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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상트페테르부르크 → 탈린] 팡팡 터지는 와이파이 속 매력 터지는 중세도시, 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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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4.03 09:53:11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1일차 (상트페테르부르크 → 탈린, 에스토니아)

EU 국경을 넘다

이른 아침, 국제버스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난다. 에스토니아 탈린(Talinn)까지 306km이다. 출발 두 시간 후 버스는 국경을 건넌다. 러시아 출경, 에스토니아 입경에 한 시간 반쯤 걸렸다. 이 국경은 EU의 동쪽 끝 국경 중 하나이다. 국경을 넘으니 가장 먼저 러시아 키릴 문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로마 문자로 바뀐 것이 낯설고도 반갑다.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지니 여행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사람들 생김새는 변한 것이 없는데 체제가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을까?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세 시간 더 달려 탈린에 도착했다.

동유럽도 북유럽도 아닌…

에스토니아(Estonia)는 발트 해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다. 남한 면적의 절반이 채 안 되는 국토에 인구는 132만 명이다. 언어도 슬라브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웃 국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우랄어 계통의 핀란드어군이다. 그런 까닭인지 숱한 역사의 시련을 모두 겪었다. 덴마크, 폴란드,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주변의 웬만한 나라 중에서 에스토니아를 건드리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이다. 여러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수천 년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여 민족 정체성을 지켜온 것이 놀랍다. 게다가 동유럽도 아닌, 북유럽도 아닌 묘한 위치와 묘한 정체성의 국가라서 더욱 관심을 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포토제닉 도시 탈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일급 전망대 여러 곳을 자연스럽게 만난다. 사진 = 김현주

▲비루 게이트는 초현대식 건물들과 아름다운 중소도시인 탈린 올드 타운을 나누는 경계다. 사진 = 김현주

▲올드 타운 언덕 위 알렉산더 넵스키 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은 양파 돔을 얹은 19세기 러시아 정교회당이다. 사진 = 김현주

발트 해의 호랑이

20세기 초반, 1918년 잠시 독립을 이루기도 했지만 소비에트, 나치, 다시 소비에트의 지배하에 살다가 구소련의 해체로 1991년 완전히 독립을 얻었다. 2004년 EU의 대폭 확장 때 체코, 헝가리,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키프로스와 함께 EU에 가입했고 NATO에도 가입했다. 1인당 소득은 2만 3600달러(IMF, 2013)로서 발트 3국 이웃보다 월등히 높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할 때만 해도 대부분 집에 전화기조차 없던 가난한 나라가 ‘발트 해의 호랑이(tiger)’중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전 국토의 IT화와 더불어 창업의 기회가 많은 나라임은 이 나라 수도 어디를 가도 팡팡 터지는 와이파이를 통해서 곧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 IT 인프라가 가장 앞선 나라다.

중세 유럽, 소비에트, 그리고 현대 유럽의 공존

숙소에 여장을 풀고 곧장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핀란드만(Gulf of Finland)에 위치, 핀란드 헬싱키(Helsinki)에서 뱃길 70km, 쾌속선으로 한 시간 반 거리다. 올드 타운에 온전히 보존된 중세도시 덕분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매력적인 도시에 방문자들은 푹 빠져든다. 옛 중세 유럽, 소비에트, 그리고 현재 유럽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도시다. 

어글리 비루 호텔

이 도시의 관광, 교통, 교역, 오락의 중심인 비루(Viru) 광장이 숙소에서 멀지 않다. 새로 들어선 Radisson, Swisshotel 등 초현대식 건물을 지나 도심에 들어서자 이 도시의 야릇한 랜드마크인 비루 호텔이 앞을 가로 막는다. 소비에트 냉전 시절의 상징물을 통해 이 도시의 또 다른 정체성을 확인한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당시 KGB 본부가 있었던 곳으로서 모든 객실이 KGB에 의해서 도청, 감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루 게이트(Viru Gate)를 지나 탈린 올드 타운으로 들어서면서 얘기는 달라진다.

