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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아르헨티나] 국토 78%가 미탐사 나라에서 버스 기내식 잡숴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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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0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11.21 09:31:54

(CNB저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3일차 (부에노스아이레스)

여전히 신대륙

땅이 워낙 넓은 아르헨티나는 항공기나 철도가 구석구석 커버할 수 없으니 버스가 중요한 장거리 교통수단이다. 기사 두 명이 교대로 운전하며 광활한 대지를 쉬지 않고 달리는 버스에서 아침을 맞는다.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도 나온다.

넓고 넓은 이 땅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도시는 간혹 나타나지만 도로는 아직 미완성 구간도 군데군데 있고 휴대폰은 신호가 끊긴 지 오래다. 남한 면적의 27배 국토, 인구 4100만, 그것도 1/3 이상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몰려 있다. 이 나라는 아직 신대륙이다. 대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토의 78%가 미탐사 지역이라니 개발할 일만 남은 기회의 땅이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터져 나올지 모른다.

1차 산업 국가 아르헨티나

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나라도 농업, 축산업, 목축과 그 가공 산업, 그리고 천연자원으로 먹고 사는 1차 산업 국가다. 외국 자본 유입 등에 힘입어 공업화를 시도한 적도 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공업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지정학적 조건, 근면 성실한 국민, 높은 교육열과 성공에 대한 열망이 맞아 떨어진 한국은 그래서 오늘의 성취를 이룬 참 대단한 나라다. 밤새껏 버스 창밖으로 팜파 초원이 이어졌다. 그런 초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공업화만이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현명한 선택을 한 선대(先代)의 선각자들께 감사드린다.

지금 오전 9시 반, 이구아수를 떠난 지 14시간 지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 250km 이정표가 보인다. 드넓은 초원을 보니 1970년대 농업 이민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딘 한국 이민자들의 애환이 그려진다. 고국에서는 해본 적이 없는 농업이라 실패하고 도시로 흘러들어 갔지만 다른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이 나라 발전에 이바지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레티로(Retiro) 버스 터미널 옆에는 중앙역, 그리고 바로 옆에는 메트로가 있다. 이 지역은 오래전 서울역, 영등포역, 혹은 청량리역을 방불케 한다. 사진 = 김현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골목 과일 가게. 사진 = 김현주

어디 한국계뿐이랴? 주로 오키나와 출신인 일본계 이민자들은 화훼 산업으로 출발해 이 나라의 중심으로 진출했다. 유럽 이민은 스페인계와 이태리계가 주축이지만 동서남북 유럽, 러시아까지 그야말로 유럽 전역에서 이 나라로 들어왔다. 근래에는 볼리비아, 페루, 파라과이 등 더 가난한 나라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와 이 나라의 하층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레바논, 시리아, 아르메니아계도 많다고 한다. 유대인도 25만 명으로 남미에서 가장 큰 규모다. 고속도로 변에 ‘여기도 그리스 땅’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농장 주인이 그리스 출신인 것이다.

포식의 시대를 열어준 아르헨티나 초원

버스 운행 중 가끔 검문도 있으나 현저히 여행자로 보이는 나하고는 상관없다. 대평원에 고속도로 두 줄, 그러나 도로를 오가는 차량 중에는 이젠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낡디 낡은 차들이 적지 않다. 이 나라 경제 현실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3000 USD로서 칠레보다 낮다. 초원에는 소들만 있으니 아르헨티나 소가 세계 최고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소와 1877년 냉동선 등장으로 아르헨티나 초원은 유럽인들에게 포식의 시대를 열어 주었고 아르헨티나는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이다.

▲알록달록 색채감이 돋보이는 카미니토 탱고 거리가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카미니토 탱고 거리에서는 음식점마다 남녀 무희들이 탱고를 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정열적이다. 사진 = 김현주

한국의 존재 잘 모르는 아르헨티나

검붉은 라플라타 강(Rio de la Plata)을 건너니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한 시간 남는다. 이제야 휴대폰 로밍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레티로(Retiro) 버스 터미널이다. 딱 18시간 걸렸다. 아르헨티나의 푸른 초원을 눈에 가득 담은 멋진 버스 여행이었다. 버스 터미널 옆에는 중앙역, 그리고 바로 옆에는 메트로(여기서는 수브테, Subte라고 부른다)가 있다. 이 지역은 오래전 서울역, 영등포역, 혹은 청량리역을 방불케 한다. 인파와 노점상, 호객하는 택시와 버스가 뒤섞여 혼잡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536년 최초 건설됐다가 1580년 제대로 된 모습으로 다시 건설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멋있는 항구 사람’이라는 뜻으로 ‘포르테뇨(Porteno)’라고 스스로 부른다고 한다. 터미널에서 수브테 C와 수브테 A를 번갈아 타고 호텔로 향한다. 수브테역 승강장 타일 벽화가 예술이다. 수브테 A선은 1913년 개통한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이고 나무로 만든 차량이 아직도 다닌다.

