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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청와대 갑질’ 구속됐지만, 하도급 갑질은 여전

전 분야에 만연…을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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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9호 유경석 기자⁄ 2017.04.03 09:53:11

▲신라면세점 서울점 매장. 사진 = 호텔신라

(CNB저널 = 유경석 기자) 자유한국당 김기선 국회의원(강원 원주 갑)은 최근 한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하도급 교섭 과정에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기술 설명을 빌미로 기술을 탈취하거나 편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 수급사업자는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생명줄 같은 기술 자료를 넘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형적인 ‘갑질’인 셈이다. 갑질은 대기업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계약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들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갑질만 무려 2433건에 달했다. 하도급은 물론 대규모 유통, 가맹, 공정거래 등 산업 전 분야에 만연한 현상이다. 갑질을 뿌리 뽑을 수는 없는 것일까? 

대기업·중견기업 가리지 않는 꼼수 영업

롯데와 신라 면세점은 2009년 8월경 영업 담당자 간 의사 연락을 통해 전관 할인행사 때 전자 제품의 행사(정기) 할인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화장품, 의류, 액세서리, 시계 등 다른 상품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진율이 낮은 카메라, 전기면도기, 휴대폰 등 전자 제품군의 마진율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2010년 당시 마진율은 롯데 면세점 기준 전자 제품 21.0∼26.5%, 화장품 39.3∼48.2%, 안경·선글라스 39.7∼50.3%, 시계 30.1∼38.8%였다. 

롯데와 신라 면세점은 합의한 대로 2009년 9월부터 2011년 5월까지 10개월 간 총 9차례의 전관 할인 행사에서 전자 제품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롯데는 서울점(소공·잠실·코엑스), 인터넷점, 인천점 및 제주점 등 모든 점포에서 담합을 실행했다. 신라는 서울점과 인터넷점에서만 실행했고, 인천점과 제주점은 제외했다. 전자 제품 행사 할인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가격 경쟁을 제한한 결과 할인행사 기간에 비해 총 할인율이 평균 1.8∼2.9%p 감소했다. 

▲롯데면세점 본점에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이 북적대고 있다. 사진 = 롯데그룹

롯데면세점은 이로 인해 7억 2700만 원(추정), 신라 면세점은 1억 1900만 원(추정)의 이득을 거뒀다. 이는 그만큼 면세점 이용자 부담을 증가시켰다는 의미다. 롯데면세점 이용자 중 외국인의 전자제품 구매 비중은 50%, 신라면세점은 54%였다. 롯데와 신라면세점에는 시정명령과 함께 총 18억 150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롯데면세점은 당시 2조 195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신라면세점 매출액은 1조 2134억 원이었다. 

‘블랙야크’ 브랜드를 생산하는 ㈜동진레저는 2014년 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41개 수급 사업자들에게 의류 등 제조를 위탁하고 의류 등을 수령했다. 하도급 대금 371억 4550만 원은 어음 대체 결제 수단으로 지급했지만 어음 대체결제 수수료 3억 5406만 원은 지급하지 않았다. 

어음 대체 결제는 수급 사업자가 원사업자에게 납품 후 발생하는 외상 매출 채권을 담보로 수급 사업자가 은행에 대출을 받고, 해당 외상 매출 채권 만기일에 원사업자가 이를 결제하는 방식이다. 

또 동진레저는 2014년 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19개 수급 사업자들에게 의류 등 제조를 위탁하고 목적물 등을 수령한 후 하도급 대금 6억 5만 원을 지급하면서 지연이자 1001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는 목적물 수령일부터 60일이 지난 날 이후부터 하도급 대금 상환 기일까지 기간에 대한 수수료(연 7%)를 지급하도록 한 규정은 물론 60일이 지난 후에 지급하는 경우 그 초과 기간에 대한 지연 이자를 지급하도록 규정한 하도급법을 위반한 것이다. 

▲동진레저 양재사옥 내에 위치한 블랙야크 매장 전경. 사진출처 = 동진레저

동진레저는 2013년 718억 원, 2014년 845억 원, 2015년 918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동진레저는 법 위반 사항을 시정했으나 위반 금액이 커 시정명령과 함께 99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납품대금 떼먹는 건 갑에게는 당연?

㈜만도는 2014년 9월부터 2015년 7월까지의 기간 동안 7개 수급 사업자에게 자동차부품의 제조를 위탁하고 이와 관련한 샘플·금형 또는 부품 제작 대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 대금이 과다하게 산정되었다는 이유로 총 7674만 원을 사후 납품대금에서 공제했다.

또 3개 수급 사업자에 대해 납품업체를 변경 또는 이원화하면서 기존 납품업체에 적용하던 단가를 그대로 인정해 하도급대금을 지급했다. 그 이후에 새롭게 결정된 단가와 종전 단가와 차액분 총 1억 8350만 원을 사후 납품대금에서 공제했다. 