▲비루 광장과 비루 호텔. 비루 호텔은 당시 KGB 본부가 있었던 곳으로서 모든 객실이 KGB에 의해서 도청, 감시되었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인내로 지킨 역사

먼저 들른 곳은 역사박물관이다. 척박한 땅과 사나운 기후에서 문화와 언어를 잃지 않고 생존한 비결을 강조한 전시물들이 인상 깊다. ‘인내’(perseverance)… 즉 은근과 끈기 아닌가? 아주 독특한 나라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설움, 박물관은 그런 자신들의 과거를 농노와 노예의 삶에 비유한다. 나치를 몰아내기 위해서 소비에트에 협력했다가 전쟁이 끝나고도 50년 가까이 오히려 소비에트의 지배하에 숨죽였던 억울한 사연… 말하자면 줄 한번 잘못 섰다가 더 큰 멍에를 안아야 했던 깨달음을 고백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데가 많다. 일본을 밀어내려고 꺼져가는 청나라, 꺼져가는 러시아 제국에 기대었던 것처럼 딱한 사연일 듯싶다. 물론 전쟁 중에는 중립을 표방했지만 작고 힘없는 나라에게 중립이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에스토니아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IT 인프라가 가장 앞선 나라다. 사진은 탈린의 초현대식 거리. 사진 = 김현주

모든 곳이 전망대

이 도시는 중앙에 솟은 작은 Tompea(톰피아) 언덕에 요새와 교회, 수도원과 성당, 중세 가옥들이 밀집해 있는데 그곳을 올드 타운(Old Town)이라고 부른다. 올드 타운을 감싸고 있는 성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비루 게이트(Viru Gate)를 통과한다. 올드 타운은 곧 성곽 도시인 것이다. 도시를 둘러싼 2km 성곽은 유럽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중세 성곽으로 꼽힌다. 중세 13, 14세기에 지은 건축물과 구조물들을 감상하며 구불구불 화강암 골목을 헤맨다. 모든 곳이 전망대이고 아무데서 어떤 구도로 찍어도 멋진 사진이 나오는 포토제닉 도시이다.

탈린 명소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일급 전망대 여러 곳을 자연스럽게 만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전경, 더 멀리 항구와 발트 해까지… 압도적인 풍경이다. 입에서 절로 나오는 탄성을 멈출 수 없다. 올드 타운 언덕 위 알렉산더 넵스키 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은 양파 돔을 얹은 19세기 러시아 정교회당이다. 지배했던 자의 상징이라서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아름다움 때문에 일급 방문지가 되었다. 정교회당 인근 성마리 성당(St Mary Cathedral)도 이 도시의 인기 방문 리스트에 있다. 원래 가톨릭 성당으로 13세기에 지어졌으나 이후 확장돼 16세기 루터란(Lutheran) 교회가 되었다. 역사가 말해주듯 탈린의 종교는 가톨릭, 독일의 지배에 따라 들어온 루터란,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 등 다양하다. 

▲돌담, 맷돌, 허수아비 등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나라 어디쯤 와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 = 김현주

▲탈린 민속촌(야외 박물관)은 숲속에 에스토니아 옛 가옥과 마을을 재현해 놓았다. 사진 = 김현주

나이지리아 출신 남성 가브리엘의 탈린

넵스키 성당 앞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흑인 남성 가브리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에스토니아 여성과 결혼해 이 나라 국민이 되었다. 예쁜 딸과 함께 저녁 산책 중이다.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니 모국보다 행복하단다. 작고 폐쇄적인 나라의 국민들이라서 처음에는 마음을 잘 열지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 흉금을 터놓는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닮은 점이 많다. 


12일차 (탈린)

탈린 민속촌

서늘한 아침, 오늘은 자유로운 일정이어서 느지막이 숙소를 나선다. 첫 목적지는 페리 터미널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불과 70km. 하루 20회 이상 고속버스처럼 오가는 페리를 따라 수백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와 도시를 메운다. 민속촌(야외박물관, Open Air Museum)으로 방향을 바꾼다. 시내 열차역 앞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21, 41번)는 20분쯤 걸려 동물원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아주 상쾌한 해안 산책로를 따라 15∼20분 걸으니 민속촌이 나온다(입장료 8유로). 숲속에 에스토니아 옛 가옥과 마을을 재현해 놓았다. 볼거리로서는 손색없지만 한편으로는 이 나라의 힘들고 어두웠던 과거, 고달팠던 서민들의 삶이 새삼 생각난다. 돌담, 맷돌, 허수아비… 이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나라 어디쯤 와있는 것 같기도 하다. 

멋진 풀밭 위 식사

탁 트인 발트 해를 바라보며 점심 식사를 즐긴다. 점심이라고 해봐야 시내버스 내린 곳에서 사가지고 온 빅맥 세트다. 그러나 이 기막힌 맑은 공기와 발트 해의 짙푸른 바다를 배경삼아 즐기는 식사는 그 어떤 식사보다 멋지다. 도시로 돌아와 어제 황홀감에 빠져 헤매 돌았던 올드 타운을 다시 찾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수많은 방문자들로 붐빈다. 타운 홀(Town Hall) 광장에서 도시 탐방을 마친다. 아무리 봐도 멋진 광장이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방문할 라트비아와 리가에 관한 정보를 뒤지며 하루를 접는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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