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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마가단·칼리닌그라드] 마가단 오지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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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6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3.13 09:54:32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마가단)  

다인종 다문화 국가 러시아

청소하는 아주머니 얼굴이 영락없이 한국인이기에 물어보니 알타이(Altai)란다. 인사를 건네니 알타이족도 한국인과 얼굴이 비슷하다는 것을 자기도 잘 알고 있다면서 반가워한다. 여기 또한 많은 인종이 섞이는 곳이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 러시아의 다양성을 엿본다. 

시베리아 극한 여행 옵션 

오늘은 한적하게 도시를 탐방하면 된다. 마음 같아서는 시베리아 유형소(Gulag, 굴락)와 과거 소비에트 시절 공장과 광산으로 융성했으나 이제는 폐허가 된 내륙 ‘유령 도시’들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수백km 떨어진 데다가 시간과 교통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아쉬움 속에 접는다. 

북한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고려여행사(Koryo Tours)가 이른바 ‘Dark Tourism’이라는 테마로 극소수 극한 여행자들(extreme travelers)을 대상으로 마가단의 오지들을 탐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 현지 여행사들은 도로가 결빙하여 시베리아 내륙으로 통하는 육로 이동이 가능한 겨울철에 콜리마 고속도로 2000km를 주파하는 투어 프로그램(투어라기보다는 탐험이다)을 운영한다. 

▲마가단 도시 외곽 언덕의 ‘슬픔의 얼굴(Mask of Sorrow)’은 시베리아 유형소 희생자들을 추념하기 위해 1996년 세운 거대 조형물이다. 사진 = 김현주

북한 해외 노동자들을 만나다 

시내 러시아 정교회당 가는 길, 한 건물 앞에서 작업 중인 두 남성 얼굴이 틀림없이 한국인이다. “여보세요”라고 슬쩍 말을 건네 보니 즉각 뒤돌아본다. 북한 노동자들이다. 김 씨, 조 씨 두 중년 남성은 사할린에서 5년, 마가단에서 3년, 합쳐서 8년째 해외체류 중이다. 사진 찍기를 사양해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숨길 수 없는 얼굴… 피를 나눈 동포들이다. 이념의 울타리만 걷어내면 이웃이고 친구가 돼야 했을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들의 고용주인 러시아 용역 회사는 1년에 한 번, 고향 방문을 지원해 준다고 한다. “당신은 무슨 일로 여기 왔냐”고 묻기에 볼일 있어서 왔노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서로 행복을 빌어주며 작별 인사를 나누니 아침부터 가슴이 짠하다. 

▲‘슬픔의 얼굴(Mask of Sorrow)’은 콘크리트로 만든 조형물이지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젖게 만든다. 사진 = 김현주

헛걸음한 마가단 박물관

월요일 아침이 활기찬 것은 변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잘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바쁜 걸음으로 일터로 향한다. 황량한 벌판을 기대했으나 오르락내리락 언덕을 따라 펼쳐진 도시는 소담하게 예쁘다. 여러 번 길을 물어 마가단 박물관을 찾아갔으나 안타깝게도 월요일은 휴관이다. 시베리아 유형소에 관련된 방대한 전시물을 보고 싶었으므로 정말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슬픔의 얼굴(Mask of Sorrow)

이 도시에 몇 대 안 되는 택시를 운 좋게 만나서 도시 외곽 언덕으로 향한다. ‘슬픔의 얼굴’(Mask of Sorrow)이 있는 곳이다. 시베리아 유형소 희생자들을 추념하기 위하여 1996년 건립한 거대 조형물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조형물이지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젖게 만든다. 도시 서쪽 어딘가를 응시하는 슬픈 얼굴은 아마도 오호츠크해 너머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마가단 시내의 러시아 정교회당. 이곳을 향한 길목 한 건물 앞에서 작업 중이던 북한 노동자 둘을 만났다. 사진 = 김현주

▲항만에는 배 몇 척이 전부일 뿐 갈매기 떼만이 주인 행세를 하며 으스댄다. 그래도 외지로 나가는 도로가 없거나 불량한 마가단 사람들에게 항구는 생명선이다. 사진 = 김현주

바다 안개에 젖은 도시 풍경

언덕마루에서는 도시가 사방으로 훤히 내려다보인다. 남쪽으로는 시내와 그 너머 마가단 항구와 해변, 그리고 오호츠크 해, 북쪽으로는 멀리 겹겹이 둘러싼 산 넘어 산, 그리고 광대한 대륙이다. 시베리아, 아니 유라시아 대륙이 끝나는 곳에 도시와 문명을 건설한 러시아인들의 솜씨에 놀란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서 하염없이 머문다. 오호츠크해에서 밀려온 짙은 바다 안개가 도시를 감싸기 시작하니 눈물 젖은 도시, 사연 많은 도시, 아픔 위에 건설한 도시가 비감하다.

