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초록마녀와 금발마녀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5월 ‘위키드’가 먼저 개막한 대구 공연장을 찾았었다. 그때는 올해 공연에 새로운 초록마녀로 입성한 차지연, 그리고 금발마녀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아이비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차지연은 시크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초록마녀 엘파바, 아이비는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금발마녀 글린다로 분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나고 7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에서 ‘위키드’가 개막했다. 이번엔 원조의 그녀들을 만나고 싶었다. 차지연과 아이비에 앞서 기존 ‘위키드’ 공연에 출연하며 길을 닦아 놓은 박혜나와 정선아가 올해 공연에도 출연하기 때문.
뮤지컬 ‘위키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각색한 그레고리의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 동화는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가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용기가 없는 사자와 함께 모험을 하며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그린다.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도로시가 오기 전, 오즈에 있던 두 마녀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모두가 무서워 한 초록마녀 엘파바, 그리고 반대로 모두에게 사랑받은 금발마녀 글린다의 실제 모습은 어땠는지,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지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기존에 앞서 엘파바로 분했던 박혜나와, 글린다로 분했던 정선아는 이번에도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맛집에서 '원조'집이 있듯, 이들은 이번에도 왜 원조가 존재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열연을 펼친다.
박혜나가 ‘위키드’에 처음 입성했을 당시엔 ‘파격 캐스팅’이라는 문구가 따라 붙었다. 같이 초록마녀 역할을 맡았던 옥주현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박혜나는 상대적으로 큰 공연에서 많이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지금은 초록마녀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박혜나라고 할 정도로, 엘파바로서 역할 구축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위엄은 이번 공연에서도 여전하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가창력과 카리스마가 녹슬지 않았다. 이전 공연과도 비교해 더욱 능숙해진 모습이 느껴진다. 본인 자체도 이젠 엘파바라는 캐릭터가 몸에 녹아들은, 자연스러운 모양새다. 1막 마지막 장면이자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중력을 벗어나’는 더욱 거침없어졌다. 그야말로 공연장을 뚫고 날아가겠다는 기세를 보여준다.
정선아는 ‘금발마녀=정선아’ 공식을 만든 장본인이다. 글린다는 매우 사랑스럽지만 허영심이 많은 캐릭터다.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그저 그런 밉상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정선아는 푼수끼 있는 글린다의 모습부터,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글린다의 심정, 엘파바의 뛰어난 능력에 느끼는 상대적 열등감까지 글린다의 다양한 내면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해 표현한다. 마냥 철없던 모습에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런 질투와 허영심, 그 가운데 심리적인 변화를 겪는 정선아의 모습은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아이다’의 암네리스 캐릭터에서도 살짝 엿본 바 있다. 정선아는 특유의 설득력을 더하는 연기로 이번 공연에서도 왜 ‘금발마녀=정선아’ 공식이 생겼는지 입증한다. 대표곡 ‘파퓰러’에서는 여전히 매력이 터진다. 얄미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있다.
‘위키드’는 해외팀의 내한 공연부터 시작해 한국 라이선스화 공연, 그리고 올해 공연까지 이제 한국에서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과 같이 관객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공연으로 자리를 구축해 나가는 시점이다. 이 가운데 재연 공연이라는 점에서 식상해질 수도 있는 점을 각양각색의 매력을 지닌 배우들이 돌파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공연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무대 구성 역시 서울에서도 화려하게 펼쳐진다. 예술의전당 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30인조 오케스트라, 단 한 번의 암전 없는 54번의 무대 전환 등 거대한 무대 매커니즘, 40억 원 가치의 화려한 의상을 한데 아울렀다.
캐스팅 발표 당시에는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가 있었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집합소여서 오히려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감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 그런데 이번 ‘위키드’의 캐스트 신구(新舊) 조화는 이번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부담감과 우려를 딛고 먹을 것을 잔뜩 차려 놓았다. 걸크러시가 제대로인 마녀 4인방은 올 여름에도 객석을 뜨겁게 달구는 데 성공했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에서 8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