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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맞춰 독서⑤] 노무현과 이재명이 다른 7가지…결정적 갈림길은 돈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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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최영태⁄ 2016.12.08 16:22:42

▲최영태 편집국장

정치에 무관심했던 한 여성이 최근 필자에게 한 질문입니다. “노무현과 이재명은 도대체 뭐가 다른 거야?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이랬습니다. 

1. 두 사람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용이 되는 문(등용문)을 통과해 사회 상층부로 올라간 사람들이다. 

2. 인권-노동 변호사(노무현), 시민운동 변호사로서 약자를 위해 활동하다가 정치권으로 들어간 경로도 비슷하다. 

3. 그러나 ‘돈’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 노무현은 비록 한때지만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버는 것을 즐겼고, 이렇게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명은 그가 쓴 책을 토대로 볼 때 ‘굳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 사람 같다. 

4. 돈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결국 돈을 쥔 권력(사회 상층부, 이른바 지도층)에 대한 자세가 다름을 의미한다. 노무현은 한국 사회의 돈과 권력을 모두 쥔 사회상층부에 끼어들어가고자 했으나 거부당한 성격이 강하며, 반대로 이재명은 사회상층부에 끼어들어가고자 하는 태도가 없으며, 자신의 출발선이자 자기 가족의 현재인 ‘노동자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거기서 벗어날 생각 역시 별로 없는 것 같다. 

5. 이렇게 두 사람이 돈-권력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인생관-세계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 때문이다. 노무현 당시(20세기 말)에는 “누구나 노력하면 이건희처럼 될 수 있다”가 상식이었지만 이재명이 사는 시대(21세기 초)는 양극화 심화로 “금수저와 흙수저는 처음부터 다르고 끝까지 다르다”가 상식이 됐기 때문이다. 

6. 두 사람이 또한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언론에 대한 태도에서다. 노무현은 이른바 메이저언론으로부터의 호의를 바랐으나 결국 조롱과 놀림만 받았다. 반면 이재명은 SNS를 활용한 자신의 언론 채널을 확보하고 있어 메이저 언론의 지원 또는 호의를 전혀 바라지 않는다. 쉽게 말해 노무현은 메이저 언론에 휘둘렸고 한을 품었지만, 이재명은 언론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언론 역할을 한다.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게 해주는 SNS의 폭발적 성장 덕분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물론 혼이 났지요. “좀 간단히 말할 수 없나? 배경설명을 그리 장황하게 해야 해?”라는 핀잔이었습니다. 이 지면에서는 그런 핀잔을 상대적으로 덜 들을 수 있을 듯하니, 근거를 들어가며 두 사람의 차이를 좀 찬찬히 들여다보지요.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발언을 하는 이재명 성남시장.(사진=Vstar 유튜브 동영상 캡처)


‘돈 버는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갈리는 인생행로들

돈觀: 위의 6가지 사항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노무현과 이재명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돈을 바라보는 시각, 즉 돈관(觀)에서 갈라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입니다. 그래서 서민이나 재벌이나 모두 돈에 아등바등하며 삽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절대명제는 “당신 돈 있어? 없다구? 그럼 저쪽에 가서 찌그러져!”가 되지요. 물론 이런 명령어가 일상화돼 있지만, 찌그러지라면 실제로 찌그러드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당신이 뭔데 내가 왜 찌그러져야 해?”라며 되받아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 앞에서, 즉 기성권력 앞에서 위축되는 정도에서, 제가 보기에 노무현과 이재명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선, 이재명이 2014년 펴낸 책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를 봅시다. 이 책을 읽은 뒤 가장 가슴 깊숙이 남은 메시지는 돈에 대한 이재명 시장의 태도, 즉 “생전에 부자가 돼보겠다”는 한국인의 일반적 꿈을, 적어도 이 시장은 갖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동갑내기(1964년생) 방송인인 김미화와의 대담이 길게 실립니다. 김미화가 “저는 찢어지게 가난했죠”라고 말문을 열자, 이 시장은 “저는 뭐 찢어졌죠”라고 응대합니다. 찢어질만큼이 아니라 실제로 찢어졌다는 소리이고, 이어 둘은 ‘얼마만큼 찢어졌는지’를 서로 견주어보기 시작합니다. 

