용돌이를 무대 위에 제대로 휘몰아치게 하는 장본인이다.
‘올슉업’은 특히 여름에 어울리는 공연이다. 내용 자체가 어둡거나 복잡하지 않다.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발랄, 유쾌하며 무엇보다 신난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싶을 때, 문득 사랑이 하고 싶을 때 그 욕구를 대리 충족해줄 수 있는 공연이다. 더위에 온몸이 오그라드는 계절, ‘올슉업’의 사랑에 온몸을 오그라들게 해보는 건 어떨까. 새로운 더위 해소가 되지 않을까. 공연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8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