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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프로젝트-시민 큐레이터] “너 만의 씬을 만들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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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5호 김연수⁄ 2016.10.14 18:09:36

▲김보경 큐레이터의 전시'5×5=25'의 전시 일부 모습. 5명 작가가 만들어 낸 25개 문장들이 전시장 벽에 보인다.(사진=서울시립미술관)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사실은 관객과 기획자, 작가 등 미술 생산자와의 거리를 멀게 느껴지게 하는 일차적인 원인처럼 보인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다가서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각자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듯하다. 주로 이 장애물 앞에서 관객과 생산자가 보이는 입장은 두 가지다.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든지, 포기하든지.

어느 쪽이 더 노력을 보이는지 따진다면 당연히 무언가를 제시하는 생산자 쪽이겠지만, 최근 들어선 현대 미술에 관한 이해의 노력이 일상 속에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현상을 증명하기 위한 근거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수도 증가하고 있지만, 작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시민큐레이터’에 참여한 일반인들의 숫자가 느는 것도 꽤 고무적이다. 시민이 직접 미술 전시를 만들어보는 이 프로그램에 약 400명이 지원했고, 선발된 150명 중 75%가 미술 비전공자라는 사실은 미술을 생산적 가치로 바라보는 인구가 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5×5=25'전 참여 작가 최상규의 작품 '뜨다'의 일부.(사진=서울시립미술관)


도전, 시민 큐레이터

현재 서울 곳곳의 전시공간에선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여름까지 진행한 15번의 시민큐레이터 양성프로그램을 수료한 150명의 수강생 중 전시 기획안을 합격받은 10명의 기획 전시가 열리는 중이다. 선발된 전시 계획엔 각각 700만 원이 지원됐다. 이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한희진 큐레이터는 “교육, 마케팅, 이론, 평론까지 미술 전시 기획에 기본이 되는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사진으로부터 교육과 코칭이 이뤄졌지만, 무엇보다 기획자 개인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자율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했다”고 전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술에 문외한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전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미술을 전공하고 그에 관련한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없었던 경력 단절자들에게도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지난 9월 30일~10월 9일 갤러리 드플로허에서 열린 ‘오 오 이십오: 5×5=25’전을 기획한 김보경 큐레이터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미대를 졸업하고 미술 분야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며, “이론뿐만 아니라, 실무까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밝혔다.

열 명의 시민 큐레이터는 미술뿐 아닌 다양한 분야를 배경으로 한 만큼 각기 매우 색다른 전시의 테마를 선보인다. 김보경 큐레이터는 5명의 작가가 5번의 만남을 통해 5개의 주제어가 25개의 방향을 제시하는 전시를 만들었다.

▲'5×5=25' 전시장. 김정연 작가의 작품들이 앞쪽에 보인다.(사진=서울시립미술관)


오 오 이십오: 5×5=25

정착, 허상, 기억, 관계, 예술이라는 다섯 주제어는 모두 다른 장르의 작업을 하는 작가 5명(공은지-판화, 김정연-아트토이, 신지용-회화, 조세핀-설치, 최상규-일러스트)의 머릿속을 거쳐 25개의 문장으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정착은 유토피아와 같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원하지만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나, ‘안 좋은 기억을 없애려면 몸이 아파야 한다’와 같은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은 작가의 전시 영역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벽면에 제시되는데, 관객들은 문장과 작품을 비교하며, 작품과 매치시키거나 나아가 작가의 성향을 유추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장르를 기반으로 한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는 자리라는 기본적인 전시 취지와 더불어 참여 작가들 또한 자신의 성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으리라 생각된다. 김보경 큐레이터는 “대관 같은 현실적인 과제부터 초반의 추상적인 기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코칭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관념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졌던 전시 분야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성환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Make Your Scene(메이크 유어 씬)'의 대표 이미지.(사진=서울 시립미술관)


Make Your Scene(메이크 유어 씬)

한편, 문래동에서는 박성환 큐레이터의 ‘Make Your Scene(메이크 유어 씬)’이 열린다. 감상을 위한 전시라기보다는 관객 참여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이 기획은 문래동이라는 지역성을 기반에 둔다.

문래동우체국 옆의 예술 공간 ‘상상채굴단’에서 진행되며, 10월 14~23일 참가자들이 스스로 영화를 제작한다. 참여자들이 제작 공간에 들어서기까지 정해진 이야기도, 역할도 없다. 참여자들이 모인 순간부터 그들 스스로 스토리, 연출, 소품 제작에 관한 방향 등을 의논해 빠르게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미학을 공부하고 실험적인 음악 작업을 주로 하는 박성환 큐레이터는 미셸 공드리가 감독하고 잭 블랙이 주연한코믹 영화 ‘Be Kind Rewind(비 카인드 리와인드)’가 이 프로젝트의 힌트가 됐다고 밝힌다. 산업화 시기가 끝나고 무료하기 그지없던 마을에서 주인공 제리(잭 블랙)은 한 순간의 사고로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비디오 가게의 테이프를 모두 지워버린다. 가게 주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주인공과 친구는 날림으로 영화를 찍어 대여를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유명세를 타게 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배꼽을 잡게 한다. 

박성환 큐레이터는 이 영화에서 문래동의 모습을 떠올린 듯하다. 그는 “예술가들이 스며들던 시기의 문래동의 모습을 회상하며, 공인들과 예술가들이 공존하던 매력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각기 분열된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영화 제작에 참여하던 영화의 모습처럼 주민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과 4~50대 성인들의 시선은 기존 2~30대 예술가들이 제시하는 안정적인 결과가 아닌 전혀 다른 결과의 작품을 만들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예술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온화한 방법인 것 같다”며, “이 전시는 슈퍼스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전시장이라는 환경에서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다른 사람의 감성을 들여다본다거나, 비평 등의 자기 철학을 갖는 일 역시 이런 기회 혹은 여유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제작 과정이 끝난 23일 인문예술 공유지 문래당에서 상영회가 마련돼 있으며, 제작 참여 등의 자세한 사항은 페이스북 페이지 ‘Make Your Scen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박성환 큐레이터가 기획에 영감을 받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Be Kind Rewind(비 카인드 리와인드)'의 한 장면.(사진= 싸이더스 F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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