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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재벌 회장이 좋아하는 집행유예와 기소유예·선고유예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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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4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7.12.04 09:20:42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보통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서는 오전 10시 또는 오후 2시에 판결을 선고합니다. 한 번에 적게는 5~6건, 많게는 3~40건을 몰아서 선고한 후 다음 재판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오전 10시나 오후 2시의 형사 법정에서는 판사가 판결을 선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판결을 선고합니다. “피고인을 징역 10월에 처한다.” 순간 법정에는 정적이 감돌고, 피고인의 얼굴은 굳어집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재판장이 말을 이어 갑니다. “다만,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고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합니다. 가끔은 이 집행유예의 의미를 잘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는 피고인의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피고인만 헷갈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경우 기자들이 판결 선고일 방청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들도 종종 재판장이 뒤에 선고한 ‘집행유예’라는 문구를 놓치고,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에 “피고인 징역 10월, 실형 선고”와 같은 오보를 내보낼 때가 있습니다. 

집행유예: 선고한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집행유예(執行猶豫)란 형을 선고함에 있어서 일정한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경과한 때에는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게 되는 제도입니다. 죄는 밉지만, 범죄의 정상관계나 합의 여부 등의 이유로, 현실로 형을 집행할 필요가 적은 경우에 선고됩니다. 이미 뉘우치고, 피해도 회복되었고, 재범의 우려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일률적으로 형을 집행하면 오히려 범죄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집행유예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집행유예란 말 그대로 형의 집행을 일정한 기간 동안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자가 유예 기간 중에 고의로 범한 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된 때에는 집행유예의 선고는 효력을 잃게 됩니다(형법 제63조). 현행법상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한 경우에 한합니다(형법 제62조). 

▲지난 9월 28일 재벌 그룹 총수의 3남 김모 씨가 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향한 취중 폭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김 씨는 지난 1월에도 만취 난동 사건으로 기소됐다가 지난 2월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상태로, 이번 일이 형사 사건으로 확대될 경우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11월 21일 피해 변호사들이 김 씨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해 해당 혐의에 대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게 됐다. 김 씨는 지난 2010년에도 한 호텔 지하주점에서 취중 난동으로 입건되었다가 피해자들과 합의한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었다. 사진 = 연합뉴스

벌금형이 선고될 경우에는 집행유예가 불가능합니다. 특별히 고액의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제·환경 등의 범죄가 아닌 일반 형사사건에서 벌금형 선고는 집행유예의 선고와 비교하면 훨씬 가벼운 형벌입니다. 집행유예의 선고를 매우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필자가 느끼는 벌금형과 집행유예 선고의 차이는 큽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집행유예가 벌금형보다 10배 정도는 무겁습니다.

돈 없는 자를 위해 벌금형에도 집행유예 도입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경우에는 대개 벌금 10만 원 당 하루의 비율로 노역장에 유치됩니다.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된 경우 50일을 노역장에 유치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벌금 납부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벌금 500만 원이 50일 징역형과 동일한 효과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제적인 이유로 벌금형 선고가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벌금 납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서 노역장에 유치될 것이 두려워서 오히려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고 재판장에게 간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7년 1월 7일부터 벌금형에도 집행유예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다만, 모든 벌금형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에만 집행유예의 선고가 가능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벌금형의 집행유예가 허용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현행 법률 중에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일정한 결격 사유로 정하고 있는 것이 다수 있습니다.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당연 퇴직이 되거나 더는 해당 공직·직장에 있을 수 없는 경우 말입니다. 

이런 법률에서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를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경우와 똑같이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벌금형의 집행유예 선고는 벌금형의 선고와 다르게 당연 퇴직 사유나 결격사유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인지의 문제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선고유예와 기소유예

집행유예와 잘 혼동하는 개념 중에 선고유예(宣告猶豫)가 있습니다. 이 제도는 범행이 경미한 범인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를 묵인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11월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후 법원을 떠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문언상으로는 징역형에도 선고유예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실무상으로는 경미한 벌금형이 선고될 때 외에는 선고유예 판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에 재판장이 선고할 수 있는 가장 경미한 판결입니다. 

집행유예와 선고유예가 기소 후 재판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기소유예(起訴猶豫)는 수사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검사는 범인의 연령·성행(性行),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피의자의 죄는 인정하지만,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검사의 처분을 기소유예라고 합니다. “네가 범죄를 저지른 것은 맞는데, 경미하니까 한번 봐줄게” 정도의 느낌입니다. 

기소유예가 선고유예·집행유예와 가장 다른 점은 나중에 기소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는 판사의 판결이기 때문에 재심(再審)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번복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기소 유예는 나중에 추가로 범죄가 발견되거나 기소를 해야 할 사정이 발생하면, 기소유예 처분을 무시하고 기소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용어들 같지만, 집행유예·선고유예·기소유예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사실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 세 가지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당사자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겠지요.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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