이 시장은 책에서 자신이 정치에 입문한 계기를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며 이렇게 밝힙니다. 성남시에 시립병원을 짓자는 시민운동가들의 꿈이 기성 정치인들의 퇴짜로 번번이 무산되고 심지어 변호사이면서도 구속까지 되는 수모를 당하면서 그는 결심했답니다. ‘내가 직접 시장이 돼 시립병원을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시장에 당선된 뒤 시립병원 기공식에서 시민운동가들과 얼싸 안고 기뻐했다는 이 시장은, 일 자체의 성취에서 재미를 느끼는 스타일이지, 쌓여가는 금고 잔액에 희열을 느끼는 스타일을 아닌 듯 느껴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는 시장 직에 대해서도 “시장자리가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뭐 이 자리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포기해 가며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65쪽)라고 말하지요. 시장이 아니라 구청장이라도 한 번 하면 ‘평생 먹을 거’를 건져 나오는 공직 선출자가 있고, 그래서 각 지자체마다 비리-수뢰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시장 자리가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그의 발언은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런 바탕이 있으니 성남시의 도로-토목공사 비용을 줄이면서 7천 억이 넘는 엄청난 시 채무를 갚아낼 수 있었겠지요. 지역 부동산 토호(관급 부동산 공사로 먹고사는 사람들)가 지배하는 한국의 지자체에서 토목공사비를 절약한다는 게 웬만한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는 게 많은 경험자들의 말이니 말입니다. 

돈벌이에 대해서는 이런 멘트도 합니다. 성남시의 도심재개발 사업에 대해 말하면서 이 시장은 “대중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원래 없다"(252쪽)고 지적합니다. 나름 섬뜩한 말이지요? ‘나도 이건희처럼 되고 싶다. 내가 안 되면 내 자식은 꼭 돼야’라는 꿈 또는 한을 가슴 깊숙이 품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당신들이 돈 벌 기회란 원래 없다’니 참 잔인한 말이지요. 

삼성그룹과의 관계로 보는 노무현과 이재명

삼성: 야당 소속의 어느 초선의원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국회에 들어가니 선배 의원들이 ‘국회에서 뭔 말을 해도 좋지만, 딱 두 가지에 대해서는 말조심을 해라. 삼성과 미국이다”라고 조언하더라는 겁니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삼성-미국에 대해 노-이는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요?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는 말로는 여러 번 반미(反美)를 했지만, 이라크 파병 등 친미(親美) 정책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사안별로 달리 대응한 것이지요. 나쁘게 평가하자면 말로는 반미, 행동으로는 친미를 했다는 비난도 가능합니다. 반면 ‘또 다른 금기’ 삼성에 대해서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친(親)삼성으로 일관했고, 퇴임 뒤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전문가들의 관련 평가를 보지요. 

노무현 참여정부 내내 대립각을 세웠던 진보 진영의 심상정 현 정의당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8년 펴낸 ‘당당한 아름다움’에서 이렇게 규탄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삼성에서 돈과 머리와 사람을 빌리고 삼성 퍼주기로 일관했다. 재벌연합 정부, 강력한 신자유주의 추진 세력. 이것이 국민이 심판한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이다.

고 노무현을 일부 변호해주는 입장도 물론 있지요. 예컨대 2010년 나온 ‘굿바이 삼성’에서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삼성을 국가와 동일시하게 만든 주역은 노무현 정부였고, 이를 지지한 중간계급이었던 셈이었다. 이들은 노동운동의 종언에 노골적으로 합의하면서 시장주의의 완성을 통해 한국 사회의 합리화, 또는 정상화를 꾀했던 것인데, 이 과정에서 삼성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표준으로 승인되었던 것”(246쪽)이라고 썼습니다. 삼성을 표준으로 생각했던 것은 참여정부뿐 아니라 당시의 대한민국 일반이었다는 소리지요. 

그런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에 “한국 정치인은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언을 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국제신사인 글로벌 기업인들에 비하면, 국내의 관료나 정치가들은 정말로 촌티-꼰대티가 줄줄 흘렀으니까요. 이런 일반의 인식을 근거로 삼성은 이 사회의 교과서가 됐고, 그런 흐름을 이어받은 고 노무현도 삼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 힘들었다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경제평론가 이원재는 ‘야당 브레인의 부재’에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2013년 내놓은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2013년)에서 그는 “노무현이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받았다고 비판받지만 아마도 그런 조사연구를 시킬만한 마땅한 곳이 달리 없었으리란 생각이 든다”고 썼습니다. 이런 변호는 미국의 사례를 봐도 짐작이 됩니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의 핵으로 꼽히는 헤리티지 재단은 이미 1973년 설립돼 보수 공화당의 정책 개발에 기여하지만, 민주당을 돕는 그런 싱크탱크가 없다가 2003년에야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CAP)가 만들어졌고, CAP는 5년 뒤 오바마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참여정부 초기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내의 온갖 정보보고서가 전달됐겠지만, 삼성경제연구소가 전달한 보고서만한 게 없을 때 과연 참여정부 입장에서 다른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냐는 옹호이며, 2016년 현재에도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는 여전히 한국에 부재한다는 현실에서 이원재 평론가의 이런 해석은 귀 기울여 들어볼만 합니다.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열풍이 불었을 때 나온 수많은 책 중 하나인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2011년. 민경우 김유진 강형구 공저)는 “노무현 정부는 2000년대로부터 대도약하기 시작한 수출 대기업 이외에 다른 활로를 찾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삼성을 주목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삼성 이외에 기댈만한 언덕이 없었던 것이다”(124쪽)라고 해석합니다. 경제를 살릴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재벌경제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입니다. 

