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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듣는 미술] ‘볼 대상’ 없는 미술 전시에서 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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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0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7.04.10 10:23:15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대부분의 관객들은 조용해진다. 공공예절을 지켜야하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명작이 분출하는 아우라(aura)도 큰 영향을 끼친다. 작품 감상에 몰두하다가 나도 모르게 침묵할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떠올리는 대부분의 미술관은 고요하다. 사실 미술관이 조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술은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은 눈으로 감상하는 ‘보는’ 예술임에 분명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미술(조형 예술)의 정의에는 제일 먼저 ‘시각 예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가장 오래 된 미술의 목표 역시 눈에 보이는 대상을 설득력 있게 모방하는 것이었다. 미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세상을 닮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전달하는 것이라 여겼던 표현론적 태도가 등장한 이후에도 미술의 주인공은 형태(이미지)와 색채였다. 뭉크(Edvard Munch)의 ‘절규(The Scream)’(1893)에서 우리가 작가의 불안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흐물거리는 인물과 붉은 색조 덕분이다.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의 회화에 등장하는 길고 날카로운 이미지들,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격렬한 붓질 역시 관객들이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더니즘(modernism)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의 순수성과 독립성을 추구했던 형식론적 태도는 미술은 보는 것이라는 정체성에 더욱 주목했다. 작가들은 오로지 눈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미술을 창조하기 위해 순수한 조형 요소인 점, 선, 면, 색들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들에 집중했다. 20세기 중반 절정에 달했던 수많은 추상 미술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림에 색깔로서 들어오기 시작한 소리들

물론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예술 장르를 언급하는 작가도 있었다. 일례로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음악이 예술가의 정신을 표현하는 가장 추상화된 예술 형태라 이야기했다. 또한 파랑색은 첼로의 소리, 노란색은 트럼펫의 소리라 정의내리며 색의 성격을 악기의 소리와 비교하거나, 삼각형은 알레그로(allegro), 원은 아다지오(adagio)라고 말하며 특정한 형태를 악곡의 빠르기와 비교하기도 했다. 또한 ‘인상 Ⅲ-음악회(Impression III–Concert)’(1911)에서는 청각적인 인상의 시각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칸딘스키의 실험은 미술의 추상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고, 미술에 음악이나 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여온 것은 아니었다.  

미술에 대한 규칙과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오늘날에는 시각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의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미술은 더 이상 특정 장르의 경계를 고수하지 않으며 시각뿐 아니라 다양한 공감각적 감성을 자극한다. 

1960년대 이후 개념 미술(Conceptual Art), 퍼포먼스(Performance) 등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변화는 가속화되었다. 또한 움직이는 영상을 주된 표현의 매체로 삼는 비디오 아트(Video Art)에서는 마치 영화의 배경 음악과 주제가가 그렇듯 소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의 ‘리요(Riyo)’(1999)에서는 영화배우가 대사를 읊듯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몽환적인 도시 풍경과 어우러져 섬세한 감정을 자극한다. 소리가 중요해진만큼 음악가와의 협업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가 참여했던 백남준의 ‘올 스타 비디오(All Star Video)’(1984)가 대표적인데, 현란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전자음의 조합은 관객을 작품에 완벽히 몰입시킨다. 이미 백남준은 1963년에 연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1963)에서 여러 음향 장비들을 만들어 설치하고 관객이 연주하도록 했다. 

▲장민승+정재일, ‘밝은 방-2’(2016). 최승호 사진.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그런데 작품에 소리가 첨가될 경우 반드시 누군가가 작곡하고 편집한 음악이 아니라 할지라도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4’33”)’(1952)에서는 그 동안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아니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일상의 모든 소리가 작품이 된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서는 작품이 움직이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고철과 고물로 만들어진 팅겔리(Jean Tinguely)의 작품들은 전기 모터에 의해 움직이면서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기계적 소음을 제공한다. 조각적 이벤트라 불렸던 ‘뉴욕에의 경의(Homage to New York)’(1960)에서는 작품이 폭발하면서 내는 소리와 냄새를 경험할 수 있었다. 환경이 작품의 일부가 되고 작품이 환경의 일부가 되는 대지 미술(Land Art)의 경우에는 설치 장소에 따라 바뀌는 바람이나 파도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 도시의 경적 소리 등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소리가 공간을 보게 만든다

때로는 소리가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사운드 아트(Sound Art)는 –일반적으로- 미술가들이 제작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발표되지만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가 주인공인 예술을 말한다.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김기철은 보고 그릴 수 있는 소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다. ‘소리보기-비’(2014)는 종묘의 정전에 내리는 빗소리를 채집하여 128개의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는 작품이다. 각각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스피커에 연결된 낚싯줄을 따라 다양한 소리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한편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던 ‘보이드 Void’(2016)전에서 선보인 ‘장민승+정재일’의 ‘밝은 방’(2016)은 전시장 전체를 공명통이라 설정한 후 미술관의 공간 전체를 색과 빛, 음악만으로 꾸민 것이다. 물리적인 작품 없이 텅 빈 전시장을 가득 채운 색의 빛과 소리에 관객들은 당황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익숙하게 느껴왔던 감각과 공간을 새롭게 돌아보고 경험하게 된다. 

하나의 장르와 매체에 머무르지 않는 오늘날의 미술이 다양한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아직 이러한 형태의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긴장을 조금만 풀면 한결 편해질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풀듯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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