게다가 1개 수급 사업자에게는 3개 품목의 단가를 인상하기로 합의하고 인상된 단가대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했으나 그 후 단순히 인상 시점을 3개월 연기하기로 재협의해 그 동안 지급한 인상금액 4395만 원을 사후 납품대금에서 공제했다. 

객관적·합리적인 산출근거가 없거나 원가절감 등을 명분으로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도급대금을 감액한 것이다. 이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제조 등 위탁을 할 때 정한 하도급 대금을 감액할 수 없도록 한 하도급법을 위반한 것으로, 시정명령(향후 재발방지 명령)과 함께 과징금 8000만 원이 부과됐다. 

▲만도는 3월 24일 브레이크 디비전(Brake Division)에서 열린 ‘2017년 제3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사진출처 = 만도

만도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시작되자 감액한 대금에 그 지연 이자를 합한 총 4억 3000만 원을 해당 수급사업자에게 전액 지급했다. 만도는 2012년 3조 1406억 6900만 원, 2013년 3조 1979억 8400만 원, 2014년 3조 1754억 2100만 원, 2015년 3조 941억 54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우리산업㈜은 2015년 4월부터 2016년 2월까지 26개 수급 사업자에게 인쇄 회로 기판(PCB) 등을 제조 위탁하고 하도급 대금 286억 원을 어음으로 지급하면서 어음 할인료 3억 4554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또 이 기간 1개 수급 사업자에게 인쇄 회로 기판(PCB) 등을 제조 위탁하고 하도급 대금 3억 5474만 원을 지급하면서 지연 이자 395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최근 세 차례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은 우리산업은 조사 과정에서 수급 사업자에게 어음 할인료, 지연 이자 등을 전액 지급했으나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 9000만 원은 피할 수 없었다. 우리산업은 2014년 2581억 원, 2015년 1967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중견기업이다. 

계약을 미끼로 기술탈취한 갑의 무임승차

한국화낙(주)는 15개 수급 사업자에게 공장 자동화 관련 로봇 등에 장착할 주변 장치 등 제작을 위탁하고 이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해당 주변 장치의 부품 도면 127건을 해당 수급 사업자와의 관련 회의, 전자 우편을 통해 요구하면서 기술 자료 요구서를 교부하지 않았다. 한국화낙은 공작 기계용 수치 제어 장치, 산업용 로보트 등을 제조하는 사업자로, 2015년 6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또 에이에스이코리아(주)는 2개 수급 사업자에게 자신의 반도체 장비에 장착할 금형의 제작을 위탁하고 이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5건의 금형 도면을 구두, 전자 우편으로 요구하면서 기술 자료 요구서를 교부하지 않았다. 반도체 장비에 장착할 금형은 재료의 전연성(展延性), 유동성(流動性), 소성(塑性) 등 성질을 이용해 재료를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도구다. 에이에스이코리아는 자동차용 파워 IC, 의료 및 공업용 센서, 무선 통신용 증폭기 등  각종 반도체를 제조하는 사업자로, 2015년 매출액은 5310억 원이다.

(주)코텍은 6개 수급 사업자에게 의료용 모니터, 전자 칠판 등에 사용되는 부품용 금형의 제작을 위탁하고 이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금형 도면 14건을 구두, 전자 우편으로 요구하면서 기술 자료 요구서를 교부하지 않았다. 코텍은 의료용 모니터, 전자 칠판 등을 제조하는 사업자로, 2015년 24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은 기술자료 요구의 정당성은 인정되나 사전에 그 요구목적, 비밀 유지에 관한 사항 등이 적힌 기술 자료 요구서를 교부하지 않아 하도급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정, 시정명령을 받았다. 

생활 전 분야에 만연한 갑질 횡포

실제 사례를 보면 생활 전 분야에서 갑질은 확인된다. A씨는 2015년 10월 스포츠의류 제조업체 B사와 의류매장 중간관리 계약을 맺고, 인천 소재 쇼핑센터에서 B사의 브랜드매장을 운영했다. A씨는 B사로부터 판매액에 일정 수수료율을 곱한 금액을 판매수수료로 지급받기로 했다. 하지만 B사는 A씨가 판매한 상품들 중 일부 품목에 대해서 계약 수준보다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판매수수료 중 일부를 지급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C커피 가맹본부와 가맹계약을 체결하고 매장을 운영하던 D씨는, 2015년 말 매장이 입점해 있는 건물 임대인 E씨로부터 임대차계약 만료에 따라 매장을 인도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D씨는 건물 임대인 E씨가 C커피 가맹본부대표의 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C커피 가맹본부가 건물 임대인 E씨를 내세워 우회적으로 가맹계약을 해지하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됐다. 양 당사자는 결국 C커피 가맹본부가 D씨에게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전문건설업체 F사는 2011년 종합건설업체 G사로부터 경남 소재 산업단지 조성공사를 하도급받았다. F사는 공사 완료한 후 G사에 하도급대금 지급을 요청했으나, G사는 원래 계약된 것보다 실제 시공 물량이 적었다는 이유로 F사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크레인 제조업자 H사는 2015년 초 금속 조립구조재 제조업자 I사로부터 크레인 제조를 위탁받았다. H사는 I사에 크레인 납품을 완료한 후 하도급 대금 지급을 요청했으나, I사는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하도급 대금 중 일부를 지급하지 않았다.

