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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생 법관’의 길을 걷는 원로법관 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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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2호 최영태 기자⁄ 2017.07.04 14:27:14

▲명패를 내걸고 재판을 진행 중인 조병현 원로법관. 원로법관이라는 명패의 권위와 부드러운 재판 진행이 어우러지면서 원활한 조정과 합의가 이뤄진다. 사진 = 장해순 기자

(CNB저널 = 최영태 기자)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광명시법원 재판정은 여느 법정과는 달랐다. 우선 법대 위에 ‘원로법관 조병현’이라고 큼직하게 새겨진 명패가 놓여 있다. 이름난 옻칠 명인인 전용복 선생이 원로법관 지명을 기념하여 만들어준 것이란다. 양쪽 벽면엔 내연산 연산폭포를 입체감 있게 묘사한 유화와 광활한 나미비아 사막을 찍은 사진이 멋지게 걸려 있다. 그림은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는 사석원의 작품으로서 잠깐 빌린 것이고, 사진은 스타 작가인 김중만이 오래 전에 선물한 것이다. 

법정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재판정이란 결코 푸근한 공간이 아니다. 원고와 피고 사이엔 치열한 설전이 오가다 보니 재판이 끝나고 난 뒤에도 화가 풀리지 않아 법정 밖에서도 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헌데 이런 공간에서 ‘원로법관’이라는 명패를 앞세운 나이 지긋한 판사가 “잠시 옆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마음을 가다듬으세요”라고 권한다면, 얼굴을 붉히며 다투던 당사자들도 잠시나마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조 판사가 올 2월 사상 처음으로 원로법관으로 지명돼 부임한 광명시법원에 대한 광명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방청해봤다. 마침 목요일이라 소액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소송물가액 3000만 원 미만의 소액재판인지라 절대로 언론 또는 일반인의 주목을 받을 일은 없는 재판정이다. 그렇지만 서민들인 재판 당사자에게는 그 재판 결과에 따라 인생이 휘청거릴 수도 있는 재판인지라 긴장도는 소송물가액이 수십억 대에 달하는 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

핏대 올리는 원-피고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한 마디로 간단히 가라앉히는 원로법관의 힘

기자가 방청한 첫 재판은 ‘개’ 재판이었다. 아픈 개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물경 42만 원이란 높은 치료비까지 부담했는데 며칠 뒤 개가 죽자 애완견 소유주가 동물병원장을 상대로 치료비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것이었다. 원고 측은 “우리 부부를 개를 학대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면서 진료비의 액수도 알리지 않은 채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하였다”며 동물병원장을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동물병원장은 “엑스레이 및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는 당연히 해야 한다. 과잉진료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양쪽의 대립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걸 지켜보던 조 판사가 조정에 나섰다. 원고에 대해 “동물병원장의 잘못을 증명하려면 다른 수의사의 감정을 받는 등 추가로 비용이 들어간다. 혈액검사 비용 20만 원을 돌려받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권했고, 병원장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친절하게 미리 설명을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타일렀다. 

▲조 원로법관이 법정에 걸어놓은 사석원 화가의 작품. 조 원로법관은 때론 원고 또는 피고에게 “잠시 그림을 보라”고 권유하면서 재판의 분위기를 잡아나간다. 사진 = 장해순 기자

한창 핏대를 올리던 당사자들은 원로법관의 이 같은 조정안 제시에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재판장이 “그렇게 하라” “그리 하는 게 좋다”고 여러 차례 권하자 마침내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양쪽 모두 조정에 응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한판 크게 싸움을 벌일 것 같았던 원고와 피고 측은 원만한 조정 결과에 만족하고 재판정을 떠났으니 이런 게 바로 ‘원로법관의 명재판’이 아닐까 싶다. 

“형제 사이에 판결은 안 내립니다” 선언에 어처구니 없어진 형제

곧이어 벌어진 재판은 형과 동생의 다툼이었다. 전쟁 중에도 동족상잔이 가장 잔인하다고, 형제 사이의 돈 다툼과 감정싸움은 본인들에게는 물론이려니와 보는 사람의 눈살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팽팽한 긴장선을 달리며 상대방을 규탄하고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던 형과 동생은 결론적으로 “상대방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도록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나온 조 판사의 선언이 걸작이었다. “내가 30년 넘게 재판을 했지만 형제 사이의 소송을 판결로 종결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당신 둘이 형제 사이의 우의로 합의를 이룰 때까지 계속 재판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재판장이 ‘판결을 내릴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니 원-피고는 잠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모양새였지만, 어쩌랴, 재판장이 판결을 안 내리겠다면 그 다음에 남는 해결책은 수없이 다투다 재판정에까지 오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지금이라도 형제의 정을 생각하는 수밖에. 그래서 결국 형은 앞으로 동생의 직장이나 동생의 상관을 찾아가 동생을 험담하는 행동을 일체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그 대신에 동생은 형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조정하고는 재판정을 떠났다. 이런 조정안을 문건으로 작성해 양 당사자의 집으로 보내주기로 돼 있으니 형제는 앞으로 공개적으로 싸우기도 쉽지 않게 생겼다. 

