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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낙하산과 영업맨…신의 직장 ‘두 얼굴’

긴 겨울밤 ‘잠 못 이루는’ 은행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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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3호 도기천 기자⁄ 2017.11.27 09:58:07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예전부터 ‘1등 신랑(신부)감’으로 꼽히는 은행원. 평균 임금이 웬만한 대기업 보다 높은데다 복지혜택도 최고 수준이라 ‘꿈의 직장인’으로 불린다. ‘부정한 청탁’을 해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곳이 ‘은행’이다 보니 채용 비리와 낙하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계가 사람일을 대신하는 ‘핀테크(금융+IT)’ 바람이 거세지면서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CNB가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봤다. 

주요 은행의 3분기 보고서를 보면, 1인당 연 평균급여액(연봉)이 6000만원을 웃돈다. 우리은행 직원의 평균연봉은 7천만원으로 4대 시중 은행 중 가장 많았다. 신한은행(6900만원), KEB하나은행(6400만원), KB국민은행(6200만원)이 뒤를 이었다. 

평균연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해 평균치를 구한 것이므로 정규직 사원만 따지면 평균보다 더 높다. 통상 대졸 신입사원 초봉이 5천만원 안팎이며, 군필 남자 기준으로 12∼14년차가 되면 이른바 ‘억대 연봉’ 대열에 오른다. 

업계에서는 연봉 순위를 신한, 국민, 우리, 하나 순으로 친다. 우리은행이 이번에 연봉 1위로 올라선 것은 민영화에 성공하면서 지난해 책정한 격려금이 올해 1분기에 지급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해 근로자 1544만명의 연봉을 분석한 결과 평균 3387만원이었다. 대기업 정규직은 평균 6521만원이었고, 중소기업 정규직은 3493만원이었다. 4대 은행 정규직 연봉이 중소기업보다 두 배 가량 높은 셈이다. 

▲주요은행의 평균 연봉 및 평균 근속연수. 자료 = 각사 3분기 보고서

급여 수준만 높은 것이 아니다. 각종 복지혜택도 잘 갖춰져 있다. 자녀 학자금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은행에 따라 개인연금이나 의료비도 일부 또는 전액 지원하기도 한다. 

직원들의 재직 기간도 긴 편이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우리은행의 평균 근속연수는 16.4년이었다. 국민은행이 16.2년, 신한은행은 14.8년, 하나은행은 14.2년이었다.

‘부정 청탁’ 해서라도 가고 싶은 곳?  

이처럼 임금과 직원복지가 여타 기업군에 비해 월등하다보니, 은행 입사를 위해 온갖 무리수가 횡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작년 신입사원 150명 중 16명이 청탁 등을 통해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지난달 국감 때 공개한 ‘우리은행 신입사원 추천현황’ 자료에는 추천대상자에 금감원 임원, 국정원 직원, 우리은행 VIP 고객, 대학 부총장, 대형병원 이사장, 대기업 간부의 자녀들 이름이 올라 있었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수협은행 등 14개 시중은행은 물론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상대로 채용시스템 전반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신입사원 채용 만이 아니다. 채이배 의원(국민의당)이 작년 국감 때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금융회사 27군데의 임원 255명 중 97명(38%)이 박근혜 정권이 내리꽂은 ‘낙하산’이었다.  

또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연말 금융사로부터 받아 공개한 ‘금융권 임원 중 공직 경력자 현황’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1월 1일부터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10월 말까지 재직 중인 금융권 임원 중 공직 경력자가 100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해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경우 최근 5년간 본사 및 자회사에 임원으로 재직 중인 정치권, 금융관료, 행정부 출신 인사는 총 41명에 이른다. 

이처럼 신입사원에서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인사 비리가 만연한 것은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괜찮은 직장’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디지털 수수료’ 이자수익 앞질러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핀테크(금융+IT)’의 발달로 은행원이 설 자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인터넷 및 모바일 이용 건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20% 이상씩 증가하고 있으며, 비대면거래가 전체 거래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90%를 넘어섰다. 

▲한국씨티은행은 올해 안에 점포를 126개에서 25개로 축소할 계획이다. 사진은 씨티은행이 차세대 금융센터로 리뉴얼한 씨티골드 반포지점의 스마트존 내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지난 4월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케이뱅크)은 이런 추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컴퓨터, 모바일 등 전자 장치를 통해 예적금·대출 등 금융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KT, 카카오 등 ICT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인터넷뱅킹 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인터넷은행의 출범 영향으로 지난 2분기 중 인터넷뱅킹(스마트폰뱅킹 포함) 대출신청이 일평균 8606건으로 전 분기 대비 무려 229.4%나 늘었다. 대출금액도 일평균 1천억원을 넘어섰다. 현재 인터넷은행을 포함해 국내 금융기관에 등록된 인터넷뱅킹 계좌수는 1억3천만 개에 이른다. 

▲은행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점포수는 줄고 있다. 5대 은행 점포수 현황. 각 시중은행 제공

이러다보니 은행들은 급속히 몸집을 줄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의원(바른정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올해까지 시중은행의 폐쇄된 점포수는 1480개에 이른다. 올해 연말까지 폐쇄예정인 118개를 합하면 연말까지 1598개가 사라질 예정이다. 특히 한국씨티은행은 올해 안에 점포를 126개에서 25개로 축소할 계획이다. 

이런 구조조정은 실적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영업점 관리비용, 인건비 등 지출이 줄고 인터넷뱅킹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이 크게 늘면서 실적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유의동 의원은 “시중은행의 최근 몇 년간 영업이익 자료와 지점 폐쇄자료를 비교해보면, 지점의 폐쇄가  수익저하와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대적인 지점폐쇄를 단행한 씨티은행의 경우는 생산성이 시중은행 중 최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1등 신랑감 옛말…영업사원 취급받아 

이처럼 사람의 설 자리가 좁아지면서 은행원의 역할과 위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은행창구만 지키면 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온갖 잡일에 내몰리며 영업활동까지 해야만 인정받는 풍토로 변했다.  

대표적인 예가 작년 3월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파동이다. ISA는 다양한 상품에 동시 투자가 가능하고 세제 혜택이 있어 ‘국민재테크통장’으로 불리며 출발했다. 

당시 대부분 은행들은 직원들에게 계좌가입 50건씩을 할당했고, 직원들은 가족, 친척, 친구를 총동원해 가입에 나섰다. 계좌 개설을 부탁하기 위해 지인들을 찾아 다녔고 최초불입금(통상 1~5만원)은 자신이 부담했다. 은행원들은 ‘꿈의 직장’이란 곳에서 ‘생존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최근에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월급쟁이에게 한정됐던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격이 자영업자와 공무원·군인 등 소득이 있는 모든 취업자로 확대되자, 은행들은 직원들에게 신규가입을 받아오라고 강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과당경쟁에 대한 경고 공문을 내려 보내는 등 단속에 나설 정도로 영업 압박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지난해 도입됐다가 문재인정부의 출범으로 중단된 성과연봉제(직원의 업무능력 및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해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는 언제 다시 부활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은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예전처럼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지만, 달라진 세태에 밀려 스스로 제2의 인생을 찾아 은행문을 나서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국내 18개 은행의 총 임직원 수는 11만1402명으로 1년 전 보다 4517명(3.9%) 줄었다. 대부분이 희망퇴직으로 떠난 경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NB에 “앞으로 20년 안에 은행 점포가 전부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 탓에 갈수록 30~40대 직원들의 퇴직신청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한 30대 은행원은 “최근 채용비리 의혹으로 인해 외부에서는 ‘신의 직장’으로 보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40대 중반까지만 버티다가 (특별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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