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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세종병원 스프링클러, 의무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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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4-575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8.02.12 09:41:45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연이은 한파에 화재 사고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화재와 관련한 아찔한 경험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필자가 근무하던 사무실의 전자기기에서 불꽃이 튀면서 순간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고 소규모 화재였기 때문에, 다행히 즉시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그 사건에 너무 놀라서 바로 화재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가정에는 천장에 화재경보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 건물이나 병원을 가보면 천장에 스프링클러(sprinkler)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때 천장에서 물을 뿌려 불길을 줄이거나 열기를 식혀주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스프링‘클러’가 아닌 스프링 ‘쿨러’(spring-cooler)로 알고 있습니다. 스프링쿨러는 분명 틀린 단어인데도, 열을 식힌다는 cool이 들어가서인지 마치 올바른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인터넷 쇼핑몰 같은 곳에서는 상품명에 스프링 ‘쿨러’와 ‘클러’를 병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프링클러가 아닌 스프링쿨러로 검색해도, 해당 상품을 찾을 수 있는 점이 참 재미있습니다. 

 

주의의무위반은 인정될 가능성


최근 경남 밀양의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이 스프링클러가 문제 되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세종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사상자와 피해 규모가 늘어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2월 3일 오전 경남 밀양문화체육관 합동분향소에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사진 = 연합뉴스

소방시설법은 연면적 5000㎡(약 1500평) 이상 건물에 스프링클러의 의무 설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종병원은 연면적이 소방시설법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그리고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소방점검도 꾸준히 받았다고 합니다. 


단지 법에 규정된 의무를 지켰다고 해서 세종병원이 이번 화재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상반된 관점에서 보자면, 세종병원은 법에 규정된 사항을 모두 이행했는데도 우연히 사고가 발생했다고 책임을 물으면 부당하지 않을까요?


우리 법령에는 많은 규제 사항이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규제도 있고, 교통이나 환경을 위한 규제사항도 있습니다. 이런 법령에 규정된 사항을 모두 지키면 일반적으로 과실이 인정되지 않거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상당 부분 고려가 됩니다. 


그런데 안전과 관련된 영역에서 법원은 좀 엄격한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관련하여 우리 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업무상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死傷)에 이르게 한 경우에 성립되며(형법 제268조), 여기서 업무상과실은 법령에 의하여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는 경우뿐 아니라 계약 기타 관행에 의하여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는 경우도 포함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1월 28일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경찰, 소방합동 현장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위 판결의 취지는 세종병원이 소방시설법상의 기준을 모두 지켰다고 해서 병원의 화재로 인한 책임에 면책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법에 규정된 안전과 관련된 규정들은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그만큼만 하면 충분하다”가 아니라 “최소한 그 정도는 해라”이기 때문입니다. 

 

유사시 대비해 점검 일지 만들어 놓아야


그래서 이번 세종병원의 경우에도 소방시설법상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 하더라도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일반적 주의의무위반은 인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양병원의 경우 일반병원보다 화재 등 재난 발생 시에 환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물적 · 인적 시설을 더 갖출 것이 요구되는데, 특히 야간이나 아침에는 주간보다 병원에 상주 인원이 적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물적 시설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야간이나 상주 인원이 적은 아침에 화재가 발생한 경우, 초기 진화를 통해 화재의 확대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스프링클러 등의 소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면,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사고 당시의 상황, 상주하는 인원, 추가적인 안전시설의 설치 여부 등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세종병원이 지어야 할 책임의 범위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럼 이런 안전사고에 대비해 기업에서는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까요? 사고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고가 발생한 경우 평소에도 안전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단 법령에서 요구하는 안전과 관련된 기준은 당연히 충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대비해서, 평소에 점검을 하고, 그 점검 상황을 일지로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사고가 터지고 나서는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평소에 관련 자료를 잘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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