“일본-미국 판사는 한번 판사면 영원히 판사. 
우리도 그런 시스템 만들어 가야지요”

“형제 사이의 소송에서는 판결을 안 해줘!”라는 선언부터 함으로써 자신에게만 유리한 판결을 확보하려는 원-피고의 욕심을 분쇄해 놓고는, 양쪽이 모두 받아들일만한 조정안을 내놓은 뒤 여러 차례 “그리 합시다”고 설득해 조정을 이뤄내는 모습에서 ‘원로법관의 30년 내공’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2월 원로법관이 부임한 이래로 광명시법원에서는 그래서 ‘별난 장면’이 종종 연출되고 있다. 사건이 폭주하여 충분한 심리 시간이 부족한 한국 재판정에서 원고나 피고가 재판장을 상대로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광명시법원에서는 당사자가 20분이 넘도록 자기의 처지를 하소연한 뒤 “재판장님이 이렇게 말을 들어주시니 하고픈 말을 다 한 것만으로도 분이 풀리고 속이 시원하다. 들어주셔서 고맙다”고 토로한 적도 있단다. 재판장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법적 분쟁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울고등법원장 출신의 원로법관을 시법원판사로 맞이한 광명시민은 그래서 앞으로 2년 8개월 뒤 조 판사가 정년퇴임할 때까지 푸근한 법정 장면을 종종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전관예우’의 유혹을 뿌리치고 광명 시민을 위한 재판 일선에 나선 조 원로법관의 표정에서 소탈함과 사심 없음이 읽힌다. 사진 = 장해순 기자

새 정권이 들어선 뒤 ‘사법 개혁’ 논의가 활발하다. 사법 개혁에 빠지지 않는 과제가 바로 ‘전관예우의 철폐’다. 판사 또는 검사을 역임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 이른바 전관(前官)에게 혜택을 준다는 전관예우는 개업 후 수 년 내에 수십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고 알려져 법조 비리가 문제될 때마다 비난의 표적이 되어왔다.

서울고법원장을 역임한 조 판사에게도 전관예우의 유혹이 없었을 리 없다. 이에 대해 조 판사는 “꼭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개업을 했겠지요. 저는 자식들도 잘 자라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재판을 하는 것이 저의 적성에 맞았기 때문에 법원에 남았습니다.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개업은 안 할 생각입니다”라고 뜻을 밝혔다. ‘한 번 판사면 영원히 판사’가 원칙인 미국 연방판사들처럼 자신도 전관예우 없는 판사로서의 일생을 살겠다는 각오다. 그가 재판정에 내건 ‘원로법관’ 명패는 흔들림 없는 자신의 각오를 새긴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전관예우의 길을 마다하고 평생법관의 길을 걷겠다는 원로법관의 목소리에 권위가 실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권위는 조 판사가 스스로 확보한 것으로서, 법정의 원고나 피고가 그런 사정을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그 자체로 효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조 판사가 진행하는 사건들은 거의 모두가 시원시원하게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판사가 사심 없이 쌍방이 받아들일만한 조정안을 내놓으니 원활한 마무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광명시법원 사건 중 많은 사건이 조정으로 종결되고, 판결이 선고된 사건 중에서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된 사건도 한 달에 한 건 정도에 그친다니 놀라운 정도다. 

미국과 일본 법관들의 경우에 대해 물어보니 조 판사는 “미국 연방 판사들은 연방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변호사 개업을 안 해요. 종신직인 데다 판사를 그만두어도 현직과 같은 대우를 해줌으로써 굳이 변호사 개업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해준다. 일본에 대해서도 “판사를 하던 사람이 판사 직을 마치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는 있지만, 대개는 하지 않고 변호사 개업을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몇 년 전 판사가 퇴직한 뒤 우동집을 개업해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라고 소개했다. 공정한 심판관 노릇을 하던 판사가 퇴직한 뒤 어느 한 쪽만 편들어야 하는 변호사 일을 맡으면서 후배 법관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전관예우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일본과 미국의 판사들은 아예 변호사 개업을 안 하는 게 상식임을 조 판사는 알고 있고 자신의 몸으로 이를 실천하는 중이다. 