요식업자 J씨는 2013년 3월경 대규모 유통업자 K사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K사의 대형마트에서 분식매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K사가 2016년 초 마트 리뉴얼 공사를 이유로 신청인에게 계약중도해지를 통보함에 따라, J씨는 자신의 매장을 철거하고 영업을 중단했다. 

보습학원 운영업자 L씨는 2016년 8월경 자신의 학원을 홍보하기 위해 광고대행업자 M사와 광고대행계약을 계약기간 1년으로 체결하고 M사에 계약금 600만 원을 지급했다. 이후 M사의 광고대행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L씨는 2016년  9월경 B사에게 계약중도해지 및 계약금 반환을 요청했다. 

생존을 건 갑을전쟁, 2016년 2433건 

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2016년 분쟁 조정 접수 건수는 2433건으로, 이는 2015년 2214건보다 219건(10%) 증가한 숫자다. 분야별로는 하도급 분야가 2015년 1050건보다 93건(9%)이 증가한 1143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가맹 593건, 공정거래 540건, 약관 115건, 대규모유통 42건 순이었다. 

하도급 거래 분야는 총 1088건 중 하도급 대금 지급 의무 위반 행위가 859건(79.0%)으로 가장 많았고,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 행위 55건(5.1%), 부당한 위탁 취소 행위 48건(4.4%), 부당 감액 행위 43건(4.0%) 등 순이었다. 

가맹사업거래 분야는 총 523건 중 가맹사업자가 사업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인 정보공개서 제공 의무 위반 행위, 허위·과장 정보 제공 행위가 각각 109건(20.8%) 및 82건(15.7%)이었다. 부당한 계약 해지도 35건(6.7%)을 차지했다. 

공정거래 분야는 총 482건 중 계약 내용·계약 이행 과정에서 민사적 분쟁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가 270건(56.0%)으로 가장 많았고, 거래 거절 행위 74건(15.4%) 등 순으로 나타났다.

약관 분야는 총 110건 중 과도한 손해 배상액의 예정이 41건(37.3%)으로 가장 많았고, 계약 해제·해지권의 부당한 제한 13건(11.8%) 등 순이었다.

대규모 유통업 거래 분야는 총 36건 중 불이익 제공·경제적 이익 제공 요구가 3건(8.3%)이며, 상품 대금 미지급, 판촉비 부담 전가, 매장 설비비용의 미보상이 각각 2건(5.6%) 등이었다. 

정치권에서 하도급거래 금지 활발한 행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하도급거래 개정안이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급사업자의 의사에 반하는 아파트, 토지 등 대물변제를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하고, 조정절차 진행 중에 채권 소멸시효 등이 도과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분쟁조정 신청과 동시에 시효가 중단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 = 국회

대물변제의 허용은 원사업자의 부도 또는 은행과 당좌거래 정지·금지의 경우, 원사업자의 파산신청, 회생절차개시 또는 간이회생절차개시의 신청이 있는 경우, 수급사업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 대물변제가 허용된다. 

하도급법 개정으로 수급사업자가 원하지 않는 대물변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본질적으로 차단돼 수급사업자의 보호가 한층 더 강화되고, 수급사업자가 하도급 대금을 원치 않게 물품으로 지급받게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금운영상 어려움도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역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김기선 국회의원은 대기업 및 원사업자 측이 수급사업자 및 중소·벤처기업과 교섭과정에서 기술 설명을 구실로 기술을 탈취·편취할 수 없도록 교섭단계에서도 원칙적으로 기술 자료의 요구를 금지토록 하는 하도급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박정 의원은 하도급 대금 지급기일 규정을 현행 목적물의 수령일로부터 60일에서 50일로 단축하도록 했다. 

자유한국당 김기선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대기업 및 원사업자 측이 수급사업자 및 중소·벤처기업과 교섭 과정에서 기술 설명을 구실로 기술을 탈취·편취해 무단으로 유용하는 등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교섭단계에서도 원칙적으로 기술 자료의 요구를 금지토록 해 공정한 하도급거래 질서를 확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 관계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원사업자가 하도급 대금을 감액하는 등 방법으로 수급 사업자의 이익을 박탈하거나 자신의 경영상 어려움을 수급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등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며 “중소 하도급 업자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하도급 대금 관련 법 위반 행위를 지속적으로 점검·시정해 공정한 하도급 거래 질서가 정착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도래에 맞춰 중소기업의 소중한 기술이 보호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기술 유용 분야에 대한 법 집행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며 “올해 업종을 선별해 대금 미지급 외에 부당 대금 결정·감액·부당 위탁취소·부당 반품 등 3대 하도급 불공정 행위를 집중 점검해 법 위반 행위에 대해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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