돈을 보는 세계관인 ‘돈관(觀)’에 관한 한, 시대의 상이성도 있지만 노무현과 이재명의 개인적 선택 사이에는 큰 강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삼성과 미국이라는 두 금기에 대해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에 대해선 친(親), 미국에 대해선 불분명한 태도를 취한 반면,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폭발적인 지지율 상승을 누리고 있는 이재명 성남 시장은 양대 금기 모두에 대한 비판에 거침이 없습니다. 

우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 곤욕을 치른 6일 이 시장은 SNS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위해 움직이는 나라… 반드시 엄벌하고 재벌체제 해체해야’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이 부회장의 기업합병 방식 경영승계에 온 나라가 동원되고, 국민은 주식형펀드와 국민연금에 수천 억 손해를 입었으며,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16% 대주주 지위와 10조 원의 삼성전자 지분 4% 이익을 얻었습니다. 삼성은 그룹이 아닌 이재용 개인을 위해, 최순실에게 직접 현금 35억 원을 지급했습니다. 박근혜와 함께 재벌들도 엄정한 법의 심판대에 올려야 합니다. 재벌들은 온갖 특혜를 누리며 법 위에 군림하고, 국민을 우롱해왔습니다. 불법경영에 대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불법파견을 바로잡으라는 법원 판결을 무시했고, 배임죄인 부당 내부거래 일감몰아주기를 자행했습니다. 각종 편법 불법으로 세금 없이 부를 승계했습니다. 이제 친일독재부패 세력의 뿌리인 재벌 체제를 해체하고 공정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법은 공정해야 하고 재벌 총수들도 불법을 저지르면 처벌받아야 합니 다. 국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소수 기득권자가 아니라, 다수 국민의 행복을 위해 행사해야 합니다”고 공격했습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협력한 재벌 총수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재명 시장은 친미일까 반미일까
 
미국: 미국에 대한 이재명 시장의 입장은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단 미국의 북핵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워싱턴에서 지난 3월 21일 열린 미국 당국자들도 참석한 토론회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맨스필드재단 초청 간담회에서 이 시장은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이 지금까지는 주로 채찍에 의존해왔다면 이제 그 한계를 인정하고 당근을 사용할 때”라며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내놓은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협상’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미국도 이를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했지요. 

이에 대해 토론에 참석한 마크 매닌 미 의회조사국(CRS) 아시아 담당 연구국장이 “햇볕정책은 10년간, 또는 최소한 2005~2009년 사이에 채택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햇볕정책과 더불어 더욱 강력한 압박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지 않느냐”고 반론을 내놓았지만, 이 시장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 정책을 펼 당시에는 북한의 핵 개발이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임 정부들이 강경책을 쓰면서 악화됐다”고 반박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대해 종편 채널A가 “미국에 간 이재명 성남시장이 북한 외무상과 비슷한 북한 핵 정책을 주장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시장의 발언과 북한 리수용 외무상의 발언 동영상을 나란히 교차하며 보여주자, 이 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짬뽕 좋아한다니까 ‘자장면 비하’로 채널A가 조작을 했다. 법정에서 만나자”며 유머를 섞으며 법으로 혼내주겠다는 반박을 했지요.

언론과 악전고투 노무현 vs “보도 안해줘도 돼”라는 이재명

언론: 대(對)언론 문제, 특히 이른바 ‘메이저 언론’과의 관계에서 노-이 두 사람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2012년 내놓은 ‘노무현 이후’에서 “(노무현은) 조중동의 침소봉대와 말뒤틀기라는 무원칙과 몰상식과는 요란한 전쟁을 벌”였다면서 “순진한 사람을 언론은 짓이기고 정권은 깊이 실망하고 기자실 폐쇄로 이어"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언론과 요란한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했다는 소리지요. 

