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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젊은 건축가상 - 신민재+안기현] “편해 늘어지기보다 불편해 정신바짝 집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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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5호 안창현 기자⁄ 2016.08.08 15:01:22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별난 컨테이너 전망대 오션스코프(Ocean Scope). 사진 = AnLstudio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이제는 지역 명물이 된 전망대가 있다. 물류 도시의 상징이랄 수 있는 컨테이너를 이용한 전망대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를 지녔다. 흔히 가로로 반듯하게 놓이는 컨테이너가 서로 다른 각도로 비스듬히 세워진 탓이다. 컨테이너의 사각 프레임에서 서로 다른 바다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이 오션스코프(Ocean Scope)를 설계한 건축가 그룹이 AnLstudio다. ‘2016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신민재, 안기현 건축가가 이민수 디자이너와 함께 이 그룹을 주도하고 있다.

2009년에 완공한 오션스코프는 그해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레드닷 어워드(Red Dot Award)에서 건축 부문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the Best) 상을 수상했다. 국제적으로 유망한 디자인 시상식에서 건축 부문 국내 최초 수상으로, 이미 AnLstudio는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건축과 디자인, 미술의 경계를 오가며 주목할 만한 평가를 받고 있는 AnLstudio의 두 건축가를 만났다.

“물리적인 공간을 창의적으로 조직하는 건축가로서뿐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건축의 사용자, 건축 생산에 관련한 이해당사자들 모두에게 열린 플랫폼을 제공하고, 그 과정의 중재자이자 지휘자로서 건축가를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AnLstudio의 안기현(왼쪽), 신민재 건축가. 사진 = 안창현 기자

올해 젊은 건축가상 심사위원들은 신민재, 안기현 건축가의 작업을 이렇게 평했다. 이들이 함께 활동하는 AnLstudio는 그간 전통적인 건축의 영역에서 벗어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꾸준히 그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AnLstudio 신민재+안기현
“쥬얼리 디자인에서 도시설계까지”

AnLstudio는 “도시 설계, 건축, 인테리어 같은 공간 디자인부터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설치 작업까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공간에 구현하고, 공간 내부의 단순한 프로그래밍이 아닌 다른 관점의 새로운 프로그램과 스토리텔링을 실험하는 스튜디오”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작게는 쥬얼리(jewelry) 디자인부터 크게는 도시 설계까지 자신들의 영역을 한정짓지 않고 끊임없이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건축가 그룹이 일반적인 건축사무소를 대신해 스튜디오란 이름을 내세운 이유다. 2008년 안기현와 이민수가 팀을 꾸려 활동하다 2011년 지금의 신민재 소장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신 소장은 “특별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스튜디오에서 건축적인 작업만이 아니라 인테리어, 전시 기획이나 설치와 같은 아트워크(artwork) 등 건축의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선 작업들도 많았다. 협업의 형태로 작업을 하다 보니 재밌는 작업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의 고민이 아니라 두세 명이 모여 집단의 생각을 모으기 때문에 ‘의외성의 아이디어’가 우리 작업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선 형태와 독특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 분당의 팝하우스(Pop House). 사진 = 진효숙

특히 건축이나 공간 디자인, 설치 등 다양한 영역이 세분화되기도 하고 서로 융합하기도 하는 최근의 경향에 비춰, 이들은 젊은 건축가로서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이를 새롭게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AnLstudio가 말하는 의외성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AnLstudio를 처음 알린 오션스코프부터 그랬다. 전망대를 이루는 컨테이너가 누워 있지 않고 비스듬히 세워진 형태를 하면서 각각의 컨테이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저마다 달랐다. 10도로 기울어진 컨테이너에서는 인천 앞바다가, 30도로 세워진 컨테이너에선 하늘과 바다가 함께, 또 50도 컨테이너에선 탁 트인 하늘을 보는 식이다.

‘리포지셔닝’이란 키워드

‘젊은 건축가상’은 두 건축가에게 그 동안 AnLstudio라는 팀으로 진행했던 작업들을 정리해보는 기회가 됐다. 안기현 건축가는 “우리가 그간 다양한 프로젝트에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접근했을까, 이 작업들을 모으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다른 건축가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역시 기존 방식을 답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익숙한 환경에서 새로운 관점을 찾고 새로운 풍경을 연출하려고 했다”고 언급했다.

▲두 개 층의 창문이 서로 타원형으로 이어진 11층 건물 ‘다공’. 사진 = 윤준환

그래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은 이들의 작업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기존의 건축을 다시 살펴 재구성하고, 새로 지었다. 때론 도심 속 유휴공간을 재점유하고, 재생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과 방식에서 건축과 공간이 새롭게 구성되길 바랐다.

“re-build, re-organize, re-occupy, re-generate, re-public, re-program 등 우리 작업에서 re라는 접두어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했다. 프로젝트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다른 시각을 찾는 작업이 중요했던 것 같다.” 

