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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내가 먼저 맞았는데, 쌍방폭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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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7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2016.08.22 09:24:35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최근에 금연 구역에서 아이의 어머니가 “담배를 꺼 달라”고 말했다가 시비가 붙어 뺨을 맞은 뒤 ‘쌍방폭행’으로 입건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A씨는 딸을 유모차에 태운 채, 서울 은평구의 지하철 역 앞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었습니다. A씨는 지하철 역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B씨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B씨는 뒤를 따라와 횡단보도를 건너던 A씨의 뺨을 때렸고, A씨는 이에 대응해서 팔을 휘두르고서 B씨를 밀쳤습니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일단 A씨와 B씨를 쌍방폭행으로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은 피해자인데 피의자로 조사했다면서,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 사건은 텔레비전에 보도가 되었는데요, 네티즌들은 엄마가 먼저 폭행을 당한 후,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밀쳤는데 어떻게 정당방위가 안 되고 쌍방폭행이 될 수 있느냐면서 경찰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폭행 전과자 안 되기 위한 3계명, 억울하더라도 지켜야 

제 페이스북 친구인 강 모 변호사님께서는 쌍방폭행과 정당방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① 폭행이 벌어질 것 같으면 무조건 튀어라. 특히 친구 등 일행이 있는 경우는 함께 때리지 않았어도 어설프게 들러리 서다간 공동상해 내지 공동폭행이 되어 가중처벌 되므로 친구가 시비가 붙으면 의리고 뭐고 일단 도망가서 현장에 없어야 한다 ② 여의치 않으면 열중 쉬어 자세로 상대 분이 풀릴 때까지 맞아라 ③ 이 외에 다른 행동을 하면 99% 폭력 전과자가 된다. 

처음에 이 논평을 보고 많이 웃었지만,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당방위가 사실상 인정되지 않습니다. 100대를 얻어맞다가, 손을 휘둘러 한 대를 때려도 대부분 쌍방폭행으로 입건됩니다. 우리 형법 제21조 제1항에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수십 년간 굳어져 온 우리나라의 경찰 수사 관행, 재판 관행과 대법원의 태도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당방위가 ‘사실상’ 인정되지 않아 쌍방폭행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경찰청 전경. 사진 = 연합뉴스

2015년에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경찰청에서 정당방위로 인정하는 8가지 기준을 발표했습니다. ① 침해행위에 대해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② 침해행위를 도발하지 않았을 것 ③ 먼저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④ 폭력행위의 정도가 침해행위의 수준보다 중하지 않을 것 ⑤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⑥ 침해행위가 저지, 종료된 후에는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⑦ 상대방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⑧ 치료에 3주 이상을 요하는 상해를 입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호사들 중에 저 정당방위의 기준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정당방위는 그만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저는 검찰청에서 형사조정위원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형사조정은 경미한 형사사건을 대상으로 서로 화해를 하고 피해를 조정해서, 사건을 원만히 해결하는 절차입니다. 경미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단순 폭행사건이나 경미한 상해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변호사들보다 쌍방 폭행 사건도 다루어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사실상 정당방위 인정되지 않는 한국 법체계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사실상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건이 쌍방폭행으로 처리됩니다. 다행히 상해가 없는 단순 폭행은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입니다. 합의가 되면, 별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합의만 되면 전과가 남지 않기 때문에, 형사조정위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 화해를 시키려고 합니다. 

▲50대 남성에게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던 아기 엄마가 남자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이에 대응했을 뿐인데, 쌍방폭행으로 입건된 사실이 인터넷에 공개돼 큰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은 방송 보도 화면들.

그런데 이런 경우 먼저 맞은 당사자는 쌍방폭행의 사실에 대해 수긍을 하지 못합니다. 달래고 설득해도,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라는 점을 전혀 납득하지 못합니다.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것에 대해, 자신이 더 많이 맞았는데 같이 처벌받는 것에 대해 화를 냅니다. 이런 당사자를 억지로 조정을 해도, 결국은 사법 불신을 가지고 검찰청을 나섭니다. 

이런 작은 범죄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법적용을 믿지 못하는 풍조가 발생합니다. 저는 비록 이렇게 글을 쓰지만 싸움을 무조건 쌍방폭행으로 입건하고 처벌하는 법적용의 관행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싸움이 일어난 상황에서 폭행전과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도망가거나, 뒷짐을 지고 맞는 것 밖에 없다는 말은 씁쓸하지만, 진실입니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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