▲유형소 입소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던 마가단 항구. 이제는 버려진 선박들, 버려진 주변 공장들에다가 역겨운 폐유 냄새가 진동하는 쇠락한 항구다. 사진 = 김현주

쇠락한 마가단 항

언덕을 내려와 마슈르트카(미니버스)를 타고 마가단 항으로 향한다. 유형소 입소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던 이 항구 또한 역사의 시련을 아는지 모르는지 쇠락할 대로 쇠락했다. 버려진 선박들, 버려진 주변 공장들, 역겨운 폐유 냄새가 진동하는 잊힌 항구다. 오호츠크 해 서북단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마가단 만에 자리 잡은 항구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지만, 수산업(어업)을 비롯한 산업이 빈약하다. 항만에는 배 몇 척이 전부일 뿐 갈매기 떼만이 주인 행세를 하며 으스댄다. 여기서 항공 거리로 900km 떨어진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Petropablovsk-Kamchatsky)의 분주한 항구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래도 외지로 나가는 도로가 없거나 불량한 마가단 사람들에게 항구는 생명선이다. 겨울에는 항구에 낀 얼음을 쇄빙선으로 뚫어 바깥세상으로 향한 길을 터준다.  


6일차 (마가단 → 모스크바 환승 → 칼리닌그라드)

콜리마 고속도로

공항으로 가는 길. 시내를 벗어나자 곧 야쿠츠크(Yakutsk)행 콜리마 고속도로의 시작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나온다. 겨울에만 통하는 이 길은 ‘지구의 냉장고’라는 혹한지 오미야콘(Omyakon)을 지나 사하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 닿는다. 2000km를 운행하는 나흘 동안 자동차들은 정차 중에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고 한다. 재시동 실패는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오늘 마가단에는 태양이 찬란하게 빛난다. 아무 탈 없이 오지 마가단을 벗어나니 마음이 가벼울 만도 하지만 자꾸만 우수가 깃든다.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붙임성 많은 러시아 사람들

마가단 공항 터미널 대합실에서 러시아 어린이 몇 명이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지 공연히 내 주위를 맴돈다. 아시아에서 온 여행자에게 보내는 호기심 어린 호감의 눈빛이다. 거리에서 길을 찾을 때는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붙임성 많은 러시아 사람들 때문에 러시아 여행은 즐겁다. 또 하나, 러시아 여성들이다. 명성이 자자한 러시아 여성들의 미모와 근사한 체격을 실컷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러시아 여행이 덤으로 주는 선물이다.

▲마가단 슈퍼마켓의 한국 식료품들을 통해 한류를 발견한다. 사진 = 김현주

▲칼리닌그라드 항구는 러시아 발트 해의 군사·교역 요충이다. 사진 = 김현주

칼리닌그라드 개관

항공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니 곧 시베리아 대평원이다. 모스크바까지는 3600마일(5760km), 7시간 반 걸린다. 유라시아 대륙 북부를 완전히 횡단하는 항공 루트이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Sheremetyevo, SVO) 공항은 휴가철 승객들로 게이트마다 붐빈다. 항공기는 약 두 시간 걸려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독일어로는 쾨니히스베르크/Koenigsberg)에 도착한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벨라루스로 둘러싸인 러시아의 해외 영토(exclave)이자 러시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주(州, oblast)이다. 발트 해의 러시아 부동항으로서, 발트함대 본부가 위치할 정도로 전략 요충이어서 구소련 해체 이후에야 외지인에게 개방됐다.  

칼리닌그라드는 2차 대전 말기, 적군(赤軍)이 진입하여 독일인들을 몰아내고 소련 영토로 병합한 곳이다. 과거 튜턴(Tuton) 왕조, 폴란드, 동프러시아, 독일, 러시아로 주인이 계속 바뀐 역사 깊은 도시다. 러시아 땅이 된 이후 서유럽이 가깝고 기후가 온화해 러시아에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마침 비가 세차게 내려 도시 탐방은 내일로 미루고 숙소로 곧장 들어가 쉰다. 

(정리 = 윤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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