10만 원대 호텔 밥과 구내식당 밥의 사이

광명시법원에서 그의 생활은 조촐하다. 매주 월요일엔 법원 직원들과 그 주의 계획을 짜고, 화요일에는 즉결심판, 수요일에는 협의이혼의사 확인, 목요일에는 소액재판을 진행하며, 금요일엔 그 주를 정리하는 일정을 소화해낸다. 점심시간이 돌아오면 법원 청사에서 가까운 한국전력 광명지사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은 ‘비싼(?)’ 회식도 한다. 법원 청사 뒤 밥집에서 가정식 백반에 특별 반찬을 하나 추가하고 막걸리 한 잔을 직원들과 함께 걸치는 회식이다. 쫓아가 동참해보니 성찬은 아니어도 밥집 주인이 정성껏 마련한 반찬이기에 저절로 “공기밥 하나 더”가 추가된다. 

전관예우를 마다하고 평생법관의 길을 걷는 조 판사에게 ‘백반 플러스 알파’가 성찬이라면 성찬이다. 정성이 들어간 밥을 먹자니 예전에 전해들은 한 대학병원 의사 부부가 생각난다. 한국 최고라는 대학병원의 의사인지라 이들 부부의 ‘함께 식사’는 10만 원대 호텔 식당이 기본이란다. 그런데 그 비싼 밥을 먹으면서도 당최 대화도 없고 대개는 “음식이 별로네”라고 평하는 걸 지켜봤다는 병원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 대화가 없더라도 1인당 10만 원대 호텔 음식이 훨씬 맛있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그런 값진 음식을 상식하려면 수십억 이익을 절대 마다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물질주의-배금주의가 판치는 한국에선 그게 상식이다.

▲조 원로법관이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계구신독치중화’ 문구. 사진 = 장해순 기자

이 글을 쓰는 기자도 ‘1. 조금 물의를 끼치더라도 수십 억 벌어서 매일 호텔 밥 먹을래, 아니면 2. 욕심부르지 않고 수십 억을 마다한 뒤 동네 밥집 밥 먹을래?’라고 누군가가 선택지를 내준다면, 슬그머니 1번 쪽으로 손이 갈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란 묘한 존재인지라, 객관적으로는(기계로 측정한다면) 기름지고 풍부한 호텔 음식이 맛-향취 면에서는 훨씬 뛰어나겠지만, 인간의 혀와 뇌는 소박하게 먹는 집밥에 훨씬 더 매혹될 수도 있으니, 이런게 바로 인생의 묘미라 할만하다. 

조 판사의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멋진 고어체로 쓰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한문의 뜻을 한 번 해석해보라”는 그의 권유에 해독하려 해봤지만 글씨체가 낯선지라 가운데 외로울 독(獨) 자 말고는 판독이 잘 안 됐다. 그의 설명을 듣고보니 戒懼愼獨致中和(계구신독치중화)이고, 조 판사의 좌우명이란다. ‘계구신독’(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 있을 때에도 사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과 ‘중화’(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바른 상태)는 모두 ‘중용’에 나오는 문구인데, 각기 다른 곳에 나오는 두 어구를 합쳐서 ‘홀로 있을 때 조심함으로써 중화에 이른다’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말이었다. 홀로 남다른 길을 선택하고 직원들과 구내식당과 밥집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계구신독치중화’를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원로의 모습을 본 듯 하다. 

이 나라의 검사와 법관이 이렇게 스스로 조심하면서 중화를 이루려 노력한다면 과연 사법개혁이 지금처럼 국민의 넘버원 개혁 과제가 됐을지 생각해본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사법개혁을 지켜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광명시 쪽으로 눈을 돌려 조 판사의 ‘낮은 자세 사법개혁’도 가끔 둘러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법부를 중심으로 완전히 궤도이탈을 한 것처럼 절망적으로 보이던 이 나라에서 이런 두 흐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니, 광명시법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조병현 법원장 약력

서울대 법대 졸업
1979년 제2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11기)
2010년 부산지방법원 법원장
2012년 대구고등법원 법원장
2013년 4월 ~ 2015년 02월 서울고등법원 법원장
2017년 2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광명시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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