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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천재 모차르트 간파했기에 불행했던 천재 살리에리

엇갈리는 1-2인자 보여준 연극 ‘아마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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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0호 김금영⁄ 2018.03.22 15:13:23

연극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오른쪽, 조정석 분)와 살리에리(한지상 분) 사이의 첨예한 갈등과 함께 둘 사이의 친근 관계에도 집중한다.(사진=연합뉴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살리에리 증후군. 탁월하게 뛰어난 1인자를 보며, 2인자가 느끼는 열등감, 무기력감을 뜻하는 이 용어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모차르트와 그의 재능을 시기한 살리에리의 이야기는 뮤지컬, 연극, 영화,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각색돼 왔다. 이번엔 연극 ‘아마데우스’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85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로도 알려진 연극 ‘아마데우스’는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묘사하며 신과 인간 사이, 예술에 있어서 세간의 인정과 인기의 문제까지 섬세하게 담아냈다. 연극 또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두 사람만이 느낄 수 있었던 서로의 관계에 집중한다.

 

극의 시작은 살리에리가 연다.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사람들에게 외치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처연하다. 과거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궁정 음악장 자리까지 올랐던 그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혔다. 살리에리는 자신의 존재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살리에리 증후군이 현대인의 심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사용될 만큼, 살리에리의 삶은 현대인이 공감할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가난한 시골마을 출신이었던 살리에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교회 지휘자를 거쳐 궁정 음악장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셈. 현 시대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힘들지만, 그렇기에 더욱 살리에리의 고군분투는 현대인의 가슴에 작은 위로를 전한다.

 

만들어진 형식을 준수하는 살리에리(이충주 분, 앞줄 가운데)의 음악은 귀족들에게 사랑받는다. 그 결과 살리에리는 궁정 음악장까지 오른다.(사진=연합뉴스)

그렇지만 역시 무엇보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건 살리에리의 분노와 질투. 우연한 기회에 모차르트의 공연을 본 살리에리는 바로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만들어진 형식을 준수하는 살리에리와 달리 모차르트는 머릿속에 있는 음표를 바로바로 수정 없이 적어낸다.

 

사람들은 낯설게 느껴지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음표가 너무 많다”며 두루뭉술한 지적을 하지만, 살리에리는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뒤에서 홀로 외친다.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 모차르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을 천재라 믿고, 그 재능을 준 신에게 감사함을 느꼈던 살리에리의 감정이 분노로 뒤바뀌며 토해내는 외침이다.

 

우리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각자 저마다 개성과 재능이 있다지만, 평범한 사람보다 이 능력들을 더 잘 발휘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천재라 일컫는다. 그리고 현실에는 1인자와 2인자가 존재하고 희비가 엇갈린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유재석과 박명수, 이상화와 고다이라 등이다.

 

1인자와 2인자의 행보는 늘 주목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1인자의 행보엔 찬사가 쏟아지고, 뒤따르는 2인자는 1인자와 비교된다. 응원의 목소리도 있지만 따가운 시선도 있다. 이미 1인자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간다거나, 흉내 내기에 그친다는 등 혹독한 비판이 쏟아지기 쉬운 게 2인자의 자리다. 그런데 과연 1인자는 행복하고, 2인자는 불행하기만 할까? 또 절대적인 1인자와 2인자라는 구분이 가능할까?

 

절대적인 1인자와 2인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위치 뒤흔드는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조정석 분)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정해진 형식을 따르지 않은 그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사진=연합뉴스)

본래 일반적으로는 1인자의 상징이 모차르트, 그런 모차르트에게 콤플렉스를 지녔던 살리에리가 2인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연극 ‘아마데우스’는 진정한 1인자와 2인자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게끔 관계와 위치를 뒤흔든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살았던 당시 세간의 시선으로 보자면 살리에리가 1인자다. 전통적인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살리에리의 음악이 진정한 음악이었고, 사람들의 이런 평가가 그를 성공으로 이끈다. 살리에리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신의 위치를 마음껏 누린다.

 

천재 모차르트의 삶은 극 속에서 빛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의 음악에 열광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음악 형식과 기이한 행동, 그리고 살리에리의 훼방으로 점차 모차르트의 음악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하이톤 목소리로 늘 즐겁게 외치던 모차르트의 목소리는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낮아진다.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아 궁핍해지고 먹고 살 걱정에 시달린다. 1인자의 삶이라기엔 초라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리에리가 행복하지도 않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1인자는 모차르트였기 때문. 그런데 이 고통은 살리에리의 특별한 재능에서 비롯됐다. 음악적으로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뛰어넘을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천재의 능력을 알아보는 힘이 그에게 있었다. 이 능력만큼은 모차르트를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세간의 시선은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위치에도 영향을 끼친다. 전통적인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살리에리를 떠받들고, 모차르트는 외면한다.(사진=페이지1)

극의 연출을 맡은 이지나 연출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살리에리는 자신의 재능을 원망했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단박에 파악했다. 살리에리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천재 기획자일 텐데. 재능을 알아보는 심미안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요즘이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즉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모두 1인자이면서 동시에 2인자였고, 행복과 불행 모두 경험했다.

 

1인자와 2인자 사이에서 혼란을 겪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극의 말미에 다다라 서로 화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렇다. 늘 라이벌로 일컬어졌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는 2015년 11월 체코 프라하 음악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발견된 ‘오필리아의 건강을 위하여’ 악보를 통해 다르게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공동으로 작곡한 진본 악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단순 라이벌만이 아니라 친구이기도 했다는 점이 밝혀진 것.

 

극에서는 병으로 더 이상 음표를 그릴 힘도 없는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리가 찾아가 모차르트가 읊는 대로 음표를 적어주는 모습이 그려진다. 둘의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부러워하는 점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연극 '아마데우스'에는 20곡이 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사진=페이지1)

모차르트가 죽고 난 뒤 그의 죽음에까지 붙어서 기억되고 싶어 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처연하다. 결국 불행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저주라 느끼며 스스로를 2인자로 자리매김시켜버린 살리에리의 태도에서도 비롯됐다는 점이 느껴진다.

 

연극 ‘아마데우스’의 매력은 스토리뿐 아니라 음악에도 있다. 뮤지컬이 아닌 연극이라 음악적 요소가 많이 축소됐을 것 같지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두 음악가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오히려 음악에 더 집중했다. 20곡이 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비롯해 채한울 작곡가의 새로운 곡 3~4개를 추가했다. 6인조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의 노래가 어우러져 음악극 형태의 무대를 구성했다.

 

이충주와 조정석의 호흡 또한 눈길을 끈다. 살리에리 역을 맡은 이충주는 다소 어둡게 흐를 수 있는 극의 흐름에 웃음 포인트를 집어넣으며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 극의 시작과 끝까지 점잖았다가 질투에 휩싸이고, 후회하고, 그러면서도 또 기억되기를 욕망하는 살리에리의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조정석의 무대 복귀는 반갑다. 까불까불한 목소리에 과장된 몸짓까지 한껏 장난스러운 모습과 음악을 할 때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천재성을 발휘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에 빙의된 모습이다. 공연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4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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