나꼼수로 유명한 방송인 김용민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11년 내놓은 책 ‘조국 현상을 말한다’에서 “노무현은 비판적 여론과 비우호적 언론 환경을 지나치게 의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의 언론 환경은 그야말로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한국이 안 되는 모든 건 노무현 탓”이라고 몰아붙이는 식으로 지나치게 비우호적이었지만, 또한 참여정부 인사들 자신이 지나치게 이런 언론 환경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갔다는 사후 분석이지요.

언론과의 전쟁을 치르기는 이재명 시장도 마찬가지지만, 언론과 싸우는 노무현과 이재명 두 사람의 표정은 사뭇 다릅니다. 언론과 싸우는 과정에서 노무현과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의 표정이 피로와 좌절로 일그러져 있다면, 이재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싸워나갑니다. 앞의 채널A 보도에 대해 그가 “내가 짬뽕을 좋아한다니까 맥락상 아무 상관도 없는 자장면을 끌어다 댕기며 자장면을 비하했다고 왜곡 보도해? 어디 법정에서 혼 좀 나봐라”고 유머를 섞는 모습에서도 이른바 메이저 언론에 대해 그가 실실 웃으며 싸워나가는 모습이 읽혀집니다. 

한 인터뷰에서 이 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메이저 언론에 기대지 않아요. 어차피 써주지 않는데요 뭐. 그 대신 저는 SNS를 열심히 합니다. 필사적으로 하지요. 제가 SNS에서 문제 제기를 하면 제 팔로워들이 실어나르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면 마이너 인터넷 언론에 관련 기사가 실리기 시작해요. 그리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메이저 언론에도 기사가 나기 시작하더라구요”라고. 

트위터에서 한 발언(멘션)이 500번 리트윗(실어나르기)되면 조선일보 1면 톱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분석이 있지만, 이 시장의 멘션에 대한 리트윗 횟수는 수백 또는 1천 회 이상을 쉽게 넘기므로, 이 시장 자신이 하나의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지요. 

▲1976년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함께 한 고 노무현 대통령. 양복 차림이면서도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사진을 찍은 데서 그의 개성이 드러난다. (사진=노무현재단)


SNS가 없던 시절의 노무현 참여정부는 마이크와 펜을 독점한 TV와 신문에 맞서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지만, 이재명 시장은 자기 나름의 언론 유통경로를 확보-유지하면서, 기성 언론의 왜곡보도나 오보에 대해서는 법률가답게 소송으로 판정승을 거두면서 응징해나가니 대(對)언론 싸움이 절대로 처절하지 않고 경쾌하게 이어집니다. ‘내 언론사’가 있는데 굳이 기성 언론사에 의존하면서 피흘리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는 거겠지요. 

골프를 친 노 vs 안 치는 이
형님 때문에 골머리 노 vs 형님과 절연 이

골프를 친 노무현과 골프를 안 치는 이재명, 형님 노건평 씨 문제 때문에 계속 골머리를 앓았던 노무현(가족에 연연)과, 셋째 형과 법정투쟁을 벌이면서 연을 끊은 이재명(가족사에 연연하지 않음)도 결정적으로 다른 점들입니다. 

골프: 한국 사회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은, 상류사회에 들어가려는 적극적인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의 징표입니다. 돈이 많아도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령 예전 대우그룹의 총수 김우중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 양반은 워낙 바쁠 뿐더러 시간이 나면 바둑을 두는 게 더 재밌지 골프는 재미가 없다면서 멀리했습니다. 대개의 서민들은 돈이 없어서 골프를 못 치지만, 돈과 능력이 되는데도 골프를 안 치는 사람은, 골프라는 종목에 흥미를 못 느끼거나, 아니면 골프가 갖는 상징성, 즉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는 데 대해 반감을 갖거나 굳이 그런 형태로 상류사회의 일원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세'의 문제지요.

가족사: 또한 가족사의 비극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세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에나 '정상으로 보이는 모습'이라는 게 있습니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입니다. 왜,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막상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드라마에는 항상 가족 구성원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이 나와 한국인들은 거의 항상 저렇게 밥을 먹는 모양이라고 상상했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대개 각자 밥을 먹고, 드라마처럼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걸 보고 놀랐다”고들 하잖아요? 가족이란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구성원이라는 고정관념이, 현실과 괴리된 채로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있는 양상입니다. 