▲부두 노동자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 라보카. 꼭 이탈리아 나폴리나 시칠리아 뒷골목 어디쯤 되는 것 같다. 사진 = 김현주

▲라보카 지역은 1536년 스페인 지휘관 멘도사(Don Pedro Mendoza)의 도착으로 시작된 후 항구라는 입지적 여건 때문에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형성됐다. 사진 = 김현주

라보카와 카미니토 탱고 거리

수브테 역에서 예약해 놓은 호텔로 걸어가는 길 양쪽 가게에는 과일이 가득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2박 3일에 대비해서 과일을 한아름 샀다. 오늘 날씨는 32도. 오래된 낡은 버스가 매연을 뿜어대고 고색창연한 건물이 호텔 아니면 아파트이고 그 1층은 맥도날드 아니면 슈퍼마켓이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 탐험에 나선다. 오늘은 상대적으로 먼 지역인 라보카(La Boca)만 갔다 와도 성공이다. 버스를 타고 마요 광장(Plaza de Mayo)을 지나 항구 지역에 가니 그곳이 바로 그 유명한 라보카다. 오래된 항구도시 근처에는 수백 년 돼 보이는 창고가 늘어서 있고 대형 트럭들이 분주히 오간다.

보카 지역은 1536년 스페인 지휘관 멘도사(Don Pedro Mendoza)의 도착으로 시작된 후 항구라는 입지적 여건 때문에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형성됐다. 홍수가 잦아 집을 높여서 지은 것이 특이하다. 집들이 컬러풀한 것은 가난한 주민들이 조선소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로 집을 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두 노동자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 라보카. 꼭 이탈리아 나폴리나 시칠리아 뒷골목 어디쯤 되는 것 같다. 보카(Boca) 지역 거리 이름은 브란센(Brandsen) 같은 네덜란드 이름, 브라운(Brown) 같은 영국 이름 등 이 지역에 몰려든 유럽 이민자들만큼 다양하다. 시내에서도 그랬지만 이 지역의 크고 작은 가게(특히 청과, 야채 가게)들은 대부분 중국 이민자들이 주인이라서 놀랐다.

▲보카주니어 축구 스타디움. 축구팬들은 여기 오면 가슴이 뛸 것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사진 = 김현주

보카주니어 축구클럽

라보카 지역의 관광 중심 카미니토(Caminito)는 탱고의 거리다. 아니나 다를까. 음식점마다 남녀 무희들이 탱고를 선보인다. 춤과 복장은 열정적이고 멋지지만 스텝이 대단히 복잡하고 오묘하다. 알록달록하게 칠한 집과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 보카주니어(CABJ: Club Atlantico Boca Juniors) 스타디움까지 걸어간다.

노랗고 파랗게 칠한 경기장 전면에는 바티스투타(Batistuta), 소사(Sosa) 같은 낯익은 축구 스타들의 브론즈 얼굴상이 걸려 있고, 경기장 주입구 바닥에는 구단 창립(1905년) 100주년을 기념해 보카 팀을 빛낸 스타들의 이름이 별 모양 바닥 패널에 새겨져 있다. 물론 마라도나(Diego Maradona) 이름도 있다. 축구 팬들은 여기 오면 가슴이 뛸 것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라보카, 아니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사람들이 참으로 정겹다. 길을 물어도, 귀찮은 부탁을 해도 이방인을 웃음과 친절로 대해 준다. 삶이 녹록지 않아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거리에는 아파트가 즐비하다. 시민의 2/3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통계가 딱 맞다. 다만 도시의 멋진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아무 곳에나 무질서하게 들어선 것이 흉물스러워 크게 아쉽다.

호텔 바로 앞은 작은 공원에서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식사와 대화가 밤늦도록 넘친다. 아이들은 먼지 나는 땅에서 축구에 열중이다. 마라도나와 메시 같은 대스타들도 어린 시절 바로 이런 곳에서 축구를 하며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뒷골목의 여름 저녁 모습은 이렇게 펼쳐지고 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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