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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킹키부츠'가 말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여장 남자들이 춤추는 화려한 무대에 편견 어린 시선 거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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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기자⁄ 2016.09.26 11:47:42

▲뮤지컬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에 처한 공장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던 찰리가 우연히 드랙퀸(남성이 여성처럼 차려입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것) 롤라를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사진=CJ E&M)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하던 뮤지컬 ‘킹키부츠’ 무대에 이 한 마디가 울려 퍼지는 순간 살짝 정적이 흘렀다. 무대 위이 말을 들은 극 속의 돈은 “정말 이게 다야?”라고 되물었고, 극 속의 롤라는 답했다. “쉬운 것 같지? 이게 가장 어려운 거야.”


뮤지컬 ‘킹키부츠’가 2년 만에 국내 무대에 돌아왔다. ‘킹키부츠’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뜻하지 않게 구두 공장을 물려받는 찰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폐업 위기에 처한 공장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던 찰리는 우연히 드랙퀸(남성이 여성처럼 차려입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것) 롤라를 만나 여장남자들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킹키부츠가 틈새시장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롤라와 함께 킹키부츠를 만들어 밀라노 패션쇼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킹키부츠’의 특징은 화려한 무대다. ‘드랙퀸들의 드랙퀸’이라 할 수 있는 롤라가 등장하는 순간 무대에 생기가 돈다. 높은 굽의 부츠에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무대를 누빈다. 이런 롤라가 못마땅한 공장 직원 돈도 롤라의 당당함 앞에서는 기가 죽는다. 그리고 이 화려함은 롤라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등장한 순간 극대화가 된다. 부츠의 높은 굽을 찬양하는 ‘섹스 이즈 인 더 힐’은 절로 박수를 치게 만든다.


▲정성화는 드랙퀸 롤라로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구두를 신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롤라의 삶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사진=CJ E&M)

하지만 단지 화려함뿐이었다면 이 공연은 그저 그런 쇼뮤지컬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이 공연은 정해진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눈살을 찌푸리고 “넌 정상이 아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꼬집는다.


늘 자신감 있는 롤라가 위축될 때가 있다. 짙은 화장을 지우고 높은 부츠에서 내려와 세상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평범하다고, 정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바로 이 모습이 롤라에게는 진짜 자신을 감춘, 치장을 한 거짓된 모습이다. 그래서 화장실로 뛰어가 숨어버린다.


실상 롤라는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었다. 복싱 선수였던 아버지에게서 복싱을 배웠고, 대회에서 우승도 했을 만큼 재능이 있었다. 그런데 롤라는 손에 권투 글러브를 끼는 대신 매니큐어를 칠하고 싶었고, 굽 낮은 운동화 대신 높은 구두를 신고, 글러브를 휘두르기보다는 온몸으로 춤을 추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다.


▲김호영은 찰리 역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평소의 화려한 이미지를 벗고, 구두 공장을 운영하는 찰리로 분한다.(사진=CJ E&M)

이 마음을 담아 노래 ‘못난 아들’을 애틋하게 부른다. 아버지가 원하는 아들이 되지 못해 죄송한 아들의 마음. 이런 롤라의 마음을 세상은 비웃는다. 찰리를 돕기 위해 찾아온 공장에서 만난 돈은 “남자다운 남자는 바로 나”라며 롤라를 비웃는다. 그런데 남자다운 남자란 과연 누가 정의해준 것일까?


평범해 보이는 찰리 또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약혼자 니콜라와 지겨운 시골에서의 삶을 벗어나 런던에서 새 출발을 하려 했지만, 공장의 경영주를 맡게 된 뒤 자신의 손에 달린 공장 사람들의 삶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템 발굴을 위해 롤라를 만나고, 드랙퀸 부츠에 열을 올리지만 그 모습을 본 니콜라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며 정상이 아니라 한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
존재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


▲김지우는 로렌 역을 통해 본연의 모습을 찾은 것 같다. 주책없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해주기도 한다.(사진=CJ E&M)

‘킹키부츠’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과연 과장된 상황일까? 실상 이런 풍경은 우리네 삶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파란색을 좋아하고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남자 아이, 그리고  분홍색을 좋아하고 바비 인형을 갖고 노는 여자 아이의 모습 등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학습되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네가 여자야?” “네가 남자야?” 등 친구들의 야유가 쏟아지기 일쑤다. 그리고 은연 중 깊게 박힌 이 학습들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다른 모습을 발견했을 때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고 이야기를 하게 한다.


그래도 아주 보수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킹키부츠’뿐 아니라 이달 공연을 마친 연극 ‘까사 발렌티나’에서도 여장을 좋아하는 남자들, 즉 크로스드레서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런 극들은 특별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에 대해 “그저 다른 것을 좋아할 뿐인, 당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일뿐”이라고 말한다.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 수 있다. 그리고 이걸 강요할 수도 없다. 그래도 그들의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이라도 알아달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시도된다. ‘킹키부츠’ 공연장에 일순간 흘렀던 정적 또한 “나 또한 그러지 않았는가” 스스로 되돌아보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뮤지컬 '킹키부츠'는 화려한 춤과 노래와 더불어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던지며 울림을 준다.(사진=CJ E&M)

등장인물들의 이 스토리를 끌어가는 배우 정성화의 힘이 대단하다. 지난 공연에 이어 또 롤라로 무대에 섰는데, 그가 없는 ‘킹키부츠’를 상상하기 힘들 만큼 관객들이 롤라에 몰입하고 환호하게 만든다. 김호영은 찰리 역으로 엄청난 대사 양을 소화한다. 그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졌을 때 평소의 화려한 이미지 때문에 롤라 역을 상상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그런데 김호영은 오히려 찰리 역을 맡아 롤라와 소통해 가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그의 변신에도 주목해볼 만하다.


한동안 도도한 이미지로 주로 무대에 등장했던 김지우는 본연의 모습을 찾은 듯하다. 찰리의 공장에서 일하는 로렌 역을 맡았다. 주책없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무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롤라와 찰리지만, 무엇보다 로렌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로렌은 정상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한다. 여기에서 로렌은 그들을 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보여준다. 다르다고 조심하거나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을 만나듯 그들을 거리낌 없이 대한다. 반대의 경우는 심재현이 연기하는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로렌이 긍정적인 시선이었다면 돈은 처음부터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시선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겪는 변화를 통해 극은 다름을 인정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짚는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이 만나 공연의 대표곡인 ‘레이즈 유 업’과 ‘저스트 비’ ‘함께 외쳐봐’를 부를 때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 된다. 공연은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 명확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후에 비극이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만큼은 누구 하나도 소외되지 않고 흥겹게 춤을 춘다. 공연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11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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