오션스코프도 그랬지만, 이들의 설치 작업인 디졸브(Dissolve)나 솔리딕(Solidic), 몽당(夢堂) 주택 프로젝트, 팝하우스(Pop House) 등에서도 그런 노력이 엿보였다.

▲서울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협소주택 몽당(夢堂). 몽당연필처럼 작으면서도 꿈꾸는 집의 의미를 담았다. 사진 = AnLstudio

오션스코프가 주목 받으면서 컨테이너를 활용한 다른 프로젝트 의뢰가 AnLstudio에 많이 들어왔지만, 이를 거절한 이유도 새로운 관점에서 작업을 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 때문이었다. “컨테이너에 국한된 작업을 이어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작업을 답습하거나 단순히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혼자였다면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팀으로 협력을 하면서 새롭게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고 안 건축가는 말했다.

또 미술, 디자인 등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작업한 이유도 비교적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건축의 경우 수용해야 할 현실적 제약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전시 같은 경우는 가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험할 여지가 많다. 미술 작가들처럼 구체적인 오브젝트를 만들기보단 건축가로서 새롭게 공간에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선보인 디졸브는 AnLstudio의 건축과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알 수 있게 하는 설치 작품이다. 수만 개의 알약 캡슐로 지어진 이 설치물은 전시 동안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게 특징이다. 캡슐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형태가 조금씩 소멸하기 때문이다.

신 소장은 “알약은 몸속에서 조금씩 용해돼 녹는 물질이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처음 건축가가 건물을 지어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형태나 용도가 조금씩 변한다. 스스로 생성되기도 소멸하기도 하는 건축을 알약 캡슐을 통해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선보인 디졸브(Dissolve)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져 내리는 게 특징이다. 사진 = AnLstudio

디졸브가 서서히 녹으면서 형태가 무너지는 설치물이라면, 솔리딕은 제목처럼 순간의 이미지를 단단하게 응축시키는 작업이다. 건축물의 보일러 난방 배관과 공사용 가림막을 이용해 설치한 이 조형물에서 이들은 건축에서 비구축적인 재료를 통해 기존 경험과는 다른 파빌리온을 제공했다.

건축에 새로운 개성 부여하기

본격적인 건축 설계에서도 AnLstudio의 개성은 잘 드러난다. 몽당 주택은 2012년 국내에서 땅콩집이나 협소주택 열풍이 불기 전 서울 종로구 서촌 지역의 10평 남짓한 부지에 세워진 주택 프로젝트였다. 안 건축가는 “일본에는 이와 유사한 집들이 많지만, 국내에선 아직 협소주택이 많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축물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아닌 ‘어떻게 비울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택의 공간 배치를 새롭게 고민하면서 3층짜리 15평 단독주택을 지었다. 공간적인 제약으로 수직적인 형태가 우선 고려됐다. 1층은 거실과 주방, 2층은 침실, 3층은 욕실과 서재를 꾸렸다.

주택 외관은 대지를 둘러싼 주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설계했다. 몽당이란 이름이 몽당연필처럼 작은 것을 연상시키지만, 몽당(夢堂, 꿈꾸는 집)이라는 의미도 담았다. 작고 기능적인 새 주거 공간을 선보이려는 시도다.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팝하우스 역시 특색이 뚜렷한 집이다. 판교 주택 지구엔 단독주택들이 즐비하지만, 건축 가이드라인 때문에 엇비슷한 집들이 늘어선 곳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팝하우스는 지하에 주차 공간을 마련하고 외형을 경사진 사선 구조로 설계해 독특한 형태가 됐다.

▲보일러 난방 배관과 공사용 가림막을 활용한 파빌리온 솔리딕(Solidic). 사진 = AnLstudio

물론 건축주의 요구사항이 반영됐다. 특이하게 건축주 부부는 ‘불편한 집’을 원했다. 편한 집에서 늘어지게 생활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하면서 생활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사선 구조의 공간 배치나 입식 위주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배려한 점들은 이런 건축주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내부 공간은 반득하게 구획된 공간이 아니다. 명확히 분리되지 않으면서 서로 조금씩 얽히고설킨 구조를 가졌다. 물론 두 가구가 함께 사는 공간이기에 출입구가 분리되고 동선도 서로 겹치지 않지만, 전체적인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주인 가구와 임대 가구가 공간을 공유하진 않지만, 팝하우스 전체로 볼 때는 밀도 있는 공간 활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두 건축가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새로운 형태와 구조로 고민하며 건축의 풍경을 다양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천편일률적인 임대건물과 다르게 2개 층을 서로 연결하는 창문을 활용해 흥미로운 형태를 보여준 ‘다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 소장은 “다공은 외관뿐 아니라 내부도 층마다 서로 다른 구조를 가졌다. 그래서 임대 계약을 하러 온 사람들이 다공 건물의 층층을 다 둘러보고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찾기도 했다. 실내의 공간 배치나 분위기를 다르게 가져갔기 때문에 공간이 저마다 개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독특한 외형뿐 아니라 실내 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의 쓰임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이 건축가 팀이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며 건축의 영역을 어떤 방향으로 확장시키고 새롭게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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