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커버작가-리장뽈] 바쁜 오후 보낸 조각가에 스며든 산골의 법칙

  •  

cnbnews 제500-501호 김연수⁄ 2016.09.12 09:32:50

▲리장뽈, 'Eléphant(코끼리)'. 나무, 먹, 바니쉬, 1300 x 600 x 1400mm. 2016.


(경기도 가평 설악면 = 김연수 CNB저널 기자) 조각가 리장뽈을 만난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독했던 올해의 더위가 떨어질 듯 진득하게도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던 오후였다. 산골의 어느 산 한 자락 끝에 잡은 작업실에서 더위와 한바탕 싸우기라도 한 양 땀에 흠뻑 젖어 나타난 그는 시원한 맥주을 권했다.

1층에 작업 전시장이 있는 2층짜리 꽤 넓은 평수의 건물과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복층으로 된 단층집, 그리고 작업실로 쓰고 있는 또 다른 단층 공간은 모두 그가 첫 삽질부터 혼자 지은 것이다. 작업을 하다가도 여유시간마다 틈틈이 집을 쌓아올리고 증-개축을 한다. 아직 공사가 채 끝나지 않은 그의 정원엔 여기저기 수풀 사이 목자재와 돌판 등이 쌓여 있다. 조각가의 재료인지 건축의 재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모여 있는 그것들은 느긋한 집주인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리장뽈, 'Birch 32413La(자작나무 32413La)'. 나무, 혼합재료, 각각 800 x 800 x 60mm, 4조각 가변설치. 2013.


사실은 가장 단순한 자연

작가는 최근 들어 나무를 주재료로 작업한다. 깎고 다듬는 과정에서 더 진하게 퍼지는 나무향이 그의 공간을 채우고 숲에 그 향기를 더한다. 장뽈은 작업 과정에서 재료나 방법에 구애를 두지 않는 편이다. 철조도 하고 입체작업 하는 사람이 많이 쓰는 합성수지도 쓰고, 사진 작업도 했었단다. 그런 그가 나무 작업을 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그저 “나무가 많은 숲 속에 살아서인 것 같다”고 전한다.

나무를 깎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무를 깎는 전기톱은 때로 돌을 깎는 그라인더 날보다 거칠고 매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조각 재료로서의 나무는 그 어느 것보다 친근하고 따뜻한 촉감을 가지고 있다. 목조를 하는 사람들은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지루한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질긴 물성을 이겨낼 정도로 나무의 매력에 빠져 있는 듯하다.

사실 리장뽈의 전작들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진 않는다. 같은 나무를 사용했더라도, ‘자로 잰 듯한’이 아니라, 실제로 자로 잰 직선적이고 반복적인 형태와 그것들을 끼워 맞출 수 있는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결과물들이었다. 작가는 그 형태들로 음과 양, 그리고 결합과 그로부터의 확산 등 우주의 생성원리를 탐구하곤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전의 작업들 앞에선 수학 문제를 풀거나 암호 해독을 하는 것 같이 감상하는 관객도 꽤 있었다고 한다.

▲리장뽈, 'Planet 1200'. 나무, 혼합매체, 1200 x 1200 mm. 2014.

반면, 그가 최근 들어 만들어내는 형태들에게선 직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산도 없어 보이고, 완벽함을 향하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미사일이나 잠수함 같기도 한 묵직하고 둥글둥글한 덩어리들에게 조각가는 악어나 코끼리 같은 동물의 이름을 붙여줬다.

“예전엔 직선적인 것이 좋았는데, 요즘엔 둥글둥글한 것이 오히려 미니멀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예전에는 정의하고 정리하려 했는데, 자연에 들어와 살면서 변한 것 같다고 전한다. 그가 말하는 ‘둥글둥글한’이라는 표현은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것을 의미한다. 자연은 생략하지 않으며 직선적인 것도 없다. 그러면 작가가 하려던 이야기 역시 변할 걸까?

▲리장뽈, 'Planet 300(행성 300)'. 나무, 혼합매체, 320 x 320 x 200mm. 2015.


▲리장뽈 작가의 'Planet(행성)' 연작.(사진=리장뽈)


자연 에너지 담은 새 생명의 형상

얇은 정질로 표면의 질감을 정돈해 커다란 유선을 그려내는 작품의 형태는 결코 남성적인 것이라 할 수 없고, 그 따뜻한 질감에 다시 전복되지 않기 위해 표면을 덮은 검은 색 역시 남성적인 무게감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우주 원리에 관한 탐구는 전과 다를 바 없다. 다만 그의 표현에 의하면 “머리를 놓고 자연에 마음을 맡긴 상태”다. 같은 아이디어지만 작가가 매개자로서 환경을 다르게 의식할 때 전혀 다른 시각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리장뽈은 작업 진행 과정 중 그 형상으로부터 잠수함이나 우주선을 떠올리며 그냥 타고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악어, 코끼리, 돌고래 같은 동물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작가가 만들어 낸 형상들은 그가 손으로 전달하는 힘과 함께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담은 또 다른 우주를 형성한다.

작가는 숲 속에서 태어난 그 형상들을 선보이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9월 17~25일 서촌의 팔레드서울에서 선보이는 전시의 제목은 그들의 우주인 ‘정글’이다.

한여름이라도 산속의 해는 빨리 졌다. 부드러운 빛이 작업실 지붕을 감싸고, 머리 위 넝쿨에서 잘 익은 다래가 눈앞으로 툭 떨어졌다. 격렬하고 날카로웠던 오후 태양의 빛 같은 격렬한 시기를 보낸, 하지만 아직 열기는 식지 않은 중년 조각가의 전시를 앞둔 풍경이었다.

▲리장뽈, 'Crocodile 2.4(악어 2.4)' 나무, 먹, 바니쉬, 2400 x 110 x 270 mm. 2016.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