헌데, 가족사에 ‘창피한 일’이 있을 때, 스스로 자신을 “정상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 창피한 가족사를 밖으로 절대 꺼내놓지 못합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자신의 내밀한 가족사가 밖으로 공개됨으로써 자신의 정상성(正常性)이 깨지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시장의 경우 자신의, 어떻게 보면 비극적이랄 수 있는 가정사를 스스로 꺼내놓음으로써 ‘노동자 가족으로서의 기본자세’를 견지했다는 게 제 평가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의 가족으로서, 가족 안에 비극적인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또 실제로 일어나므로, 그걸 굳이 창피해하고 감출 필요가 없다는 자세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노동자로서의 기본자세라는 말을 하자니, 영국인들의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유명한 영국 뮤지컬 ‘빌리 엘리엇’은 탄광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 발레를 배우면서 벌어지는 희비극을 그립니다. 발레라는 ‘상류층 예술’을 배운다는 데 대해 노동자 아버지가 본능적 또는 계급적으로 반발하면서 소동이 벌어지는 스토리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수백년 동안 산업화가 순차적으로 진행된 영국에서는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고하다지요? 예컨대 한국인은 축구 중계도 보고, 테니스 중계도 보지만, 영국에서 평민은 축구 중계는 봐도 테니스(귀족 스포츠) 중계는 보지 않는답니다.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 윔블던 테니스 중계를 보면 “계급에 대한 배신”이라며 아버지로부터 따귀를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민의 자식으로서 상류층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지만 결국 거부당한 ‘아웃사이더 정서’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역시 서민의 자식으로서 상류층으로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잠룡 후보 자리까지 올라갔으면서도 자신의 가족사를 스스로 드러내는 ‘노동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는 이재명 사이의 차이는 아주 크다고 느껴집니다.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여기는가, 아니면 당당한 노동자로 여기는가?

골프와 가족사라는 기준에서 두 사람을 비교했지만, 이러한 ‘자세’에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outsider)로 여기느냐 아니면 인사이더(insider)로 여기느냐 하는 갈림길이 있는 듯합니다. 

아웃사이더 콤플렉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노무현은 배신자인가’(2003년)와 ‘아웃사이더 콤플렉스: 노무현 현상의 축복과 저주’(2008년)를 통해 이 아웃사이더 감각 문제를 다뤘지요. 

그는 “노무현은 늘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면서 거대 악과 싸우겠다는 자세를 취한다”(‘노무현은 배신자인가’ 183쪽)거나, “아웃사이더 콤플렉스에 중독된 이들은 노무현이 억울하게 왕따를 당했다고 울분을 터뜨리는데, 대통령이나 된 사람이 왕따를 당했으면 오히려 그게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해야지, 왜 대통령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보호하고 옹호하려고만 하는가”(‘아웃사이더 콤플렉스’ 374쪽)라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으니), 대통령까지 된 뒤에도 아웃사이더 감각을 지녔고, 이런 대통령의 감각을 지지자들이 옹호까지 한 것은 문제가 아니었냐는 지적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생전에 “얻어맞고 자란 사람은 대들 줄을 모릅니다”라고 한탄했다고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저서 ‘문재인이 이긴다’(2012년)에서 전했습니다.  

이재명 시장은 “초졸 자격으로 공장에 들어가니 하도 많이 매를 맞아 나도 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검정고시로 중고교를 마치고, ‘전두환 장학금’(성적우수자에게 대학진학 기회를 준다며 대학 측이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지급하도록 한 제도)을 받아 대학에 들어갔다”고 자신의 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얻어맞고 자란 사람은 대들 줄을 모른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탄이 일반론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재명 시장의 경우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수없이 맞고 자랐지만 잘도 대들고, 힘센 보수우파의 막말 공세를 잘도 이겨내기 때문입니다. 

돈, 삼성, 미국, 언론, 골프, 가족사, 아웃사이더 콤플렉스 등 7개 키워드를 놓고 노무현과 이재명의 같고 다른 점을 장황하게 살펴봤습니다. 두 사람의 다른 이력은 각자 태어난 시대의 초상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어떤 세계관을 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길을 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한 독자 여러분 모두가, 돈-골프-가족사-언론-삼성 등에 관한 세계관을 가다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노무현을 뛰어넘는 비욘드(beyond) 노무현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으로 ‘박정희 신화’가 산산이 깨진 한국에서 이제 남은 것은 ‘비욘드 노무현의 꿈’이며, 다가올 대선에서는 누가 더 잘 비욘드 노무현을 이뤄낼 인물인가를 고르는 선거가 되리라고 생각해봅니다. 문재인-이재명을 포함한 여러 대선 후보 중 누가 더 '비욘드 노무현'에 적임자인지를 고르는 데도 이 기사가 참고되면 영광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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